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전기차 지원금 뺀 바이든,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는데 [뉴스 쉽게보기]

박재영,임형준 2022. 8. 2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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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AP = 연합뉴스]
치솟는 물가와 낮은 지지율 때문에 고민하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모처럼 좋은 소식이 전해졌어요. 그가 염원하던 법안 하나가 미국 의회를 통과한 거죠. 지난 16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법안이 효력을 발휘하게 됐는데요. 바로 '인플레이션 감축법(The Inflation Reduction Act·IRA)'이라 불리는 법안이죠.

그런데 물가를 잡겠다는 이름과는 달리, 법안의 주요 목적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라 해요. 이번 법안을 두고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기후변화 대응 법안'이라는 평가까지 나오는데요. 친환경 에너지와 관련된 기업들에 막대한 지원금을 주고, 전기차 등을 구입할 때 주는 소비자지원금을 확대하는 게 법안의 핵심이라 해요.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돈 잘 버는 대기업들에 세금을 더 내게 해서 충당하겠다는 계획이고요.

이게 물가를 잡는 거랑 무슨 상관인지 의아할 수도 있는데요. 실제로 이번 법안이 물가 상승률 완화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비판도 나와요. 이런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바이든 대통령이 '역대급'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펼치는 이유는 뭔지, 어떻게 물가를 잡을 수 있다는 건지, 또 우리나라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볼게요.

물가 때문에 잠시 접어뒀던 환경 보호

원래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더 나은 재건법(Build Back Better Act·BBB)'이란 법안을 공약으로 내세웠어요. 사회복지 지출을 늘리고, 친환경 에너지 지원금도 확대하자는 내용이었죠. 하지만 물가가 급격히 오르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어요. 당장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환경이 다 무슨 소용이냐는 거죠. 국민들의 불만이 커졌고, 그의 정치적 입지도 좁아졌어요. 작년 1월에 출범한 바이든 정부의 지지율은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50%대였는데, 최근에는 30%대로 떨어졌죠. 치솟는 물가와 흔들리는 지지율 앞에서 바이든 대통령도 잠시 환경 정책을 접어두는 것처럼 보였고요.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더는 기후변화를 지켜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결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내놨어요. 이 법은 '더 나은 재건법'의 축소판이라 볼 수 있는데요. 무상 교육이나 보육 지원 등의 내용은 빠졌지만, 친환경 에너지와 관련된 부분은 유지됐죠. 곧 시행될 이 법은 그 내용만 730페이지라고 하는데요.

핵심은 기후변화 대응

이 법안의 핵심은 '대기업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어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지원에 활용하자'는 거예요. 먼저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에 매기는 세금인 '법인세'를 인상하는 방법 등으로 7900억달러(약 1035조원)의 재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인데요. 이 돈 중에 4840억달러(약 636조원)를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지원에 사용할 예정이죠. 남는 돈은 정부 적자를 줄이는 데 쓰고요.
특히 지출의 약 80%에 해당하는 3860억달러(약 507조원)가 친환경 에너지 지원금과 기후변화 대응에 투입되는데요. 단지 기후변화 속도를 늦추는 것만이 이번 법안의 목표는 아니에요. 바이든 정부는 최근 석유나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의 가격이 빠르게 오르면서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본 거예요.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늘려서 에너지 공급을 다각화하면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고, 결국 전반적인 에너지 가격도 내릴 것이란 논리죠. 의료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국민들이 체감하는 물가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거고요.

물론 이러한 논리에 의구심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어요. 세금이 늘면 기업이 투자를 줄여서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건데요. 기업이 세금 때문에 힘들다며 가격을 올리면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들이 질 수도 있고요.

더 이상 지켜볼 수는 없다고

그럼에도 이법 법안을 강행한 건 '더 이상 기후변화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으로 보여요. 이제 기후변화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거든요. 올여름 전 세계는 이상기후에 몸살을 앓고 있어요.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각지에서 발생하며 피해가 속출했고 전례 없는 가뭄도 이어지는 중이죠.

미국 남서부 농업지대의 젖줄 역할을 하는 미드호는 가뭄에 말라가고 있어요. 미드호는 2500만명에게 물을 공급하는 미국 최대의 인공호수인데요. 현재 수위는 물을 채우기 시작한 1937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라 해요.

