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94세 할머니 생활비 아껴 소외 청소년 장학금 기부

이주형 입력 2022. 8. 2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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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이 능력 되는 범위 안에서만이라도 주위를 돌아보면서 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매년 100만 원을 모아 형편이 어려운 지역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김경숙(94) 할머니는 꾸준한 선행에 관해 묻는 기자 질문에 되레 손사래를 쳤다.

할머니는 시큰거리는 무릎을 연신 매만지면서도 "하나도 안 힘들다"며 "봉사하는 마음만은 앞서 나가는 것 같아서 좋다"고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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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서 해외 불우아동 보고 기부 시작..버스 대신 걸어서 복지관 오가며 돈 모아
김경숙 할머니 "젊은이들 능력 범위 안에서만이라도 주위 돌아보며 살길.."
소외 청소년 위한 장학금 기부하는 94세 김경숙 할머니 [촬영 이주형 기자]

(대전=연합뉴스) 이주형 기자 = "젊은 사람들이 능력 되는 범위 안에서만이라도 주위를 돌아보면서 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매년 100만 원을 모아 형편이 어려운 지역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김경숙(94) 할머니는 꾸준한 선행에 관해 묻는 기자 질문에 되레 손사래를 쳤다.

더 훌륭한 기부자들이 많아서 본인의 소액기부를 알리기가 부끄럽다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할머니는 2010년부터 기부를 시작했다.

수급비와 노령연금 등 60여만 원가량의 월 고정 수입과 노인 일자리 사업 등을 통해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매년 일정액을 대전시 서구 관저종합사회복지관에 기부한다.

해외 불우 아동들의 모습을 TV에서 보고 월 3만 원 정기 기부를 결심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할머니는 "나도 전쟁을 겪은 적이 있어서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안다"며 "못 먹고 못 입는 TV 속 아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동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이후 형편이 어려운 지역 청소년에게 점차 눈길이 갔다고 했다. 아이들이 배움의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제때 마음껏 공부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평생 못 배운 아쉬움을 뒤로 하고 70세가 넘어서야 배재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늦깎이로 사각모를 쓴 본인의 모습이 생각나서다.

버스비 아껴서 기부하는 94세 김경숙 할머니 [촬영 이주형 기자]

할머니는 "생활비를 모아서 학생들을 도와주는 게 이렇게 큰 활력소가 될 줄 몰랐다"며 "30만 원이었던 목표금액도 점차 50만 원, 100만 원까지 불었다"고 말했다.

고정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할머니가 10년간 매년 빠지지 않고 기부금을 마련하는 방법은 절약이다.

가장 손쉽게 아낄 수 있는 것이 시내 버스비였다고 한다.

도보 40분 거리에 있는 관저종합사회복지관까지 걸어서 오가며 왕복 버스비 2천500원을 아껴 1년에 30만 원 이상 모을 수 있었다.

최근 기자가 찾은 7평 남짓한 할머니의 임대 아파트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도 보행기구 2개였다.

워낙 고령인데다 수년간 걷다 보니 5년 전부터는 보행기 없이는 걷지도 못할 정도로 퇴행성 관절염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시큰거리는 무릎을 연신 매만지면서도 "하나도 안 힘들다"며 "봉사하는 마음만은 앞서 나가는 것 같아서 좋다"고 웃어 보였다.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할머니지만, 그동안 기부는 꿈도 못 꿀 정도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20세에 결혼해 아들을 낳은 지 1년 만에 6·25 전쟁이 발발해 걷지도 못하는 아들을 들쳐메고 부산으로 피란길을 떠나야 했다.

휴전 후에도 군에 남기로 한 남편을 따라 전국을 떠돌며 아내와 엄마의 역할만 하다 보니 한평생이 순식간이었다.

2008년부터 복지관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일본어 교육봉사를 하는 것도, 94세 고령에도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중국어와 생활영어 수업에 매번 빼먹지 않고 참석하는 것도 뒤늦은 아쉬움 때문이다.

할머니는 "공부해서 교사가 되고 싶었던 게 내 꿈이었다"며 "아이들이 불편 없이 공부하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돕는 즐거움을 뒤늦게라도 알게 돼서 참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coo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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