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력존엄사법'이 쏘아올린 공..권리인가 사회적 타살인가

안경진 기자 2022. 8. 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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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력존엄사법 대표 발의
가망 없는 말기 환자도 연명의료 중단 허용 필요성 제기
종교계·의료계 "생명경시 풍조 확산 등 부작용 우려" 반대
이미지투데이
[서울경제]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에게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해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돕는 일명 '조력존엄사법'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인공호흡기를 떼거나 심폐소생술을 거부하는 등 연명의료 중단의 대상을 임종기 환자로 제한하는 현행법을 개정하고, 가망이 없는 말기 환자에게도 선택권을 제공하자는 게 법안의 취지. 반면 생명경시 풍조를 부추기고 사회적 타살을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조력존엄사에 앞서 호스피스·완화의료 시스템 확대가 시급하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 2018년 연명의료제도 시행에도···소외받는 말기 환자들

발단은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15일 대표 발의한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었다. 조력존엄사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담당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 하는 개념이다. 가령 독극물 처방은 의사가 하지만 이를 복용 또는 투약하는 주체가 환자 본인이란 점에서 안락사보다 소극적 개념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과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촉발됐다. 보라매병원 사건은 의료진이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를 가족의 요구에 따라 퇴원시켰다가 곧바로 숨져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은 사건이다. 일선 병원들은 이 사건 이후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의 퇴원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10여 년 뒤 76세의 나이로 식물인간 상태가 된 김 할머니의 가족들이 인공호흡기를 떼어 달라며 소송을 제기하며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당시 대법원이 “질병의 호전을 포기한 상태에서 현 상태만을 유지하기 위해 이뤄지는 연명치료는 무의미한 신체침해 행위로써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라며 인공호흡기 제거를 허용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고, 2016년 1월 연명의료결정법이 국회 본회를 통과하기에 이르렀다.

2018년 2월 제도 시행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 또는 보류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것이다. 다만 현행법은 임종기 환자에게만 선택권을 부여한다. 현행법상 식물상태나 말기 환자의 경우 소생 가능성이 없더라도 연명의료를 중단하면 불법이란 의미다. 이러한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새어나온지 4년 여만에 개정안 발의로 이어진 것이다.

◇ ‘생의 마지막’ 스스로 선택할 권리 vs. 생명경시 등 오남용 우려

조력존엄사 법제화에 대한 여론은 긍정적인 듯 보였다. 개정안 발의 직후 한국리서치는 1000명에게 조력존엄사 및 그에 따른 법제화, 지원 정책 등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 결과 '매우 찬성한다'는 의견이 20%, '찬성한다'는 의견이 61%로 조사됐다. 10명 중 8명 꼴로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법안 발의에 앞서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가 올해 5월 발표한 설문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76.3%가 제도 도입에 찬성한 바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요구가 부쩍 높아진 것이다.

조력존엄사 법제화 찬반 조사 결과. 사진 제공=한국리서치

하지만 천주교를 필두로 종교계와 의료계 단체들은 심각한 우려와 함께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존엄사를 가장한 '자살'에 불과하다는 게 이들 단체의 주장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말기 환자의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줄이고, 존엄하고 품위 있는 임종을 돕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동체의 관심과 돌봄이지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가 아니다”라며 “이 법안에는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원하지 않는 결정’을 초래하는 등의 오남용이나 부작용의 위험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조력존엄사는 보다 적나라한 표현으로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이라고도 불린다.

자칫 경제적 이유 등으로 죽음을 강요받는 '사회적 타살'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말기 환자가 '원하지 않는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팽팽하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10만 명당 46.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6배”라며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지 않으면 환자와 가족의 동반 자살, 간병 살인 등 고령화 사회의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역시 “식물 상태 환자의 가족이 연명의료 중단을 병원에 요청했다가 거부당해 법적 다툼을 의뢰해온 경우가 많다”며 “의사조력자살 허용 자체를 봉쇄하는 것은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 호스피스·완화의료 지원 필요성에는 한 목소리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중에서도 일치하는 부분은 존재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이 존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우리나라의 열악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지원제도를 정비하고, 지원을 보다 확대해야 한다는 데도 궤를 같이 한다.

김대균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기획이사에 따르면 서울에서 입원 가능한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15개 기관 260병상에 불과하다. 팬데믹으로 여러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그마저도 7개 기관 105개 병상으로 축소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정 탓에 호스피스 돌봄을 받은 사례도 드물었다. 2020년 서울 호스피스 대상 질환 사망자 1만 4377명 중 3186명(22%)이 호스피스 돌봄을 받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크게 달리다 보니 대기기간도 길다. 서울은 3~4주, 경기도나 인천도 1~3주의 대기기간이 필요하다. 대기 중 임종을 맞는 이들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한 여론을 확인한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가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100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80.7%는 “의사조력자살 법제화보다 말기 환자의 돌봄 환경과 호스피스·완화의료 확충이 우선한다”고 답했다.

모처럼만에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환기된 점은 긍정적이다. 법안 심사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발전적 논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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