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큰돌고래 지느러미만 모았어요
“삼팔이는 상처가 별로 없는 편인데, 지느러미 각도가 매끈하고 상처 밑부분이 살짝 튀어나와 있어요. 이런 전반적인 각도와 특징을 조합하면 삼팔이라는 걸 알 수 있죠.”
2022년 8월15일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만난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마크)의 장수진 연구원이 삼팔이 지느러미 사진을 살펴보며 말했다. 마크가 제작한 2021년판 등지느러미 카탈로그(FIN BOOK)에는 남방큰돌고래 170마리의 등지느러미 사진이 실려 있다. 제주도 연안에는 110~120마리의 남방큰돌고래가 사는데, 삼팔이·춘삼이·복순이 새끼를 포함해 새로 발견되는 개체를 누적해 더한 숫자가 현재 170이다. 이들을 식별하는 데 주로 등지느러미의 형태나 지느러미 상처가 사용된다. 전통적인 돌고래 연구 방식이다. 마크는 돌고래들에게 ‘JTA(남방큰돌고래 제주개체군)+숫자’로 결합된 개체식별코드를 부여한다. 삼팔이는 JTA003이다. 일부 개체에겐 이름도 지어줬다.
“현장에서 (돌고래 무리를) 보다가 눈에 익은 아이가 나왔는데 88번, 46번이 나온 것 같다고 말하면 그 개체를 바로 떠올리기가 어렵잖아요. 특징적인 아이들은 이름을 붙여주는 거죠. 네모는 상처의 일부가 네모 모양이라서 네모고요, 이 아이는 상처 모양이 (이스터섬의 석상) 모아이를 닮아서 모아이라고 불러요. 그 이름으로 현장에서 빠른 식별이 가능해요.”
멀리서 보면 다 같아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처의 무늬, 흉터, 색깔 등이 저마다 다르다. 제돌이나 춘삼이는 지느러미에 새긴 동결표식 ‘1’ ‘2’ 때문에 식별이 비교적 쉬운 편이다. 태산이(2022년 6월 사망)와 복순이는 위성추적장치(GPS)를 달았던 흉터가 남아 있다.
남방큰돌고래는 무리지어 사는 특성이 있는 만큼 방류된 돌고래들끼리 ‘사이좋게’ 몰려다니지는 않을까. 장 연구원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냥 사람 같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서로 알고, 같은 무리에 있을 때도 있지만 친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죠.”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30여 마리가 하나의 무리를 구성하는데 이 무리는 고정된 게 아니다. 수시로 만나고 합쳐지며 흩어진다. 방류된 돌고래라고 특별히 다를 리 없다. 제돌이, 삼팔이, 춘삼이, 복순이 등이 사이좋게 어울려 지낸다는 건 인간의 상상으로나 가능한 그림이다. 2015년 함께 방류됐던 태산이, 복순이도 수족관을 벗어나니 더는 붙어 다니지 않았다.
장 연구원은 2013년 제돌이 방류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2017년 김미연 연구원과 함께 제주에 마크를 설립했다. “(돌고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생물이잖아요. 아이콘화할 정도로. 그럼에도 돌고래들의 삶은 실시간으로 안 좋아지는 걸 연구하면서 알게 됐어요.”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기하급수로 늘어나면서 남방큰돌고래를 위협하는 요인도 증가했다. 돌고래 관광도 그중 하나다. 제주에 현재 남방큰돌고래 선박관광 업체는 5곳으로 추정된다. “선박에 사고를 당하든, 건강이 안 좋아지든 출생률, 사망률이 영향받으면서 개체군을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힘들어졌다는 해외의 연구결과가 있어요. 바다로 나가서 돌고래를 보는 것 자체가 (돌고래가) 하고 있던 행동을 멈추게 하는 ‘교란’이거든요. 관광 어선과의 거리나 관광 시간을 더 제한할 필요가 있어요.”
연간 8억t의 해양쓰레기, 각종 개발로 서식지 면적도 급감했다. 장 연구원이 2022년 8월11일 국회에서 열린 ‘제주 남방큰돌고래 보호를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과 2016년 남방큰돌고래의 일반서식지와 핵심서식지의 면적을 비교해보니 일반서식지는 380.105㎢→46.290㎢로 급감했고, 그 가운데 핵심서식지는 44.461㎢→12.374㎢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바다에 사는 생물이니까 다른 데 살면 되겠지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계속 줄어들어 파편화된 서식지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거예요. 동물의 어떤 종은 서식지와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어요.”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인기 때문에 관광 어선 수요가 늘어나, 장 연구원은 걱정이 크다. “드라마 캐릭터가 좋아서 좋아하는 건지 드라마 속 생물이 매력적이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관심이 많이 생긴 건 좋은 일이긴 해요. 그런데 모든 종류의 관심이 항상 다 좋은 건 아니에요. 드라마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선박을 이용해 관광하거든요. 좋은 방향으로 좋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제주=글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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