연도별 미드호 위성사진 [자료 제공 = 미국 항공우주국(NASA)]
'500년 만의 가뭄이 찾아왔다'는 얘기가 나오는 유럽은 상황이 더 심각해요. 네덜란드 정부는 시민들에게 샤워 시간을 5분 이내로 줄여달라고 부탁했고, 영국 정부는 머리를 매일 감지 말라고 권고할 정도죠. 이 밖에도 스위스나 크로아티아 등 여러 국가가 정원에 물 주기나 세차, 수영장에 물을 채우는 것 등을 금지하고 있어요.
물만 부족한 게 아니에요

폭염은 물류산업도 마비시켰어요. 독일에는 '서유럽 내륙 운송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라인강이 있는데요. 최근 기록적인 폭염으로 강이 말라 더 이상 배를 띄우기 어려운 수준으로 수위가 내려갔어요. 영국은 40도가 넘는 폭염으로 곳곳에서 열차 선로가 휘고, 공항 활주로가 녹으면서 물류산업이 타격을 입었다고 해요.

가뭄 때문에 에너지 생산도 감소했어요. 유럽의 수력 발전량은 1년 전보다 20% 줄어들었는데요. 원자로를 식힐 냉각수가 부족해지면서 원자력 발전량도 12% 정도 감소했어요.

2022년 7월 13일 기준 [자료 제공 = 미국 항공우주국(NASA)]
폭염으로 인한 식량 가격 상승을 뜻하는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이란 용어까지 등장했어요. 올해 유럽의 곡물 생산량은 최근 5년 평균보다 8~9% 감소할 것으로 전망돼요. 세계 2위의 밀 생산국인 인도는 120년 만의 더위로 생산량이 줄어들자 밀 수출을 전격 금지했고요. 기후변화가 특정 지역이나 국가만의 문제가 아닐뿐더러, 결국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길 수도 있다는 거죠.
겸사겸사 중국도 견제하자

이번 법안에는 기후변화 속도를 늦추면서 동시에 중국의 특정 산업을 견제하는 내용도 담겼어요. 미국에선 신형 전기차를 구매하면 한 대당 최대 7500달러(약 982만원)에 달하는 소비자지원금을 주고 있는데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 대신 친환경 전기자동차 사용을 권장하기 위한 제도죠.

그런데 지금까진 지원금 혜택이 업체별로 연간 판매량 중 20만대까지만 적용됐어요. 작년에만 전기차를 93만대 판매한 테슬라나 2025년까지 연간 20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운 GM엔 다소 부족한 혜택이죠.

그래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업체별 판매량과 관계없이 소비자들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어요. 다만 중요한 조건을 추가했는데요. 미국 내에서 조립·생산된 전기차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죠. 또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도 특정 조건을 만족시켜야 해요. 미국 혹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생산한 원자재 비중이 50% 이상인 배터리를 써야 한다는 조건이에요. 사실상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산업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죠.

이미 지난달 미국에선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견제하기 위한 반도체와 과학법이 통과된 바 있는데요. 반도체에 이어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에서도 중국을 배척하겠다는 거예요. 한국, 일본과 함께 배터리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이 혹여나 배터리를 볼모로 삼아 미국을 협박할 수 없도록 중국 배터리 산업의 성장을 막겠다는 거죠.

희비 엇갈리는 국내 기업들

국내 기업들의 표정도 엇갈리고 있어요. 일단 미국에 관련 장비를 수출하는 태양광 업체들은 수혜를 보게 될 것으로 보이고요. 중국 업체들과 경쟁하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반사이익을 볼 수 있어요. 전기차 판매량이 많아지면 배터리 수요도 증가할 수 있고요. 다만 국내 업체들이 생산하는 배터리 제품의 핵심 소재 중에 중국 의존도가 높은 품목도 있어 걸림돌로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시각도 있어요.

국내 자동차 업계는 미국 전기차 업체와의 경쟁이 불리해질 것으로 보여요.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에 수출하는 전기차를 모두 국내 공장에서 생산하거든요. 이들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미국에 전기차 생산 공장을 짓고 있지만, 그때까지는 1000만원에 가까운 소비자지원금이 나오는 미국 전기차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의 새로운 법안은 국내 기업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또 바이든 정부는 물가 상승률 완화와 기후변화 감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박재영 기자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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