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생선·우유..지금처럼 먹으려면 지구 2.3개가 필요하다
40년새 동물성 식품 섭취 비중 4.1%에서 19%로
차량·항공 등 교통수단보다 식생활 탄소배출 더 커
기후·건강 모두 잡는 '미각재활'로 자연식물식 필요
지난 8일 밤 수도권에 내린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 가족 3명이 사망했다. 2022년에, 서울에서, 사람이 집에서 물에 갇혀 숨진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폭우는 사망 14명, 실종 6명, 부상 26명, 이재민 2873명이란 상흔을 남겼다(8월17일 오후 3시 현재). 지난 3월 울진·삼척에서 발생한 산불은 한울 핵발전소와 국내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저장탱크를 위협했다. ‘기후’라는 단어 뒤엔 ‘재난’ ‘위기’ ‘난민’ 같은 미래를 걱정하는 단어가 붙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기후와 긍정의 단어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황에 ‘미식’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사람이 있다. 그동안 동물성 식품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오던 직업환경의학·생활습관의학 전문의 이의철 작가다. 그는 신작 <기후미식>(위즈덤하우스)에서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장 식단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4부로 구성된 책은 기후위기에 처한 지구(1부), 지구를 위해 식단을 바꿔야 하는 이유(2부), 동물성 식품의 영양학적 문제(3부),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한 레시피(4부)를 다룬다. 전작 <조금씩 천천히 자연식물식>(나들북)의 마지막 장 ‘지속가능한 먹거리’의 확장판이다. “음식이 지구를 구한다”는 이 작가를 지난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위즈덤하우스 본사에서 만났다.
파격적 기후위기 대응법 ‘채식’
―‘기후미식’이라는 단어가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어떤 뜻인가요?
“기후미식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고,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염두에 둔 음식을 준비하고 접대하는 행동을 말해요. 2019년 여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본 단어죠. 행사 홍보 깃발에 ‘기후미식 주간’이라고 써 있었어요. 프랑크푸르트는 2014년부터 매년 기후미식 주간 행사를 열어왔더라고요. 규모가 커져 지난해부터는 ‘기후미식 축제’로 이름을 바꿨고요. 음식을 기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단어를 보고 ‘이거다’ 싶었어요. 그 이후 기후미식에 대해 알리고 있죠.”
―기후위기 대응에서 탈석탄이 우선이고, 채식은 부차적인 걸로 느껴지는데요.
“채식은 그동안 건강 차원에서만 다뤄졌어요. 채식 강의 때, 음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항상 다루는데 지루하다는 반응이 대다수였어요. 환경운동 쪽에서도 채식은 부차적인 문제였고요. 화석연료 문제가 시급한데 웬 채식이냐는 거죠. 2020년 노르웨이의 비영리단체 ‘잇’(EAT)과 영국 의학저널 <랜싯>이 주요 20개국 국가의 음식 소비에 따른 생태발자국을 정리한 보고서를 보면, 현재 한국인처럼 먹으면 지구 2.3개가 필요하다고 해요. 1978년 한국인의 식단으론 지구 1개면 됐는데 말이죠. 그렇다고 1970년대 한국 식단이 부실했던 건 아니에요. 지금보다 더 건강했죠. 1973년도에도 한국인은 하루에 3천칼로리 이상을 섭취했거든요. 2019년도엔 3450칼로리로 10%가 늘고요.
섭취 칼로리 구성을 보면 약 40년 동안 많이 달라져요. 1973년엔 녹말음식이 78.6%로 가장 높고, 기타(10.2%), 동물성 식품(4.1%), 설탕(2.9%) 순이었는데, 2019년엔 녹말음식이 34.5%로 줄고, 동물성 식품(19%), 식용유(15.9%), 설탕(13.4%) 등의 순이에요. 육류와 식용유 섭취가 늘면서 산림이 더 파괴된 거죠. 그래서 필요한 지구의 개수가 두배로 늘었고요.”
이 작가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내놓은 2019년 8월 ‘기후변화와 토지’ 특별보고서도 책에서 인용한다. “이 보고서는 전세계 모든 인류가 고기·생선·달걀·우유 등 동물성 식품을 순식물성(완전 채식) 상태로 바꾸면 2050년까지 매년 약 80억톤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2018년 배출한 온실가스 전체가 459억톤인 걸 감안하면 전체 온실가스의 17.4%가 동물성 식품 섭취를 위해 발생하는 것이다. 도로·비행 등 운송 수단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전체의 16.2% 수준인 걸 감안하면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려는 노력 그 이상으로 식단을 순식물성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58쪽)
탄소 배출만 집중하기엔 너무 심각
―‘육식만 안 하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해왔어요. 해양 생물의 중요성을 언급한 장을 보니 아니더군요.
“미래세대의 탄소예산(지구 온도를 지키기 위한 탄소 배출량 상한선)을 늘리는 데에 해양 생태계를 보존하는 것만큼 직접적, 즉각적 효과를 낼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육상 생물은 살아 있을 때 머금었던 탄소를 죽은 뒤 분해되는 과정에서 다시 공기 중으로 배출해요. 하지만 해양 생물은 몸속에 저장한 탄소를 죽은 뒤에도 해저에 수천년 이상 저장해요. 해양 생물 개체수 유지가 탄소 흡수에 도움이 되는 거죠.”
