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큰돌고래 무리는 '비봉이'와 말 나눴을까
“저기저기!”
2022년 8월16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해안도로. 사람들이 도로변에 차를 세워두고 바다를 향해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순간 탄성이 터졌다. 일렁이는 파도 위, 뾰족한 등지느러미 여러 개가 겹겹이 포물선을 그리며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물살을 타고 파도를 넘는 미끈한 몸뚱이도 보였다.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던 제주도 ‘남방큰돌고래’ 무리였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돌고래 무리는 이미 저만치 멀어졌다.
서귀포시 대정읍은 제주 연안에 사는 남방큰돌고래의 주요 서식지다. 이날 남방큰돌고래 무리를 목격한 지점은 수족관에서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 야생적응 훈련 중인 남방큰돌고래 ‘비봉이’가 지내는 해상 가두리와 불과 2㎞가량 떨어진 곳이다. 돌고래 무리는 비봉이와 마주쳤을까.
다 바다로 돌아가던 순간에도 ‘잊혀진’ 돌고래
비봉이가 있는 가두리는 대정읍의 한 포구에서 300m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설치돼 있다. 이날 아침 가두리 인근에서 만난 이용자(69)씨는 “그럴 법한 장면”을 목격했다고 했다. 가두리 쪽을 지켜보던 8월8일 오후 6시 41분께 가두리 바깥쪽으로 1~2m 거리에서 수면 위를 맴도는 돌고래의 등지느러미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유튜브 영상과 언론 보도로 비봉이의 사연을 알게 됐다. “비봉이랑 (등지느러미가 보인 돌고래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 아닐까요?” 드론 카메라와 시시티브이(CCTV·폐회로텔레비전)로 보이는 비봉이는 유유히 유영하며 수면 위로 간간이 모습을 비칠 뿐이다.
비봉이는 2005년 4월 제주 한림읍 비양도 앞바다에서 혼획됐다(다른 물고기와 함께 잡힘). 바다에 쳐져 있던 그물 안에 들어온 것이다. 붙잡힌 지역의 이름을 따서 비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뒤 17년 동안 수족관에 갇혀 지냈다. 다른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춘삼이·삼팔이(2013년), 태산이·복순이(2015년), 금등이·대포(2017년)가 차례로 바다로 돌아갔다. 비봉이는 ‘국내 수족관에 남아 있는 마지막 남방큰돌고래’라는 슬픈 타이틀을 얻었다. 그리고 2022년 8월3일 해양수산부가 비봉이의 해양 방류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비봉이는 바다로 돌아갈 채비를 하게 됐다. 발표 다음날 퍼시픽리솜(옛 퍼시픽랜드) 수족관에 있던 비봉이는 바다에 설치된 직경 20m, 높이 8m의 원형 가두리 안으로 옮겨졌다.
비봉이는 ‘잊힌’ 돌고래였다. 2013년 제돌이를 비롯한 ‘쇼 돌고래’ 3마리가 국내 최초로 바다로 돌려보내졌을 때다. 퍼시픽랜드 관계자들은 2009~2010년 포획이 금지된 남방큰돌고래를 불법으로 사들여 돌고래쇼에 동원한 혐의(수산업법 위반)로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다. 그때 태산이·복순이·춘삼이·삼팔이는 국가에 의해 몰수됐으나 비봉이는 공소시효 이전에 잡혔다는 이유로 몰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 뒤 17년이 흘렀다.
“2017년 퍼시픽랜드의 돌고래쇼를 모니터링할 때였어요. 비봉이가 쇼를 거부하는 모습을 봤어요. 먹이 시간이 곧 쇼 시간이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해야만 배를 채울 수 있는데 비봉이는 하기 싫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더라고요. 전언에 따르면 비봉이는 고집스러운 성격이래요. 쇼를 보이콧할 수 있는 유일한 돌고래이기도 한 거예요. 비봉이도 꼭 바다로 돌려보내야겠다, 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8월15일 대정읍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황현진 핫핑크돌핀스 대표의 말이다. 그 뒤로도 비봉이가 쇼를 거부하는 모습이 재차 목격됐다.
수족관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쫓으며
퍼시픽랜드를 인수한 호반호텔앤리조트가 2021년 12월31일 퍼시픽리솜 공연을 종료하고 돌연 돌고래를 방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비봉이와 큰돌고래 태지, 아랑이의 거처를 둘러싼 논의가 본격 시작됐다. 호반 쪽은 수족관 자리에 새로운 리조트를 세울 계획이다. 바다쉼터(고래 생크추어리) 건설, 바다로의 방류 등을 시민단체와 논의하던 호반 쪽은 2022년 4월 태지와 아랑이를 거제씨월드로 무단 반출해버렸다. 거제씨월드는 2014년 개장한 이래 고래 11마리가 숨져 ‘고래들의 무덤’이라 불린다. 핫핑크돌핀스와 제주녹색당은 퍼시픽리솜과 거제씨월드를 해양생태계법과 야생생물법 위반 등의 혐의로 제주경찰청에 고발했다. 태지, 아랑이가 떠난 뒤 수족관에 홀로 남은 비봉이는 한때 수족관에 비치는 자기 그림자만 쫓아다니는 이상 행동을 보였고 조련사들은 비봉이 옆에서 함께 수영하며 외로움을 달래줬다.
