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철의 여인' vs '영국의 오바마'.. 英 새 총리 누가될까 [세계는 지금]

이지민 2022. 8. 2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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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수낵, 내달 5일 마지막 승부
대처가 롤모델인 트러스 외무장관
메이 내각 때 영국 최초 여성법무장관
中·러에 강경정책.. 국방력 강화 주장
경선초부터 감세론, 원로그룹선 반대
너무 선명한 보수노선.. "확장 한계"지적
최근 당원 여론조사 61% '압도적 우세'
'인도계 이민2세' 수낵 前재무장관
예선 5차례 경선투표 모두 1위로 통과
지방정부 차관 당시 '워커홀릭' 불려
코로나 시기 대규모 재정정책 펴 명성
항상 정갈한 외모.. '매력적인 리시' 별칭
부인은 인도 재벌 딸.. 재산 1조원 넘어

철의 여인 시대의 귀환이냐, 영국의 버락 오바마 탄생이냐.

새 영국 총리를 결정하는 내달 5일 보수당 결선에 최후 2인으로 남은 리즈 트러스(47) 외무부 장관과 리시 수낵(42) 전 재무부 장관이 격전을 벌이고 있다. 두 사람은 40대 젊은 피에 옥스퍼드 출신의 엘리트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정치적 성향이나 스타일에선 차이점이 분명하다. 두 아이의 엄마인 트러스가 승리하면 마거릿 대처(1979∼1990 재임), 테레사 메이(2016∼2019)에 이어 세 번째 여성 총리, 인도계인 수낵이 당선되면 영국 최초의 유색 인종 총리라는 역사적 의미가 부여된다.

지난달 20일 하원의원만 참여하는 예선 5차 경선 투표에서 수낵이 137표, 트러스가 113표로 1, 2위를 차지해 결선에 진출했다. 수낵이 후보 중 최저 득표자를 차례로 탈락시키는 1∼5차 투표에서 모두 1위였지만 결선 양상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결선엔 당원 16만명(BBC 기준)이 참여하는 우편투표로 진행돼 여론 흐름이 중요하다. 여론조사 기관 오피니움이 8∼13일 당원 5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선 트러스가 61%의 지지율로 수낵(39%)을 압도적 격차로 따돌리고 있다.
◆트러스, ‘철의 여인’ 대처가 모델

여론조사에서의 압도적 우위로 대세론을 형성한 트러스는 영국 리즈대 수학과 교수인 아버지와 간호사·교사를 지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머튼칼리지에서 철학, 정치,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중도좌파 성향의 제3당인 자유민주당에 입당해 대마초 합법화, 군주제 폐지와 같은 좌익 주장을 외쳤다. 21세 때인 1996년 보수당에 입당하면서 노선을 완전히 틀었다. 2001년, 2005년 하원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한 뒤 2010년 당선해 정계에 진출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 때인 2012년 교육부 차관에 이어 2014년 환경식품농무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두 번째 여성 총리인 메이 내각 때인 2016년엔 영국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이 됐다. 이후 재무부 수석부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쳐 지난해 보리스 존슨 총리가 현직에 기용했다.

트러스 장관은 외무장관으로서 중국과 러시아에 강경한 입장이고 국방력 강화를 중시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2.3%(올해 전망)인 국방예산과 관련해서도 수낵이 “수치를 정해놓지 않았다”고 불투명한 입장을 보인 것과 달리 “2030년까지 GDP 대비 3%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하겠다”고 못 박았다. 보수층이 지지하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대해선 초기엔 반대하다 이후 적극적 옹호론자로 변신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최장수 총리인 대처 전 총리를 정치적 롤모델로 삼아 경선 초기부터 세금을 깎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감세 주장을 펼치고 있다. 경쟁자 수낵은 뒤늦게 감세 카드를 내놨다.

