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부딪힐 것"..'쿠팡 vs 네이버' 전쟁 얼마 안 남았다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쿠팡과 네이버는 숙명의 라이벌이다. 출발지는 달랐지만 결국 둘의 결전은 마주 보는 열차처럼 한 곳으로 집중되고 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뉴스 포털로 사업을 시작했고, 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일종의 공동구매 쇼핑몰에서 기회를 찾았다. 한 세대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국내 e커머스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은 양사의 지향점은 ‘플랫폼의 제왕’이다.
“쿠팡, 카카오, 당근마켓 모두 네이버에 빚졌다”
네이버는 정보(뉴스, 가격 비교, 우리동네 등)와 재미(웹툰, 뿜 등)를 매개로 사용자와 가입자를 최대로 늘리는 데 엄청난 공을 들였다. 이렇게 판을 벌여 놓으니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은 알아서 물건을 팔러 네이버로 몰려들었다. ‘사람이 모이면 돈은 언제든 벌 수 있다’는 원리를 국내에서 최초로 시현한 건 네이버다.
엄밀히 말해 쿠팡도, 심지어 카카오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네이버의 아류다. 쿠팡은 고객을 잡아 둘 핵심 무기로 쇼핑을 택했다. 세상의 모든 물건을 가장 싸고 빠르게 배송해준다는 아마존식 발상이었는데 2015년에 김범석 창업자가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를 발표했을 때 거의 99%는 “곧 망할 기업”이라고 폄훼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쿠팡은 네이버를 충분히 위협하고도 남는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올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쿠팡은 전년과 비교해 영업적자 규모를 10분의 1 수준인 847억원(6714만달러)으로 줄인 데 이어 2014년 로켓배송 런칭 후 처음으로 835억원 (6617만달러) 규모의 조정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 순이익을 냈다고 밝혔다. 상장 후 매 분기 2500억~6000억원의 손실을 낸 쿠팡의 적자 규모가 처음으로 1000억원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의 대학 전공은 미디어였다. 배운 바대로라면 네이버처럼 뉴스 포털로 시작하는 게 맞을 법했다. 당시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짐작건대 구글식의 포털이 한국 시장엔 이미 포화 상태인 만큼 아마존 웨이를 모방하는 것이 훨씬 생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추론만 할 뿐이다.
쿠팡의 진군에도…국내 투자 멈추고, 해외로 눈돌린 네이버
쿠팡의 전현직 임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쿠팡은 언젠가 네이버와 직접 승부를 펼칠 날이 올 것임을 분명히 예감하고 있었다. 단순화의 위험이 있긴 하지만, 전략은 두 가지였다. 로켓배송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로 네이버 쇼핑과의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 최우선시됐다. 물류로 판을 바꾸는 전략이다. 공수로 치면 전면 공격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무기는 첫 번째와 동전의 양면이자 일종의 음(陰)의 전략이다. 경쟁사들이 쿠팡을 따라 하게 만드는 것이다. ‘쿠팡이 물류 시설과 인력 등 인프라에 수조 원의 돈을 쏟아 부었듯이 너희들도 한번 해봐라’는 셈법이었다. ‘드루와 전략’이라 명명할 만하다. 실제 꽤 많은 이들이 쿠팡 모델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새벽배송이란 걸출한 아이디어 하나를 보태긴 했지만, 마켓컬리도 ‘쿠팡의 맛있고 세련된 버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세계그룹의 SSG닷컴, 롯데쇼핑의 롯데온을 비롯해 GS리테일은 요기요와 연합전선을 구축해 빠른 배송에 사활을 걸고 있다.
쿠팡의 전략은 상당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오프라인 중심의 조직이던 기존 유통 대기업들은 벼랑 끝에 몰린 채 디지털 전환(DX)을 진행 중이다. 쿠팡, 네이버처럼 아예 온라인과 IT 기반 위에서 출발한 기업들과 달리 전통의 커머스 대기업들은 막대한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허허벌판 강남에 최신식 아파트를 짓는 것과 강북의 오래된 주택을 재건축하는 일에 비유할 만하다. 신세계그룹의 핵심인 이마트는 G마켓글로벌을 인수하느라 올 2분기에 적자를 냈고, 롯데쇼핑은 수천억 원을 쏟아부은 롯데온이 지금까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경쟁사들은 속속 새벽배송 시장에서 기권의 수건을 던지고 있다.
유통 및 IT업계의 최대 관심은 쿠팡이 펼쳐 놓은 그물망에 네이버가 제 발로 걸어갈 지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네이버는 걸려들지 않았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네이버는 직접 쿠팡의 공세에 맞설 태세였다. 쇼핑 경쟁력을 잠식당했다간 자칫 포털로서의 위력을 잃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에 대응하려면 물류와 관련한 공백을 어떻게든 채워야 했다.
