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철의 행동경제학] 퇴직연금에 숨겨진 비밀

여론독자부 2022. 8.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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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학 박사(아톤모빌리티 대표)
운용수익률 1~2%대로 턱없이 낮아
만기 전 별도 지시 없으면 현금 방치돼
행동경제학 '디폴트값 효과' 활용하면
자동운용 설정으로 수익 높일 수 있어
[서울경제]

누구나 은퇴 후 노후를 걱정한다. 그래서 많은 직장인이 노후 대비 수단으로 퇴직연금에 가입한다. 우리나라 퇴직급여 제도는 퇴직금과 퇴직연금으로 구성돼 있다. 퇴직금은 회사가 직원의 근속 연수 1년에 대해 1개월분의 평균임금을 사내에 적립하고 퇴직 시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반면 퇴직연금은 회사가 퇴직급여 재원을 금융기관에 적립하고 퇴직 시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퇴직연금의 종류는 DB형(확정급여형)·DC형(확정기여형)·IRP(개인형)가 있다. DB(Defined Benefit)형은 회사가 퇴직급여를 금융기관에 적립하지만 운용도 회사가 한다. 운용 성과에 대한 책임도 회사가 진다. 그리고 직원이 퇴직할 때 확정 금액(월평균 임금×근속 연수)을 지급한다. 따라서 DB형은 퇴직금과 거의 똑같다. 반면 DC(Defined Contribution)형은 회사가 월평균 임금을 직원의 퇴직연금 계좌로 매년 입금해 주면 직원이 이 금액을 직접 운용한다. 그리고 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는 직원 개인이 자발적으로 가입하고 운용도 직접 한다. IRP는 연간 납부 금액의 최대 700만 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퇴직연금 연평균 운용 수익률이 1~2%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노후 대비에는 턱없이 낮은 수익률이다. 이유가 뭘까. 대부분 정기예금 같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가입돼 있기 때문이다. DC형의 경우 무려 80% 이상이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가입돼 있다. 더 큰 문제는 만기가 도래해도 가입자가 금융기관에 별도의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그냥 현금으로 퇴직연금 계좌에 계속해서 방치된다는 것이다. 이러면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퇴직급여가 퇴직연금 계좌에서 영원히 현금으로 잠들어 버릴 수도 있다.

잠자는 퇴직연금을 깨워 운용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행동경제학의 디폴트값 효과를 퇴직연금 운용 제도에 활용하는 방안이 있다. 디폴트값 효과(default effect)란 사람들이 자신에게 최적은 아니더라도 이미 설정된 초기 옵션 또는 기본 설정을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초기값 효과 또는 기본설정값 효과라고도 부른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사면 출고될 때 세팅된 기본 설정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려는 심리가 있다. 기본으로 설정된 스마트폰 알람 소리를 바꾸지 않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울리는 다른 사람의 알람 소리가 내 스마트폰 알람 소리와 똑같은 것이다. 디폴트값 효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사람들의 손실 회피 성향 때문이다. 초기부터 설정돼 있던 디폴트값을 변경하면 향후에 그게 자신에게 좋을지 나쁠지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디폴트값을 변경했는데 나중에 혹시라도 자신에게 손실이 발생하는 상황이 생길 것을 우려해 기본 설정을 바꾸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간의 뇌가 게으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뇌는 가급적 생각을 적게 하는 것을 좋아하고 뭔가를 바꾸는 걸 귀찮게 여긴다고 한다. 따라서 뇌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실행되는 디폴트값을 좋아한다.

이러한 디폴트값 효과를 활용해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원리금 보장형 상품 위주에서 투자 상품으로 선택하도록 유도해 퇴직연금 수익률을 제고하려는 제도가 바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다. 디폴트옵션이란 직장인이 DC형 또는 IRP를 가입할 때 원하는 운용 상품을 미리 기본 옵션으로 설정해 놓도록 강제함으로써 가입자의 별도 운용 지시가 없더라도 기본 설정된 금융 상품으로 자동으로 운용되도록 하는 제도다. 이때 최초에 정한 기본 옵션 상품이 바로 디폴트값이다. 그래서 디폴트옵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미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미국·영국·호주·스웨덴 등의 사례를 보면 디폴트옵션 도입 후 펀드 상품과 같은 투자 상품을 기본 옵션 상품으로 설정하는 가입자가 늘어나 결국 퇴직연금 수익률이 높아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올해 7월 12일부터 디폴트옵션 제도를 도입했다. 노후 대비를 위해 잠자고 있는 퇴직연금을 깨워야 할 때가 됐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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