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가 없으면 초콜릿도 없다고?

손고운 기자 입력 2022. 8. 2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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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생물다양성 가치, 가격표를 매겨서라도 깨달아야 <모기가 우리한테 해준 게 뭔데?>

‘위-잉.’

여름밤, 귓전에서 맴도는 모기 소리는 성가시다. 얼굴, 목, 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여기저기 ‘탁탁’ 친다. 그래도 ‘윙’ 소리가 계속 나면, 기어이 몸을 일으켜야 한다. ‘치이익.’ 모기의 목숨값 따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모기 앞에서도 ‘생명 존중’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어진다. “(그래서 대체) 모기가 우리한테 해준 게 뭔데?”

독일의 생물학자 프라우케 피셔와 경제학자 힐케 오버한스베르크가 ‘모기’에 대한 비유로 생물다양성을 얘기하는 신간이 나왔다. 우리가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생물조차 각자의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래서 우리 주변을 묵묵히 유지시키고 있다면, 이대로 절박한 위기에 처한 생태계를 내버려둬서 되겠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예를 들어 ‘초콜릿’을 생각해보자.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간식인 초콜릿의 원료는 카카오다. 카카오의 꽃은 다른 꽃들과 달리 아주 작은 수분자(꽃가루 매개자)가 필요하다. 꽃 구조가 복잡하고 너무 작아 3㎜를 넘지 않는 수분자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벌 말고 누가 이 꽃의 수분자가 될 수 있을까. 바로 좀모기과다. 저자는 말한다. “좀모기과가 없다면 우리는 초콜릿도 못 먹는 셈이다! 생물다양성을 살리는데 이보다 더 강력한 이유가 있을까?” 지구상에 대멸종은 다섯 번이나 있었다. 대멸종을 제외하면 자연적 멸종 비율은 100만분의 1 수준이다. 1년에 100만 종 가운데 1종만 멸종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존재한다고 추정되는 800만 종 가운데 200만 종이 멸종위기에 처했다. 저자는 멸종하는 종이 조금만 더 추가돼도 생태계가 순식간에 극적으로 무너지는 생물 멸종의 ‘티핑 포인트’가 지금이라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명 존중’이라는 도덕률이 모두에게 통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토록 추구해 마지않는 경제적 필요”를 이야기해야 할 때다. 자연에 가격표를 매기는 게 거북하게 느껴질지라도, 생물다양성이 가져다주는 ‘생태계 서비스’에 가격표를 달고, 이 경제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열대 해안 지역의 습지와 유사한 숲 생태계 ‘맹그로브’는 2017년 허리케인 ‘어마’가 미국 플로리다 해안을 강타했을 때, 15억원 상당의 물질적 피해를 막아냈다. 이 맹그로브가 지금은 새우 양식장, 항구, 땔감 등으로 이용되면서 망가지고 있다. 문제가 간단하진 않다. 지구 표면의 약 2%에 불과하지만 세계 생물종의 약 50%가 사는 ‘열대우림’은 생물다양성을 위해 지켜야 할 1순위다. 하지만 열대우림 국가들은 전세계 사람들을 위해 개발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생물다양성 보호를 둘러싼 부담과 혜택이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는 딜레마, 완전하진 않지만 해법의 실마리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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