성범죄 피해자 책임 묻는 법원..인도 왜 이러나
"여성 옷 때문에 성폭행당한다 논리..피해자 탓 조장"
법원 "옷 벗기지 않아 범죄 아냐", "약한 '노' 긍정 의미"
임신 여성 집단성폭행 등 11명 남성..감형돼 석방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가 만연한 인도에서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법시스템이 논란을 빚고 있다. 최근 인도 남부의 한 지방법원 판사는 피해 여성이 '도발적인'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고소장을 기각한 사실이 알려져 인도 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인도 남부 케랄라주(州)의 지방법원 판사는 지난주 성희롱 및 폭행 혐의로 기소된 74세 남성의 보석 신청을 허가했다. CNN은 "장애를 가진 남성이 여성을 강제적으로 끌어당겨 성적으로 가슴을 압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해당 법원의 명령을 인용 보도했다.
특히 CNN은 해당 법원이 가해 남성의 편에 선 듯한 정황까지 포착했다. CNN은 "법원 명령에 따르면, 이 남성이 보석 신청서와 함께 제작한 사진에는 '성적으로 자극적인' 드레스를 입은 피해 여성의 모습이 담겼고, 법원은 이를 근거로 여성의 고소장을 기각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소식은 인도 사회를 뒤흔들었다. 가뜩이나 하루가 멀다 하고 성범죄가 발생하는 인도에서 법적 구제 수단의 부재와 악명 높은 느린 사법체계로 인해 피해 여성들만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스와티 말리왈 델리여성위원회 위원장은 해당 지방 판사를 규탄하고 케랄라 고등법원이 이 사건을 맡을 것을 촉구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성폭행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사고방식은 언제쯤 바뀔 수 있나"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인도의 학생들도 분노했다. V.P. 사누 인도학생연합 회장은 "해당 판사의 해석은 퇴보적"이라며 "여성들이 복장 때문에 성폭행을 당한다는 논리는 피해자 탓이자, 강간 피해자의 고정관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SNS에 썼다.
옷을 벗기지 않아서 성폭행 범죄가 아니라고?
인도는 지난 2012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뉴델리 시내버스 집단 성폭행' 사건 이후 법률 개혁과 더불어 강간죄에 대한 보다 엄중한 처벌을 도입했다. 그러나 인권단체나 변호사들은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인도에서의 성폭력 범죄 발생률은 심각하다. 인도 국가범죄기록국에 따르면 인도에선 18분마다 1건의 성폭력 범죄가 발생한다. 2020년에 접수된 성폭력 범죄 관련 신고가 2만8,000건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보복 등이 두려워 신고하지 않는 경우를 계산하면 실제 발생한 범죄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사법시스템으로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CNN에 따르면, 2021년 1월 뭄바이 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39세 남성이 12세 소녀를 성폭행한 사건에 대해 "소녀의 옷을 벗기지 않았기 때문에 성폭행한 혐의가 없다"고 판결했다. 피부 접촉이 없었다는 이유였다.
2017년에도 황당한 판결이 나왔다. 델리 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의 강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아주 약한 '아니오(No)'는 피해자라 주장하는 여성이 '흔쾌히 허락했다'는 시그널일 수 있다"고 언급해 논란이 됐다.
더불어 지난 15일에는 인도 독립 75주년을 맞아 성폭행범들이 감형으로 풀려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난 2002년 인도 구자라트주에서 발생한 힌두교-이슬람 폭동 당시 임신한 이슬람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고 그의 가족 등 7명을 살해해 종신형을 받았던 힌두교 남성 11명이 감형으로 석방됐다.
이들은 2008년 초 종신형을 선고받아 판치마할스 교소도에서 14년 넘게 수감됐다. 그러나 인도법은 이들을 풀어주는 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도법에 따르면 14년 이상 복역한 수감자는 감형 자격이 주어져 석방될 수 있다.
그러자 인도 정치인들과 변호사들은 이들의 석방을 규탄했다. 이들은 "이번 석방이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악명 높은 나라에서 여성을 부양하려는 정부의 정책과 모순된다"고 말했다. 강간이나 살인 같은 끔찍한 범죄의 죄수들에 대한 형량 감면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의미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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