해수부, 제주도, 호반호텔앤리조트, 핫핑크돌핀스, 제주대학교 등 5개 기관과 단체, 전문가들은 비봉이를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 ‘방류협의체’와 ‘기술위원회’를 꾸렸다. 해수부에 따르면, 비봉이의 해양 방류는 다섯 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방류 가능성 진단과 방류 계획 수립(1단계)→ 사육 수조 내 적응 훈련(2단계)→ 가두리 설치 및 이송(3단계)을 거쳐 현재는 4단계인 가두리 내 야생적응 훈련을 진행 중이다. 야생에서의 삶의 방식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끝나면 방류 가능성을 최종 판단한다(5단계). 해양 방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별도의 보호·관리 방안을 찾는 선택지도 열어뒀다.
비봉이가 대정읍 인근 바다로 옮겨진 이유는, 이곳이 제주 연안에 서식 중인 남방큰돌고래 120여 마리의 핵심 서식지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비봉이 해양 방류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 ‘야생 무리로의 합류’를 꼽는다. 남방큰돌고래는 높은 사회성을 지녔다. 수십 마리씩 무리지어 생활한다. 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길목에서 비봉이와 야생 무리의 교감을 유도하고 합류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가두리에 설치된 3개의 음향탐지 기기로 돌고래 특유의 소리(휘슬음과 클릭음)를 녹음하고 분석할 계획이다.
이는 곧 사람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것을 뜻한다. 하루에 살아 있는 고등어나 잿방어, 다찌(독가시치의 제주 방언) 15~20마리 정도를 공급한다. 활어 사냥은 야생 방류 훈련의 첫걸음이다. 활어 공급 시간대는 따로 정해두지 않았다. 보트를 타고 접근해놓고서도 먹이를 주지 않을 때도 있다. 지시와 순응의 쳇바퀴 안에 돌고래를 가둬놓고 순치하던 수족관을 잊고 예측 불가능한 야생의 특성에 익숙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빠른 물살, 활어에 적응한다고 한들?
비봉이는 가두리 생활 초기만 해도 움직이는 먹이에 거부감을 보였다. 한번은 먹이를 줬는데 오물오물하다 뱉어내며 투정을 부렸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죽은 채 떠오르는 먹이는 없어졌다. 비봉이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시간도 점차 줄었다고 한다. “남방큰돌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건 숨을 쉬는 경우가 아니고선 드문 일이잖아요. 야생의 본능을 회복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죠.”(조약골 핫핑크돌핀스 대표)
방류 과정을 총괄하는 김병엽 제주대 교수를 만났을 때, 그는 사무실에 걸려 있는 달력의 ‘15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8월15일은 백중사리이다. 1년 중에 간만의 차가 가장 심한 시기로, 이날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거친 물살이 가두리를 뒤흔들었다. “간밤에 실시간으로 체크하다가 아침 7시가 되니 파도가 낮아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그제야 한숨 놨죠. 비봉이는 이런 고비를 넘기면서 야생의 빠른 물살에 적응하는 거예요.”
그러나 비봉이의 방류를 바라보는, 반대쪽의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비봉이의 마음은 인간이 알 수 없고 비봉이의 생존 가능성이나 행복에 대한 판단은 엇갈린다. “활어를 잘 먹는다? 무리와 자주 마주친다? 그런 모습은 (방류 뒤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금등이, 대포 때도 다 관찰됐어요.”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의 말이다.
동물자유연대 등의 우려 섞인 걱정은 일리가 있다. 수족관 돌고래 방류를 세 차례 경험하며 돌고래의 원서식지에, 수족관에서의 삶이 길지 않은 개체를, 짝지어 방류할수록 방류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비봉이의 나이는 23살로 추정된다. 인간 나이로 치면 40대 중반인 셈이다. 네댓 살 어린 나이에 포획된데다 수족관에서 감금된 기간(17년)이 야생에서 살았던 기간보다 길다. 비봉이는 방류에 성공한 제돌이나 춘삼이, 삼팔이, 복순이(수족관 생활 기간 3~6년)보다는, 2017년 방류된 이후 발견되지 않아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금등이, 대포(수족관 생활 기간 19~20년)에 더 가깝다. 게다가 비봉이는 홀로 방류를 준비 중이다. 다른 개체들과 함께 방류를 준비한다면 서로 경쟁하고 따라 하면서 야생의 본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얻는데, 비봉이한테는 그럴 친구가 없다.