당시 네이버의 선택지는 상당히 좁은 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독과점 문제로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감시 대상이었던 데다 혁신의 상징이던 카카오마저 문어발식 확장으로 뭇매를 맞을 위기였다. 네이버가 물류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는 얘기가 나오는 순간, 사방에서 공격이 시작될 것임은 명약관화했다. 네이버는 비즈니스 협력이란 중수(中手)를 택했다. CJ대한통운과 물류 제휴를 맺은 것이다.
네이버는 대기업 집단 중에선 몸집이 매우 가벼운 그룹이다. 약 33조원의 전체 자산 중 건물 등 유형 자산은 2조2391억원(6월 말 기준)에 불과하다. 관계 기업 등에 대한 투자 자산만 18조원에 달한다. 만일 네이버가 쿠팡처럼 물류 인프라 투자에 손을 대는 순간, 네이버는 본연의 색깔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류, 중기, 고객 합친 e커머스 생태계 구축 나선 쿠팡
네이버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쿠팡과의 정면충돌을 피했다. 대신 네이버는 해외로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IT업계에선 네이버의 핵심 엔지니어들이 해외로 대거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네이버 쇼핑을 총괄했던 한성숙 전 대표만 해도 유럽사업개발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올 상반기 기준 네이버 임원 중 연봉이 가장 많다.
네이버가 쿠팡과의 정면충돌을 피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경쟁은 이제부터라는 것이 중론이다. 쿠팡이 네이버의 전매특허 중 하나인 롱테일의 법칙을 구현하려 하고 있어서다. 네이버는 ‘20%의 머리가 아닌 80%의 꼬리에 기반해 돈을 번다’는 인터넷 비즈니스의 원리를 활용해 국내 정보 및 뉴스 플랫폼 시장을 장악했다. 수많은 소상공인이 네이버로 몰려들었고, 이들로부터 받은 광고 수익이 네이버 왕국을 일으켜 세웠다.
IT와 광고는 사실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글로벌 광고업의 혁신은 전 세계 금융위기 직후에 발생하곤 했다. 2007년 미 서브프라임발 금융위기 때만 해도 일자리를 잃은 월가의 금융 IT 전문가들이 스타트업 생태계로 뛰어들었다. 일종의 키워드 광고인 CPC 기법이 구글에서 처음 나온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다시 쿠팡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쿠팡이 요즘 가장 강조하는 건 물류를 기반으로 소상공인, 중소기업과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e커머스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성숙 대표가 네이버 국내 사업을 총괄하던 시절에 한참 강조하던 캐치프레이즈를 쏙 빼닮았다. 실제 쿠팡의 소상공인 유치엔 가속도가 붙고 있다. 쿠팡이 최근 발간한 ‘2022년 임팩트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소상공인 수는 15만7000명. 쿠팡의 매출은 2019년 말 7조1530억원에서 지난해 22조2257억원으로 상승했는데, 같은 기간 소상공인들의 거래금액과 매출도 2배 이상 늘어났다. 쿠팡은 지난해만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5800억원을 투자해 판로 확대를 지원했다.
쿠팡플레이라는 OTT를 통해 네이버의 웹툰에 대항할 만한 무기까지 장착한 쿠팡은 막강한 사용자 락인(lock-in)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올 2분기 말 기준으로 쿠팡에서 한 번이라도 제품을 산 고객은 1788만명, 유료 와우 멤버십 회원은 900만명이 넘는다. 넷플릭스(500만명), 멜론(500만명) 등 다른 구독 서비스의 2배 이상 수치다. 올 2분기에도 쿠팡은 유료 멤버십 회원의 무료배송과 무료 비디오 시청(쿠팡플레이), 특별 할인 등에 6500억원을 투자했다.
아마존처럼…온라인 광고 시장 노리는 쿠팡, 네이버와 충돌 불가피
쿠팡이 e커머스 생태계 구축에 주력하는 이유는 아마존의 행보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아마존은 올 초 처음으로 광고 사업 부문의 매출액을 공개한 바 있다. 지난해 4분기 97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2%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분기 아마존 전체 매출액에서 광고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7%였다. 올해도 아마존의 광고 수익은 시장의 예상치를 웃돌았다. 광고로 돈을 버는 업체 중 아마존은 구글, 페이스북에 이어 3위에 올랐다.
광고야말로 큰 비용 투자 없이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이미 쿠팡은 기업 광고 시장뿐만 아니라 ‘데이터 비즈니스’로도 꽤 쏠쏠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쿠팡이란 거대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이 어떻게 판매되는지에 관한 데이터를 유료로 판매 중이다. 일각에선 쇼핑 정보에 관한 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인 닐슨을 위협할 정도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광고, 데이터 비즈니스는 정확히 네이버의 영역과 겹친다. 플랫폼의 제왕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쿠팡과 네이버의 혈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Great war is coming! ’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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