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약발 다했나

2022. 8. 2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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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국가·산업 경쟁력 저하".. 중소기업계 "도입 취지는 상생 협력"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존폐 논란이 뜨겁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화두를 던졌다. 제도의 실효성이 낮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계 반발은 거세다. 경제적 효과만 볼 게 아니라 중소기업의 상생과 보호에 기여하는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 존폐 논란이 제기된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계에서는 부작용이 크다고 강조한다. 제도 도입 후 국가 경제와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친기업·친시장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에서 재계의 주장이 어떤 형태로 반영될지도 관심사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보호와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라는 제도 도입 취지에 따라 제도의 부작용을 보완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제언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광장에서 열린 ‘2022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정부 차원에서도 공정한 시장 환경을 조성해 기업 간 상생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KDI 보고서, 무슨 내용 담았나 KDI는 지난 8월 3일 KDI 정책포럼에 실린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경제적 효과와 정책방향’ 보고서에서 “제도의 실효성이 낮아 점진적으로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KDI는 주장의 배경에 대해 “제도가 적합업종에 포함된 사업체의 퇴출 확률을 낮춰 사업을 유지하는 측면에서의 보호 역할은 했으나, 중소기업의 성과 또는 경쟁력 제고에는 한계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는 특정 품목(업종)에 한해 대기업의 시장 진입과 확장을 제한하는 규정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재벌·대기업의 무분별한 시장 진출과 확장에 제동을 걸기 위해 2011년 도입됐다. 당시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업종은 김(조미김), 김치, 두부, 면류, 순대, 어묵, 세탁비누, 부동액, 레미콘 등 음식품업과 제조업에서 20가지가 넘었다.

적합업종 지정 절차는 대기업의 시장 진출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단체 등이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협력재단인 동반성장위원회에 적합업종 지정 신청을 하면 개시된다. 이후 신청 내용을 토대로 실태조사와 대·중소기업 간담회 등 협의가 진행된다. 양측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조정위원회가 꾸려지는데 대기업 측과 중소기업 측, 위원회 측 각 1명씩 모두 3명의 조정위원이 조정안을 내놓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 동반성장위는 신청일로부터 1년 이내에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적합업종으로 선정되면 기업의 시장 진출은 제한되지만 ‘강제’가 아니라 ‘권고’사항이다. 적합업종 보호기간은 한시적이다. 최초 3년에서 최대 6년까지다. 제도 시행 후 올해 8월까지 모두 111개 업종이 지정됐고, 지금까지 108개가 보호기간이 만료되면서 현재는 고소작업대임대업 등 3개 업종만 지정·운영 중이다. 동반성장위에 따르면 최근엔 정보기술(IT) 플랫폼 시장으로의 대기업 진출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등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 조짐이 불거져 관련 업종의 적합업종 신청 사례가 늘고 있다.

KDI의 이번 보고서는 2008∼2018년(광업·제조업조사) 통계청 자료를 활용했다. 보고서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도입 이후 대기업의 생산 및 고용 활동은 위축된 반면 중소기업의 활동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예컨대 해당 기간 전체 품목 출하액 대비 적합업종 품목 출하액의 비중을 보면 대기업은 1.2%에서 0.5%로 크게 줄어든 반면 중소기업은 7.9%에서 7.6%로 다소 낮아진 수준을 보였다. 또 2008년에는 종사자 수 10인 이상 사업체 중 적합업종 품목을 생산하는 업체가 10.6%에 달했고, 해당 업체들이 전체 부가가치 중 15.1%, 종사자 수 중 12.5%를 차지했으나 2018년에는 사업체 수 비중이 크게 변하지 않은 반면 부가가치와 종사자 수 비중은 10%, 10.9%로 감소했다.



