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썰] 입주 앞두고 '울분의 삭발' 한 이유

이예원 기자 2022. 8. 2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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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입주 앞두고 '울분의 삭발' 한 이유
신축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설렘 대신 걱정과 분노로 지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입주가 늦어지는 데다 사전 점검에서 살펴본 집의 상태가 부실했기 때문입니다.
▶관련기사: [단독] 7억짜리 새집, 물 새고 곰팡이…입주 미뤄져 '떠돌이' 생활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68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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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집 대신 단기로 방 구해 거주

해당 아파트는 경기도 김포의 286세대짜리 한 타운하우스로, 분양가가 7억이 넘습니다. 원래 6월 말 입주였지만 공사가 덜 됐다며 연달아 미뤄졌고, 사람들은 급하게 잠깐 머물 집을 구해 지내야 했습니다.

A씨는 원래 살던 집을 이미 5월에 처분한 상태였습니다. 6월 말엔 입주할 수 있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분양을 받을 때 주변에 비해 비싼 가격에 고민도 했지만, 가족과 살 행복할 집을 꿈꾸며 어려운 선택을 했다고 말합니다.

"분양 사무실에서 홍보할 때처럼 '그대로 잘하겠지', '그러면 충분히 아깝지 않겠지'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게 반대로 돼 버렸죠."

A씨가 머무는 방. 이삿짐을 한 곳에 쌓아뒀다.
이사 계획은 틀어졌고, 많은 차질이 생겼습니다.
"오피스텔 단기 임대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또 원래 7월 초로 아파트 입주를 잡아놨기 때문에 대출을 6월에 실행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보다 금리가 1% 올랐어요. 보관이사 비용도 계속 연장하면 많이 올라가더라고요."
입주 예정자 A씨.

■ "도무지 살 수 없는 집이었다"
7살 아이와 원룸에서 지내고 있는 B씨 부부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침대를 비롯한 가구는 모두 이미 보관 이사를 맡긴 터라 방에 캠핑용 매트를 깔고 지냅니다. 집에는 최소한의 물건만 남겨뒀습니다.
B씨 가족이 임시로 구한 방. 침대는 이미 이삿짐으로 맡겨 캠핑용 매트를 깔고 지낸다.

늦어지는 입주보다 불안한 건 사전점검에서 본 집의 상태였습니다. B씨는 당시 집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비전문가인 제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욕조는 상단, 하단이 맞지 않아 큰 틈이 있었어요. 누수도 심했고, 전체적으로 마감 상태가 이해되는 정도가 아니었어요."
사전 점검에서 확인한 B씨 집의 욕조. 상단과 하단 사이 크게 틈이 벌어져있다.

입주예정자 비대위에 따르면, 사전점검에선 전체 세대의 38%인 110세대에서 누수 문제가 발견됐습니다. 또 난간이 흔들리거나 문이 안 열리고, 마감을 허술하게 처리하는 등 각 세대 당 최소 100건의 하자가 나왔다고 주장합니다.
입주예정자비대위에 따르면, 사전 점검에서 각 세대 당 100건 이상의 하자가 발견됐다.
주말 부부였던 C씨는 근무지가 지방에서 서울로 바뀌며, 서울 근처의 좋은 집에서 가족과 살겠단 마음으로 이 아파트를 분양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답답한 마음뿐입니다.

"사전점검 날 처남댁과 같이 갔는데, 부끄럽고 창피했어요. 새집을 보여주려는 거였는데, 하자가 너무 많이 나와서 보여주기 민망하더라고요."

A씨 또한 결코 살 수 없는 집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전점검이라고 해서 '입주 축하' 분위기의 밝은 행사라고 기대했는데, 빗물로 집은 폭포가 내리듯 물이 쏟아지고 마감은 날카로워 그냥 초토화였다"고 호소했습니다. A씨가 점검 업체와 함께 확인한 하자는 150건이었습니다.

■ "순조롭게 보완" - "믿을 수 없다"

취재진은 아파트 공사 현장을 두 차례 찾아갔지만, 공사 관계자를 직접 만날 순 없었습니다. 공사 현장은 '무단출입 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출입금지 안내문과 함께 굳게 닫혀있었습니다.
출입금지 현수막이 걸린 공사현장.

서면을 통해 시공사의 입장을 들어봤습니다. 시공사는 입주가 늦어진 이유로 "일부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어 입주를 늦추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수많은 하자가 발생한 문제에 대해선 "보완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입주예정자들이 밝힌 하자가 실제보다 다소 많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여러 하자 검수 업체가 실적 위주로 점검해 중복 건수가 발생했다는 설명입니다.

김포시는 "지체되는 상황을 시공사가 이행하도록 권고, 독려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보도가 나간 이후인 지난 6일부터 사흘간 아파트 공용부에 대한 점검이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입주 예정자들은 여전히 상태가 부실했다고 말합니다. 입주 예정자들이 당시 촬영한 영상에 따르면 난간에 손만 대도 크게 흔들리고, 안전장치 없이 바로 바닥으로 이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지난 6일 아파트 점검 당시 영상.

해당 영상을 촬영한 입주 예정자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세대들은 사고가 날까 봐 급히 돌려보내야 할 상황이었다"라며 "피눈물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입주 예정자들은 아직 하자가 제대로 보완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무더위 아래 '눈물의 삭발'
결국 입주 예정자들은 계속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11일엔 아파트 공사현장 앞에서, 그리고 그다음 날엔 김포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30도가 넘는 더운 날이었지만, 수십 명의 입주 예정자들이 저마다 손에 피켓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이들은 그저 가족과 함께 새집에서 살 날만을 기다려온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지난 11일과 12일, 시공사와 시청에 대한 항의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서 입주 예정자들은 "부실공사로 만들어진 집이 아닌, 분양 당시 모델하우스에서 봤던 정상적인 집을 원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이들이 든 피켓엔 '명품단지 홍보하고 하자단지 입주지연', '제대로 못 지을 거면 제대로 보상해라' 등의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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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현장에선 제대로 된 보수와 보상을 요구하며 한 입주예정자가 삭발을 하기도 했습니다. 집회에 참여한 한 입주예정자는 "왜 우리가 분양받고 삭발하고 이 더운 날 나와서 이렇게 울부짖어야 하냐"며 "왜 우리가 아이들과 길거리에 앉아있어야 하느냐"고 외쳤습니다.
이날 일부 입주예정자들은 제대로 된 공사를 요구하며 삭발식을 진행했다.
■"제대로 보수하는지 지켜볼 것"
시공사는 최근 입주 예정자들에게 입주 지정 기간을 안내문을 보냈습니다. 안내에 따르면 오는 31일부터 입주가 시작됩니다. 안내문에서 시공사는 "두 차례 입주 지연으로 크나큰 불편과 고통을 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며 "입주 전까지 성실히 시공할 것을 다시 한번 약속드린다"고 했습니다.
남궁성열 입주예정자 비대위원장.

오는 27일엔 이틀간 아파트 점검이 다시 예정돼있습니다. 입주예정자들은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입니다. 남궁성열 입주예정자 비대위원장은 "문제없다는 약속을 더는 믿지 않는다"며 "제대로 된 하자 보수를 이행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사용 승인이 나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사용 승인을 강행할 경우, 고발조치와 함께 항의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VJ : 김원섭, 인턴기자 : 이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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