리즈 트러스. EPA연합뉴스
트러스는 정책뿐만 아니라 공개 활동 시 대처 전 총리를 연상케 하는 코스프레 행보를 보여 논란이 되기도 한다. 일례로 지난 2월 러시아 모스크바 방문 때 검은 털모자와 코트를 입은 모습은 1987년 소련 방문 당시 대처 모습과 오버랩된다. 아난드 메논 런던 킹스칼리지 유럽정치학 교수는 “이건 우연일 수 없다”며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꽤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선명한 보수노선은 지지층 결집에 유리하지만 정치적 확장성이 제한된다는 단점이 있다. 제1야당 노동당에선 내부적으로 보혁 전선을 분명히 할 수 있는 트러스 당선을 바란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노동당 고위 관계자는 “트러스는 카리스마 없는 보리스 존슨 총리의 우파 정책을 지속할 것이기 때문에 그의 당선은 곧 노동당의 호재”라고 밝혔다고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의 측근 역시 “대처 전 총리를 롤모델로 삼는 트러스가 당선되면 노동계급 유권자의 노동당 지지가 더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감세로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트러스의 공약은 대처리즘에 대한 오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현재 현안으로 부상한 극심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상태가 오히려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당 원로그룹에서도 감세정책에 반발이 나온다. 노먼 러몬트 전 재무장관은 일간 가디언의 주말판인 업저버와의 인터뷰에서 “대처는 감세에 앞서 재정적자 감축이 있어야 한다고 강력히 믿었다”며 감세를 위해 정부 차입을 늘리자는 트러스의 공약을 비판했다.

사회복지를 위해 오히려 증세를 원하는 유권자 비율도 만만찮다. 여론조사기관 오피니언 리서치의 조사(3∼5일 유권자 2010명 대상)에 따르면 응답자의 26%는 증세, 34%는 현 세율 유지를 주장했고 감세 찬성은 22%였다.

◆코로나19 위기서 능력 발휘한 일벌레

예선 1위였으나 결선에서 위기에 직면한 수낵은 동아프리카의 케냐, 탄자니아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인도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색인종 이민 2세이지만 의사 아버지와 약사 어머니 밑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옥스퍼드를 졸업했다. 2004∼2006년 세계적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를 거쳐 미국 스탠퍼드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을 때 아내를 만났다. 아내 악샤타 무르티는 인도 정보기술(IT) 대기업 인포시스 창업자 딸로 회사 지분 1%를 소유한 재벌이다. 수낵 부부의 재산은 총 7억3000만파운드(약 1조1680억원)로, 이중 6억9000만파운드(1조1040억원)는 무르티가 보유한 인포시스 지분이다.

막대한 재산이 서민층 반감을 살 수 있다. 보수당 관계자는 “수낵은 서민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실체를 알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아내가 탈세 의혹에 휩싸인 적은 있지만 수낵은 대체로 청렴하다는 평가다. 당내에서 수낵을 지지하고 나선 제러미 헌트 전 외무부 장관은 수낵에 대해 “정치를 하면서 만난 사람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청렴함을 가진 동시에 가장 점잖은 사람”이라고 했다. 윌리엄 헤이그 전 보수당 대표는 “수낵은 이성적인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영국 정치에서 보기 드문 존재”라고 했다.
리시 수낵. EPA연합뉴스
수낵은 2015년 총선에서 당선해 정계에 입문했다. 2018년 1월 메이 내각에서 지방정부 차관에 올랐다. 당시 함께 일한 당 관계자는 수낵을 워커홀릭으로 묘사했다. 그는 “수낵은 어려운 정책 브리핑을 정말 빨리 이해하곤 했는데, 살면서 새벽 2시까지 일하는 차관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라며 “어떤 사람들은 ‘금융인들이 일하는 방식’이라고 말할 정도”라고 했다.

수낵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암흑시대에 오히려 빛난 정치인이다. 재무장관으로서 코로나19로 일감이 없어도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임금을 지원하는 대규모 재정지원 정책으로 명성을 높였다.

흐트러지고 정리 안 된 인상의 존슨 총리와 대비되는 정갈한 외모에 잘 차려입은 외모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매력적인 리시(Dishy Rishi)’가 별칭이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그가 스타일리시한 남자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며 “1300파운드(208만원)짜리 슈트를 항상 꼭 맞게 입고,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이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태도로 깔끔함을 유지하는 모습이 그의 측근뿐 아니라 보수당 전체 의원 중 가장 스타일리시하게 보이게 한다”고 했다. 수낵은 매일 아침 러닝머신 위를 달릴 정도로 엄격한 자기 관리로도 유명하다.

가디언은 “수낵이 트러스와의 힘겨운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흑인 혼혈인)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인도 고아지방 혈통 후손인) 안토니우 코스타 포르투갈 총리, (아버지가 인도계인) 리오 버라드커 전 아일랜드 총리 등처럼 서방 국가의 소수 인종 지도자 반열에 오르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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