대기업의 투자 기피와 중소기업의 현실 안주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보고서는 “적합업종 품목의 수는 많지 않더라도 대상 업종이 광범위해 거의 모든 업종이 언제든 적합업종 대상으로 지정돼 시장활동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적합업종제도의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또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이 되면 제도의 보호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머무르고자 하는 유인을 갖게 된다는 점도 제도의 역효과에 해당한다고 보고서는 적었다. 보고서는 “적합업종제도가 보호기간에 중소기업의 생산활동에 일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나 대기업의 생산활동을 위축시켜 산업 전반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적합업종제도가 다른 선진국에서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점진적 폐지의 주요 근거로 쓰였다. 보고서를 집필한 김민호 KDI 연구위원은 “유럽이나 미국 등 대다수 선진국의 기본적인 중소기업 지원 방향이 (대기업의 시장 참여 제한이 아니라) 공정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고, 제도가 경제 전체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도입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에 따르면 일본은 ‘중소기업 사업활동의 기회 확보를 위한 대기업자 사업활동의 조정에 관한 법률’을 1977년부터 시행 중이다. 이 법은 대기업이 동종 사업을 경영하는 중소기업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취지다. 중소기업단체가 조정을 신청하면 당국이 대기업에 조정권고를 내릴 수 있다. 한국의 적합업종제도도 해당 법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다만 일본은 한국처럼 특정 업종을 지정해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제한하는 방식이 아닌 두부와 라무네(탄산음료의 일종) 등 몇가지 음료에 한정하는 방식으로 대기업의 참여 제한을 최소화하고 있다. 인도가 한국처럼 적극적인 방식으로 품목이나 업종을 지정해 운영했는데, 2015년에 모든 지정 품목을 해제했다.

김민호 위원은 제도 폐지를 주장한 이유에 대해 “현재는 3개 업종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실효성이 크지 않을 뿐더러 해당 제도가 존속하는 경우 어떤 업종이 지정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기업의 투자·고용 등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불확실성을 없애고 동시에 중소기업의 공정경쟁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이같이 제언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 “보고서 근거 빈약” 반발 KDI 보고서가 공개되자 중소기업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을 목적으로 2010년 출범한 동반성장위는 보고서 연구결과가 확대 해석됐고, 통계적 근거도 빈약하다고 비판했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연구에서는 (전체 사업체의 84%를 차지하는) 10인 미만의 사업체가 빠진 광업·제조업통계를 사용해 대다수 사업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전체 산업의 성장에 도움에 되지 않는다고 확대 해석했다”며 “적합업종제도 도입의 취지, 즉 제도가 보호하려는 대상은 사실상 나머지 84%인데 이 부분이 제외됐다”고 했다.

동반성장위는 또 보고서가 적합업종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판단할 때 도입기·성장기 산업의 경우 대부분 미권고하거나 상생협약으로 진행하고 있는 반면 적합업종 지정은 대부분 성숙기 또는 쇠퇴기 산업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대리운전총연합회 관계자들이 5월 24일 제70차 동반성장위원회가 개최된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호텔에서 대리운전업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여부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이날 대리운전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향후 3년간 대기업의 신규 진출을 제한했다. 하지만 대리운전업 측에서는 일부 미해결 사안을 문제 삼아 ‘대기업에 치우친 날치기 처리’라고 주장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 연합뉴스


제도가 산업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통계적 근거도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동반성장위는 “보고서는 2011년에 비해 2016년에 적합업종 권고(지정)업종의 생산액이 5.2% 증가, 부가가치는 4.2% 증가했으며 중소기업 퇴출률은 46% 감소했다는 등 제도의 긍정적 효과를 나타내는 결괏값을 제시하면서도, 사업체의 경쟁력 제고와 보호에는 긍정적 영향을 주기 어렵다는 모순된 주장을 펴고 있다”고 했다. 동반성장위는 지난 8월 11일 입장문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는 중소상공인을 보호하는 최후의 사회적 보호망이며, 이러한 최소한의 보호마저 산업경쟁력이라는 미명 아래 포용할 수 없다는 주장을 내놓는 것에 대해 동반성장위는 심심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동반성장위에 따르면 대다수 국민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정책 필요성에 공감했다. 동반성장위가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과 협력해 시행한 ‘동반성장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올해 4월 12일 공개)에서 국민의 97.5%가 “동반성장 정책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기업 97.8%가 “동반성장 지원정책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조사는 지난해 12월 7일~올해 1월 7일 대기업 178개, 대기업 협력 중소기업 1000개, 일반 중소기업 1000개와 일반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앞서 중소기업중앙회가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한 ‘적합업종제도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2017)에서도 국민의 91.6%가 “중소상공인의 생존 기반 보호와 대·중소기업 간 불균형 해소를 위해 적합업종제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동반성장위는 설명했다.

