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정권 초기마다 '보훈 수사'로 반짝..'정치 보훈' 하나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2022. 8. 2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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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식 보훈처장이 김원웅 전 광복회 회장 비리 의혹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보훈처는 어제(19일) 김원웅 전 광복회장의 추가 의혹을 밝힌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인쇄비 5억 원 과다 견적, 카페 공사비 9천800만 원 과다 계상, 대가성 기부금 1억 원 수수, 기부금 1억 3천만 원 목적 외 사용, 법인카드 2천200만 원 유용 등 김 전 회장의 비리를 적발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원웅 전 광복회장은 정치 편향적 언행을 많이 함으로써 광복회장으로서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많았던 인물입니다. 그의 비리 의혹은 올 초 언론 보도로 익히 알려졌습니다. 보훈처가 두어 번 감사를 벌였고, 경찰 수사도 이뤄졌습니다. 범죄 혐의가 확정되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 김원웅 전 광복회장은 법인카드로 가발 관리와 목욕을 하고 어머니 관련 만화책 제작에 과도한 비용을 지불한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런데 어제 보훈처의 발표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모시는 순수한 보훈이라기보다는, 5년마다 벌어지는 '정치 보훈'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박민식 보훈처장이 출입기자단 앞에 처음 등판한 자리였음에도 보훈의 청사진은 뒷전이었습니다. 대신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전 광복회장에 대한 정밀 감사 결과를 부각시키는 데 온갖 공을 들였습니다.
5년 전인 2017년 12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보훈처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첫 과업 역시 상대 진영에 대한 숙청이었습니다. 박승춘 전 보훈처장 적폐 청산 감사 결과를 발표한 것입니다. 수사는 검경에 맡기고 '보훈수사처' 놀이는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보훈처는 보훈에 전념해야 합니다. 정권에 따라 '진보 보훈', '보수 보훈' 오락가락하지 말고 나라 위해 몸 바친 분들을 모시는 데 묵묵히 열과 성을 다하기 바랍니다.
 

5년 전엔 박승춘, 지금은 김원웅

2017년 12월 19일 보훈처는 적페 청산 감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보훈처 차장 이하 고위직들은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피우진 처장은 모 방송사 뉴스룸에서 박근혜 정부의 보훈처장 박승춘의 비리 의혹들을 색출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 2017년 12월 방송 뉴스에 출연해 적폐 청산 감사 결과를 설명하는 피우진 전 보훈처장

박승춘 처장은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반대했고, 유신 반대 민주화운동을 종북으로 폄하하는 DVD 동영상을 제작·배포하는 등 여러 말썽을 일으킨 전력이 있습니다. 보훈처는 그의 행적을 적폐로 규정하고 몇 달간 감사를 벌여 결과를 냈던 것입니다.

낯 뜨거웠습니다. 박승춘의 적폐뿐 아니라 보훈처 조직원들의 양식이 참 볼썽사나웠습니다. 보훈처 직원들은 박승춘의 적폐적 아이디어를 탄탄한 정책으로 적극적으로 구현시킨 장본인입니다. 박승춘이 적폐를 했다면, 보훈처 직원들은 부역을 한 것입니다. 박승춘이 자기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면, 보훈처 직원들은 영혼 없이 추종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보훈처 임직원들은 정권이 바뀌니 박승춘의 적폐를 처음 보는 남의 일인 양 규탄했습니다.

어제 보훈처의 발표도 5년 전과 판박이입니다. 보훈처는 올 초 언론 보도로 불거지기 전에 이미 김원웅 전 회장의 사건 내용을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보도 이후에야 보훈처는 감사했고, 경찰에 수사의뢰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김원웅 잡기가 껄끄러웠던지 감사도 수사도 뾰족한 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정권이 교체되니 보훈처는 100일 만에 검찰 수사급의 감사 결과를 꺼내들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 알고도 눈 감았다가 정권 바뀌니까 떨쳐 일어선 꼴입니다. 5년에 한 번씩 나타나는 정치적 보훈처의 정례적 역동성입니다.
 

보훈처장들의 수사 의욕

피우진 전 보훈처장은 2017년 12월 박승춘 전 보훈처장의 적폐 감사 결과를 TV 뉴스에 출연해 설명하면서 "그것(보훈처 내 박승춘 라인)때문에 수사하는 데 문제가 있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수사를 안 할 사람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보훈처는 수사 기능이 없는데도 피 전 처장은 수사 운운했습니다. 보훈처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수사에 가까운 감사를 했다는 뜻으로, 듣는 사람들이 알아서 이해해야 했습니다. 피우진 처장은 박승춘 적폐 감사 때 반짝 존재감을 뽐낸 뒤 별다른 성과를 못 냈습니다.

박민식 현 처장은 검사 출신입니다. 어제 발표에서도 검찰 경험을 내세웠습니다. 그는 "제가 법률가 출신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김원웅 전 회장에 대한 조치를) 확실히 하겠다", "저도 과거에 검찰에 있을 때 이런 브리핑을 가끔씩 했었는데, (김원웅 전 회장 사건을) 전문적인 수사기관에 조사해달라고 요구하는 것" 등의 발언을 했습니다. 박 처장은 피우진 전 처장과 달리 전 정부를 겨냥해 수사를 방불케 하는 감사를 벌인 이후에 제자리로 돌아가 보훈 본연의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박근혜, 문재인 정부의 보훈처는 다분히 정치적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보훈처는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멀리했고, 문재인 정부의 보훈처는 좌파 계열 독립운동가를 모시는 데 은근히 힘 썼습니다. 이른바 정치 보훈을 한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보훈처도 5년 전과 다름없이 전 정부 인사 솎아내기부터 시작하는 폼새를 보니 앞날이 대충 짐작됩니다. 나라 위해 희생한 분들을 봉양하는 보훈은 정치와 무관합니다. 비정치적 보훈을 해야 합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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