조 대표는 비봉이의 방류 결정도 성급했다고 지적한다. 방류 적합성이 사전에 충분히 검증되지 못했는데 2022년 6월8일 해수부가 주최한 1차 회의 때부터 이미 방류는 결정돼 있었다는 것이다. “돌고래 두 마리의 불법 반출을 비봉이의 방류로 덮었어요. 기업의 윤리가 일관되지 않죠. 더군다나 비봉이의 방류는 리조트 건설을 위해 돌고래를 처분하는 데 방점이 있습니다. 성급하게 방류를 결정함으로써 다른 대안을 논의할 기회가 사라져버렸어요.” 호반 쪽은 방류 비용을 전액 부담한다. 그러나 야생 방류에 실패할 경우 비봉이를 회수하고 수족관에 다시 옮기는 비용을 호반이 부담한다는 조항은 협약서에 빠졌다. 논란이 일자, 해수부 관계자는 “협의의 여지가 있다”고 해명했다.
‘비봉이’ 목숨을 건 모험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비봉이가 바다로 나갔으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재포획하는 등 마땅한 대처법이 없다는 우려도 같은 맥락이다. “책임보다는 구호나 낭만에 기댄다고 할까요. 당연히 돌고래는 바다에 있어야죠. 그런데 그건 돌고래를 바다에서 데리고 와서 전시용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고요. 수족관에 이미 가둔 돌고래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개체별로 개별적인 판단을 내려야 해요. 나갈 수 있는 애라면 나가면 제일 좋죠. 바다로 못 나가는 상태라면 바다쉼터(생크추어리)가 있으면 좋죠. 이도 저도 아니라면요. 비봉이는 17년 동안 수족관에서 살았고 야생에서 적응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동물이 편안한 상태에서 있게 해주는 것도 필요하거든요.”
방류협의체의 입장은 정반대다. 핫핑크돌핀스 쪽은 ‘수족관 생활 몇 년 이상이면 야생에 방류했을 때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생물학적 결정론에 매몰되면 비봉이는 결국 수족관에서 죽어가는 수밖에 없냐고 되묻는다. “수족관의 입장에서만 돌고래를 보면 안 돼요. 그건 절반의 관점에 불과합니다. 야생의 입장이 빠졌어요.”(조약골 핫핑크돌핀스 대표)
조 대표는 방류에 실패했다고 여겨지는 금등이와 대포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여러 대안을 고안했다고 설명했다. 야생 남방큰돌고래가 자주 목격되는 대정읍 앞바다에 가두리를 설치했고, 인간이 아닌 비봉이를 기준으로 스케줄을 짜기 위해 방류 날짜도 특정해두지 않았으며, 야생적응 훈련과 방류는 모두 비공개로 하는 등 인간과의 접촉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수족관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비봉이에게 더 행복한 일인가요. 감금 상태에서 행복할 수는 없어요.”
김병엽 교수 역시 말한다. “만약 제가 의사라고 한다면 환자가 죽어가는데 살릴 수 있는지 없는지 따질 게 아니잖아요. 우선은 살려야 하잖아요. 방류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잖아요. 그렇다고 방류하겠다고 못박은 것도 아니고요.”
주사위는 던져졌다. 비봉이는 이미 가두리 안에 있고 방류 여부는 머지않아 결정될 것이다. 김병엽 교수는 비봉이의 야생적응 과정이 길어지면 애초 예정한 방류 판단 시점인 8월 말 9월 초를 넘길 수도 있다고 본다. 방류 적합-부적합 여부를 판단하는 과학적 기준을 마련하고 그 기준에 미달한다면 과감하게 방류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판단은 투명하고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해수부 관계자는 “지금의 방류 계획이 완벽하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다. 시민단체 쪽에서 제기하는 우려를 알고 있다. 보완이 필요한 부분에 충분한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방류 부적합 판단이 내려져 수족관으로 돌아오는 것도 비봉이에게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것이다. 기준에 미달해도 방류협의체가 방류를 밀어붙일 거란 의심도 나온다. 그래서 관련 단체마다 입장은 다르지만 방류 프로젝트가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만은 같다.
일본과 러시아의 돌고래는?
만약 비봉이가 바다로 떠난다면 국내 수족관에는 일본 와카야마현 다이지나 러시아에서 붙잡혀 팔려온 돌고래 개체들이 남는다. 수족관 돌고래는 원래 살던 서식지에 놓아주는 것이 원칙이다. 해수부는 2023년 하반기 해외 방류지에 벨루가를 방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제주 연안보다 해외 방류는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바다쉼터도 아직은 먼 이야기다. 가두리 양식장 형태의 고래쉼터를 바다에 만들겠다는 해수부의 구상은 200억~300억원에 달하는 예산 확보, 어민과의 협의 등이 전제돼야 하기에 실행으로 옮겨질지는 미지수다.
2022년 8월 기준으로 국내 고래류 감금시설 5곳의 수족관에 21마리의 고래류가 감금돼 있다. 수족관에 남은 돌고래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은 비봉이의 마음을 모른다. 인간이 멋대로 야생에서 데려와놓고, 그 잘못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방식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는 과학보다는 윤리의 문제일지 모른다. 2013년 제돌이와 삼팔이, 춘삼이의 야생 방류는 수족관에 돌고래를 가둬놓고 인간 멋대로 착취하는 건 잘못됐다고 공표하고 이를 바로잡아나가는 첫걸음이었다. 2022년, 그때보다 질문은 더 구체적이고 어려워졌다.
제주=글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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