보고서 내용·공개 시점, 적절했나 중소기업계는 국책연구원 보고서가 외부에 공개된 시점에 주목한다. KDI가 이번 정책포럼 보고서를 공개하기 전인 올 2월 비슷한 내용의 상세본(풀 버전) 연구 보고서(중소기업 지원기준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중소기업 정의와 적합업종을 중심으로·김민호)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는데, 8월에 또다시 추가 보고서를 낸 배경에 의도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보고서의 공개 시점도 문제지만 보고서 내용도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상세본에서는 제도 도입의 효과를 인정하는 데이터와 해석이 많았음에도 이번에 나온 추가 보고서에서 ‘점진적 폐지’만 강조한 것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KDI는 내부 시스템을 모르고 하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KDI 관계자는 “올 2월 홈페이지에 공개된 해당 보고서는 지난해 데이터를 기준으로 연구 수행한 것이며, 이달 공개한 보고서는 새롭게 확인된 (올해) 추가 데이터를 반영해 보완한 것”이라며 “KDI 연구 보고서는 이런 방식으로 현안 자료를 추가로 내는 것이 통상적이다. KDI 연구 보고서는 누구의 지시를 받아 작성되거나 정권 정책기조에 따라 결론이 바뀌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영교 동반성장위원장(오른쪽)이 5월 24일 서울 서초구 JW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제70차 동반성장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동반성장위는 이날 회의에서 대리운전업을 새 정부 들어 첫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 연합뉴스


업계는 특히 각종 규제 완화를 추진 중인 윤석열 정부에서 제도 폐지를 강조한 보고서가 추가로 나온 배경에 불만을 제기하면서도 한편으로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중심의 재계에서 그간 적합업종제도 폐지를 요구해왔고, 친기업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에서 재계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해왔다는 점에 비춰 어떤 형태로든 바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앞서 지난해 11월 4일 보도자료에서 “중소기업 간 경쟁 품목, 공공 소프트웨어(SW) 대기업 참여 제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등의 규제가 기업의 기회를 사전적으로 배제할 뿐 아니라 신산업의 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제도 폐지냐 보완이냐, 대안은 KDI 보고서에서 다루고 있는 핵심은 적합업종제도의 효과는 제한적인 데 반해 부작용은 크다는 점이다. 예컨대 고속도로 터널등과 보행자 가로등에 쓰이는 LED(발광다이오드) 조명기구의 경우 지금은 적합업종에서 해제됐지만, 과거 적합업종에 포함되면서 부작용이 컸던 사례로 거론된다. LED 조명기구는 2011년 동반성장위로부터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이후 대기업은 칩과 패키징 등 광원과 벌브형 등 일부 제품만 생산할 수 있도록 시장 참여가 제한됐다. 이 때문에 8100여억원(2013년 기준)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LED 조명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이 밀려났고, 그 빈자리를 필립스와 오스람 등 외국계 기업이 차지해 시장을 잠식했다. 당시 이들 외국계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2011년 4.5%에서 2013년 10%로 늘어났다. 한때 중국산 김치가 국내 식당과 급식시장에서 90% 수준까지 점유율을 차지했던 배경에도 김치의 적합업종 지정 이후 국내 김치업계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벌어진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일부 부작용은 인정하면서도 제도 도입의 취지가 대·중소기업 간의 합리적 역할분담에 있다고 강조했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당시 LED 조명을 적합업종으로 지정한 동반성장위 권고안은 대기업의 영업을 전면 제한한 게 아니라 일부 시장 참여만 제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외국계 기업이 시장을 잠식하는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외국계 기업이라고 해서 지정 대상이 되는 품목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면서 “중국산 김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원재료 단가가 상대적으로 워낙 낮았기 때문에 수요가 늘어난 것이지, 적합업종의 부작용 때문에 중국산 김치 비중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김 위원은 점진적 폐지와 함께 대안으로 시장의 불공정행위를 실효성 있게 규율하면서 중소기업의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동반성장 정책을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예컨대 특허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적 구제조치를 강화하고, 지식재산의 창출과 보호 체계를 강화해 공정경쟁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론도 있다. 폐지를 성급히 논의하기보다 제도 보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적합업종 제도는 중소기업 보호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일부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전면 폐지하면 중소기업계는 보호막이 사라진다는 불안과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지정된 적합업종이 3개에 불과해 제도를 폐지한다고 해서 민간경제 활성화라는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 다양한 요구와 의견을 반영해 제도를 보완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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