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애는 타지 말아야".. 발달장애인 탑승 막는 따가운 시선들 [이슈 속으로]
5년 전 발달장애인과 가족 등 187명
전세기로 제주 여행한 '효니 프로젝트'
항공사 배려로 아무런 문제 없이 성공
최근 대한항공 자폐인 가족 下機 조치
회사 측 "안전·운항 방해 행동 보여" 주장
가족 "착석 요구 등 안 하고 조치" 반박
자폐인에 대한 승객 불안 해소가 중요
기내 방송 등 이용 양해 구하기도 방법
항공사선 탑승 지원 매뉴얼 제작 필요
항공사 장애인 이용 제한 사례 보니
"기내 소란·승객 불편 초래 땐 제한" 규정
정당한 사유 없이 적용 땐 차별 정당화
뇌병변장애인 대상 보호자 탑승 의무
인권위 진정 이어지자 항공사서 개정
2017년 발달장애 자녀 80명과 그 가족 107명이 전세기를 빌려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효니 프로젝트’를 진행한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부모연대) 이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자폐성 발달장애인 윤지현(19)씨의 애칭 ‘효니’를 따서 만든 것이다.
윤지현씨는 15살 때까지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 김미수(49)씨는 신혼여행이 마지막 해외여행이었다. 딸을 낳은 뒤로는 중증 발달장애인인 딸이 낯선 비행기 안에서 당황하거나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걱정돼 비행기에 오를 엄두를 못 냈다. 이 소식을 들은 부모연대 측이 비행기 탑승에 어려움을 겪은 발달장애인 가족들을 모아 비행기를 띄웠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2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한 자폐성 발달장애인 A(22·남)씨와 그의 어머니를 하기(下機) 조치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대한항공은 입장문을 내 A씨가 탑승교 밖을 나갔다가 다시 비행기로 들어오고 승무원의 착석 요구에 따르지 않는 등 기장이 판단하기에 항공기 안전·운항에 방해가 될 수 있는 행동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또 A씨 측이 예약 및 탑승 과정에 A씨의 자폐를 알리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자 여론의 화살은 A씨 가족을 향했다.
본지는 대한항공의 입장문이 나오기 전후로 독일에 있는 A씨 어머니와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으며 당시 상황에 대한 양측 입장을 확인했다.
대한항공 측이 하기 요구를 한 이유로 제시한 탑승교로의 이탈과 착석 요구 거부에 대해 A씨 어머니는 “승무원으로부터 착석 요구를 받은 적도 없고, 다른 승객들도 탑승 중인 상황이어서 착석해야 하는 시간도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또한 “예약할 때는 자폐인임을 알릴 방법도 없었지만, 공항에 가서는 코로나19 검사할 때, 공항 라운지 입장할 때, 게이트 앞에서 대기할 때, 비행기 들어가면서 여러 차례 ‘우리 애가 자폐가 있어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오해할까 봐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대한항공 측이 ‘기장 판단에 따라 하기시킬 수 있다’ 등의 사전 안내나 경고도 하지 않고, 하기 통보를 하면서조차 사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고 A씨는 토로했다. 당시 A씨 모자가 갑작스럽게 하기하면서 고등학생 딸 혼자 비행기에 남았다.
◆“저런 애는 데리고 타지 말아야지”… 따가운 시선에 비행기 탑승 포기
효니 프로젝트는 이런 발달장애인들에게 비행기 탑승 경험을 제공하면서, 그간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돼 항공기 탑승을 포기해야 했던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현실을 알리려는 취지였다. 비좁은 탑승교를 건너기 무서워하는 자녀들도 있었고, 낯선 비행기 안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서로를 배려하며 큰 어려움 없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187명 모두 안전하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아시아나항공 사례는 발달장애인에게 비행기 탑승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일종의 이벤트였지만, 실제 제공될 수 있는 서비스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기내 방송은 다른 승객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발달장애 가족이 승객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항공사가 나서서 발달장애인을 배려하는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비행기를 이용하려고 할 때 항공사 측으로부터 거부당하거나 이용 제한을 받는 사례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지면 항공사 측이 이를 시정하고 관련 규정을 정비하는 수순으로 장애인의 이동권은 한 발짝씩 힘겹게 나아가고 있다.
1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06년 뇌병변장애인 김모(76)씨는 대한항공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당시 대한항공은 중증장애인인 김씨는 동승자 없이 비행기에 탈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김씨를 포함해 승객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후 김씨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당해 심한 수치심을 느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대한항공은 중증 뇌병변장애인과 발달장애인에 대해 개인별 건강상태 및 의학적 소견 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보호자 동반 탑승을 의무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해당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하지 않으면 장애인 차별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정규 변호사(원곡 법률사무소)는 “기내에서 소란 피우거나 타 승객들의 불편 초래하는, 항공 안전에 치명적인 영향 끼친다고 하면 당연히 내려야 하는 게 맞다”면서도 “하지만 해당 조항을 대입하려면 구체적인 위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누군가를 위협하는 구체적인 행동이 없었는데 탑승을 거부한다면 이는 장애인 차별 행위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고 부연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4조 2호에 따르면 ‘장애인에 대하여 형식상으로는 제한·배제·분리·거부 등에 의하여 불리하게 대하지 아니하지만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를 고려하지 아니하는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장애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 장애인 차별 행위로 규정하기도 한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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