―탄소 배출 문제보다 흡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뭔가요?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머무는 시간이 150년이에요. 반감기를 따지면 60~80년 정도 지나야 서서히 배출 감축 효과를 체감하는데, 수십년을 기다리기엔 당장이 너무 급한 거죠. 탄소 배출 감소에만 방점이 찍혀 있다 보니 흡수도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한국이 탈석탄에 집중하는 게 일종의 데이터의 함정 같아요.
“한국은 화석연료 관련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80%가 넘어요. 축산 관련 온실가스는 2.1%밖에 안 되죠. 그래서 축산 관련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굳이 식단을 식물성으로 바꿀 필요가 있냐고 해요. 한국이 농업·축산 온실가스 배출 비율이 적은 건 다른 나라에서 사료 등을 수입하는 ‘외주’를 준 덕분이죠. 전지구적 연대가 필요한 이유예요.”
―책에서 언급한 기후위기 대응 불평등에서 꼬리칸과 1등칸이 나뉜 영화 <설국열차>가 떠올라요.
“한국은 그래도 1등칸이에요. 하지만 기후위기가 지금보다 더 심각해지면, 위기에 처한 나라에선 안전한 국가로 이동하려고 할 테죠. 그때 우리는 기후난민을 받을 준비가 돼 있나요? 예멘 난민을 받을 때도 혐오의 말들이 나왔는데요. 앞으로 기후난민 문제까지 함께 고민해야 해요.”
자연식물식으로 미각 재활
이 작가가 말하는 ‘기후미식’은 자연식물식이다. 동물성 식품뿐 아니라 식물성 기름과 설탕 및 정제 당분 또한 최대한 배제한다. 언뜻 채식(비거니즘)과 닮았지만, 채식보다는 좀 더 유연하다고 설명한다. “비거니즘은 동물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실천의 일환으로서 탈육식하는 것에 반해, 자연식물식은 윤리적인 측면보다 인간 건강에 가장 이로운 식단은 무엇이냐는 관점이거든요. 비거니즘은 비타민 디(D)가 식물 혹은 동물에서 온 건지 구분하지만, 자연식물식은 미량의 동물성 식품을 식사 환경에 따라 어느 정도 용인해요.” 이 작가는 2011년부터 자연식물식을 실천하고 있다.
―자연식물식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환자 때문이었어요.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자 중에 약을 먹어도 수치가 개선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도움을 줄 수 없으니 그 사람들에게 저는 의사가 아닌 거예요. 회의감이 들었어요. 당시 황성수 선생님이 현미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길래 치료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효과는 어느 정도인지 먼저 제 몸에 실험해본 거예요.”
―자연식물식으로 전환한 뒤 정말 몸이 달라지던가요?
“어렸을 때부터 축농증과 비염이 있어요. 1년에 한두차례 목이 아팠는데, 자연식물식을 한 뒤엔 10년 동안 딱 한번 있었어요. 피로도 없고요. 주의해야 할 점은 있어요. 피로감이 없으니까 잠을 적게 자게 돼요.(웃음)”
이 작가는 기후미식에서 기후와 건강 두개의 축 모두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대체육에 배양육을 포함하는 논의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배양육은 동물성 식품과 똑같이 건강에 해롭거든요. 콜레스테롤을 증가시키고, 암세포의 성장을 촉진하고, 인슐린 저항성을 악화시키는 측면에서 똑같거든요. 탈육식이라는 뜻은 좋은데, ‘비건 가공식품’이나 배양육을 먹고 건강이 안 좋아지면 ‘비건 ’의 매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죠 .”
―동물성 식품이 왜 해로운가요?
“동물성 단백질은 만성질환을 유발해요.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먹을수록 심혈관 질환 사망이 증가해요. 1983년 한국인 10만명당 심근경색 사망률은 1.6명이었는데 2020년엔 19.3명으로 1206% 증가했어요. 인슐린 저항성도 지방, 설탕, 동물성 단백질이 원인으로 꼽혀요. 알츠하이머병은 인슐린 저항성의 끝판왕이고요. 식물성 단백질은 이런 위험과 관련 없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어요. 네덜란드, 캐나다, 스웨덴 등에서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식이지침을 만들었지만, 한국은 여전히 동물성 단백질 위주예요.”
―요즘 텔레비전에 자연식물식과 거리가 먼 먹방이 많이 나오잖아요.
“불편하죠. 식단을 바꾸려면 ‘미각 재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맛있다고 인식하는 음식도 사회적으로 결정이 된 거지, 생물학적으로 결정이 된 건 아니거든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옳고 그름을 배우는 것처럼, 자연 그대로의 맛을 느끼기 위해선 먹방으로 형성되는 ‘사회적 입맛’을 극복할 필요가 있는 거죠.”
―미각 재활을 어떻게 하나요?
“한달 동안 유럽을 다녀오고 오랜만에 김치를 먹으니까 너무 매운 거예요. 예전엔 외국인들이 김치가 너무 맵다고 하면 이해가 안 됐거든요. 2주만 동물성 식품 등을 끊으면 ‘맛’이 새롭게 정의될 거예요. 지속가능한 건강 식단을 실천할 수도 있고, 지속가능한 기후미식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추천해주고 싶은 자연식물식이 있나요?
“케이(K)-푸드요. 현미밥에 채소 반찬, 된장국만 먹어도 맛있어요. 제철에 먹는 쌈채소도요. 다음 책은 제가 아는 자연식물식 레시피를 담아볼까 싶어요. 우리 사회에 기후미식가가 늘수록 좀 더 과감한 기후위기 정책이 촉진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기후미식가들이 편안하게 기후미식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기반을 만들어주는 게 필요해요.”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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