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살 같이 하실래요?" 심장 터져도 멈출 수 없어

한겨레 2022. 8. 20.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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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오늘하루운동 풋살
축구광들 부러워만 하다 찾아온 기회
첫 연습부터 5대5 경기 일단 뛰었더니
아드레날린 폭발하는 해방감 찾아와
인생 최초의 풋살 경기 시작 직전. 규칙도 모르고 뛰어다녔지만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다. 장은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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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맣게 변한 발톱, 시퍼렇게 멍든 발목, 피딱지가 앉은 무릎. 어릴 적 아빠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들이다. 아빠는 축구광이었다. 일주일에 6일을 일하고 겨우 하루 쉬는데도, 휴일이면 운동장으로 향했다. 공을 차고 돌아온 아빠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야말로 생기가 넘쳤다. 식사와 사우나까지 이어지는 조기축구 코스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남동생도 아빠를 따라 축구광으로 자랐다. 중고등학생 때는 정말 미치광이처럼 틈만 나면 공을 차러 나갔다. 두 사람은 밤을 지새우며 해외축구를 보곤 했다. 그 틈에서 ‘나도 공을 차보고 싶다’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닐까? 하지만 아쉽게도 그 생각은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서른이 넘어서야 드디어 내게 기회가 왔다.

“풋살 해보고 싶으신 분 있어요?”

비정기적으로 모여 달리기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톡방에서 ㄱ이 물었다. 나는 덥석 미끼를 물었다. “저요!” 답을 하고 나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내가 드디어 공을 찬다니! 몇해 전, 운동하는 여성들을 주제로 서울의 한 여자풋살팀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풋살장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걸, 이제, 내가 한다!

누군들 처음부터 잘했으랴

원데이 클래스 당일. 퇴근 뒤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집합 장소에는 커다란 은색 스타렉스 한대만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게 맞나?’ 의심하며 문을 여니 내 또래 여성들 서너명이 나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풋살, 하러 가는 거 맞죠?” “네!” 씩씩한 대답이 돌아오는 것에 안심하고 차에 올랐다. 한두명씩 자리를 채우더니 이내 12인승 스타렉스의 좌석이 모두 찼다. 오직 풋살을 해보겠다고 경기도까지 원정을 떠나는 사람들이라니…. 놀라움과 어색함 속에서 ‘공을 차본 적 있느냐’, ‘어떻게 알고 왔느냐’, ‘너무 떨린다’ 따위의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차는 경기도 고양시 한 풋살장에 도착했다.

요가 레깅스부터 러닝 팬츠, 제법 축구 바지 같아 보이는 반바지까지 제각각인 운동복을 입고 열명의 여자들이 인조잔디 풋살장으로 입성했다. 제대로 된 풋살화를 갖춘 사람도 없었다. 아무렴 어떠냐. 먼저 가볍게 뛰면서 몸을 풀었다. 풋살 교실 선생님은 이 햇병아리 제자들에게 풋살의 재미를 맛보여주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것처럼 보였다. 운동은 역시 ‘장비빨’이라 했던가. 신기한 소도구들을 앞세워 근력 운동을 이어갔다. 선생님이 준비한 밸런스 볼 위에 올라가 한발을 들고 부들거리며 중심을 잡았다. 그 위에서 상대가 던져주는 공을 다시 차 주기도 했다. 이어서 발목에 두꺼운 고무 밴드를 차고 다리를 앞, 뒤, 옆으로 차는 근력 운동도 했다.

공은 언제 만져보나 싶을 때쯤 드디어 하나씩 공을 가져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공을 챙겨 풋살장 라인을 따라 일렬로 섰다. “자! 전진 드리블의 기본인데요. 공을 발등으로 치면서 앞으로 가볼 거예요.” 선생님이 시범을 보인 뒤 ‘출발!’을 외쳤다. 발등으로 공을 슬쩍 차보았다. ‘어 이게 아닌데?’ 분명 간단해 보였는데 막상 해보니 내가 공을 차고 있는 게 아니라 공에 끌려가는 것 같았다. 다음 동작이 준비가 안 된 뻣뻣한 자세에다, 공을 치는 힘의 세기도 제각각이라 공이 멀리 굴러가면 쫓아가기 급급했다. 위로가 되는 건 내 옆의 여자들이 다 함께 우당탕탕 공을 굴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풋살장을 가로지르며 공을 굴렸다.

5 대 5로 나뉘어 경기도 했다.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데 경기를 하라고요?’ 처음엔 너무 긴장되고 당황스러웠다. 풋살 규칙은 물론이고 ‘인사이드 패스’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휘슬이 울리니 일단 뛰었다. 다른 건 몰라도 분명한 규칙 하나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상대편 골대를 향해 골을 넣어라!’ 얼굴이 시뻘겋게 되도록 공을 쫓았다. 우리 골대에서 상대 골대로, 상대 골대에서 우리 골대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뛰었다. 3분이나 되었을까? 심장이 터질 것같이 뛰었다. 그런데도 멈출 수 없었다. ‘이렇게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던 게 언제였지?’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은 하나도 없는데 엄청난 해방감이 몰려왔다. 거기에 우리 팀이 골이라도 넣는 순간이면 온 세상을 가진 것처럼 기뻤다. 기쁘다는 말로는 부족한, 살면서 경험해본 적 없는 초흥분 상태, 아드레날린 대폭발의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건 해야 해!”란 생각이 날 사로잡았다. 더 이상 운명의 부름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당장 나를 받아줄 풋살팀을 찾아 에스엔에스(SNS)를 뒤지기 시작했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영영 못 한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2022년 8월, 나는 2년째 꾸준히 풋살을 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이면 가방에 풋살화와 스타킹, 정강이 보호대를 넣고 운동장으로 향한다.

그래도 몸은 기억을 한다

물론 평소의 훈련은 아드레날린 대폭발이 아니라 스트레스 대폭발의 연속이다. 내 발과 다리는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고, 공은 둥글고 빠르다. 풋살은 좁은 공간에서 빠르게 공을 주고받고, 지켜야 하므로 기본기가 정말 중요하다. 주 1회 있는 팀 훈련에서도 기본 드리블 훈련은 빠짐없이 하고 있는데, 어느 날은 정말 잘되어서 ‘와, 나 많이 늘었다’ 하다가도 어느 날은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연습하는 게 실제 경기에서 바로바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답답해하면 감독님은 말한다. “뼈에 새겨.”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몸에 배 저절로 튀어나오게 된다는 거다. 처음엔 그 말에 약이 올라 씩씩댔지만, 어느 날 경기에서 나도 모르게 훈련했던 드리블이 나왔을 때 깨달았다. ‘아, 정말 몸이 기억하는구나.' 내 몸에 전에 없던 기억을 심어주고 있다. 발바닥으로 공을 굴리는 방법, 사이드 스텝의 리듬감, 인사이드 패스의 임팩트, 발등에 제대로 얹어지는 슈팅까지. 진짜 내 것이 되어 저절로 툭 튀어나올 때까지 하는 수밖에!

글·사진 장은선 다큐멘터리 감독, 인스타그램 @futsal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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