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세, 창문세 걷던 시대에 탄소세를 상상이나 했겠나.. '세금의 흑역사'[책과 삶]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해온 세금제도
'얼마나 많이 얼마나 덜'내야 공정한가, 계속된 논쟁
세금의 흑역사
마이클 킨·조엘 슬렘로드 지음, 홍석윤 옮김│세종│568쪽│2만2000원
고시원의 창문 있는 방은 없는 방보다 5만~10만원 정도 비싸다. 창문이 많은 집은 그렇지 않은 집보다 햇빛이 잘 드는 좋은 집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창문이 많은 집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부자라고 여겨져 세금을 훨씬 많이 내야 한다면 쉽게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까?
1697년부터 1851년까지 영국 정부는 집에 창문이 많을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창문세’를 걷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세금을 부과할 근거가 될 타당한 사유를 찾기 위해 애쓰다 창문을 발견했다. 정부는 집에 달린 창문의 개수가 그 집에 사는 사람의 품위와 부를 나타낸다고 봤다. 비밀장부를 애써 찾거나 집 안을 살피지 않아도 밖에서 창문 수를 셀 수 있으므로 세금을 매기는 것도 쉬웠다.
그러자 사람들은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벽돌공을 불러 창문을 막기 시작했다. 통풍과 채광이 잘되지 않으면서 건강문제가 불거졌다. 일부 언론은 창문세를 ‘건강에 대한 세금’이라고 비판했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조세제도였지만 1798년 프랑스도 영국을 따라 창문에 세금을 매겼을 뿐만 아니라, 한 술 더 떠서 문에도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 보면 우스운 일화처럼 보이지만, 창문세는 근대 국가에서 조세제도가 발전해가는 한 과정이다. <세금의 흑역사> 저자들은 “창문세는 세금제도 설계에서 중요한 도전을 동시에 보여준다”며 “정부가 최소한의 공정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면서도 납세자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세금을 관리하려 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한다.
세금제도는 역사 속에서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세금의 흑역사>는 세금에 얽힌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세금의 역사, 성격, 본질을 설명하고 미래를 전망해보는 책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공공재정국 부국장인 마이클 킨과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과 교수인 조엘 슬렘로드가 썼다. 이들은 “오늘날의 세금 논쟁에서는 공허한 정치수사에 정신이 팔리기 쉽지만, 과거의 세금 에피소드는 논쟁할 여지가 없어서 근본적인 원칙을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세금의 역사는 모두 단순한 약탈에서 시작됐다. 로마제국은 전쟁에서 승리해 전리품을 약탈하면 그해에 모든 세금을 면제해줬다. 그러나 국가의 수입원을 전쟁이나 식민국가에만 기대는 것은 결국 재정위기를 불러왔다. “통치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네 공동체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즉 내부자에 대한 과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식민지 시대 이후 국제사회가 안정되면서 세금제도는 점차 정착”한다. 산업화 이전까지는 주로 농경지와 노동이라는 두 대상에 집중해 세금을 걷었다.
근대적 세금 구조는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과 영국·프랑스 전쟁 이후 정치 상황이 안정되면서 처음 생겨났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근대적 세금 구조가 정착되기 시작한 계기는 ‘전쟁’이다. 각국 정부가 전쟁 비용을 마련할 재정을 구축하기 위해 세금제도를 체계적으로 정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대부분 산업국가에 세금을 관리하기 위한 관료제가 마련돼 있었음에도, 영국의 선례처럼 개인 소득세 제도를 채택하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 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프랑스, 러시아 등이 소득세를 도입했다. 이미 소득세를 도입한 영국이나 미국같은 국가들은 소득세율을 높였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소득세는 역사상 처음으로 일반인 대부분에게도 부과되기 시작했다.
저자들은 영국과 미국에서는 “전시에는 과세의 주요 목적이 국방비 지출과 전쟁에 따른 부채를 처리하는 것이었지만, 전후에는 대부분 세수가 빈곤층, 고령층, 기타 취약계층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데 사용되는 복지 상태로 전환”됐다고 설명한다. “전쟁, 도로 등과 같은 목적보다 국민의 기본 건강, 교육, 사회적 지원망 구축 등 새롭게 돈을 써야 할 곳이 많이 생겨”났고 여기에 세금이 쓰이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근로소득자라면 세금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소득세를 연상할 법하다. 하지만 세금에는 재정 확충 외에도 여러 목적이 있다. 1698년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개혁의 일환으로 턱수염에 연간 세금을 부과하는 이른바 ‘수염세’를 만들었다. 그는 깨끗하게 면도한 유럽 귀족들과 달리 러시아의 전통 귀족 특권층이 턱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런 관습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세금을 매겼다. 수염을 깎느니 차라리 세금을 내겠다고 마음먹은 귀족들은 ‘수염 토큰’을 사서 남들이 다 볼 수 있도록 달고 다녀야 했다. 이처럼 단지 세수를 올리려는 목적뿐만 아니라 나쁜 습관을 버리게 하거나 좋은 습관을 장려하려는 것도 과세의 목적이 될 수 있는데, 이를 ‘교정적(corrective) 역할’이라고 한다. 담배나 술에 세금을 부과하고, 아이를 많이 낳는 가족에게 감세 혜택을 주는 것도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책은 역사 속 사건들을 소환하면서 조세제도가 갖춰야 할 기준들을 하나씩 따져본다. 역사적으로 “독단적인 세금 부과는 정부의 정통성을 위협”해왔다. “정부가 물리적으로든 선거로든 살아남으려고 한다면 세금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불공평하게 인식되는지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조세의 공정성’은 세금 징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이다.
경제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조세의 공정성을 크게 둘로 나눈다. 하나는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상대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취급해야 할 것인가를 말하는 ‘수직적 형평성’이다.
다른 하나는 물질적으로 잘사는지 못사는지와 상관없이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사람들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를 말하는 ‘수평적 형평성’이다.
현실 세계에서 두 기준을 다 적용해 사회 구성원이 대체로 합의할 만한 공정한 세금 징수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령 소득이 높은 이들은 낮은 이들에 비해 얼마나 더 많은 세금을 내야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근로소득과 자본소득을 차등 과세하는 것은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자녀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과 소득이 같더라도 세금을 덜 내야 한다는 데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져 있지만, 정확히 얼마를 덜 내는 것이 공정하다고 볼 수 있을까? 세금 징수는 단순히 돈을 걷는 행위를 넘어 사회 구성원의 가치관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들은 “세금과 관련해 지난 수천 년 동안 계속된 인내와 논쟁과 사고”에서 얻은 교훈을 정리한다. 시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강제력은 “국가의 통치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표시”다. 정부는 ‘세금’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각종 ‘수수료’ ‘요금’ ‘부담금’과 같은 이름으로 세금을 걷을 수 있기 때문에 “세금에 붙는 이름에 주의”해야 한다. 세금의 크기만큼 ‘누가 그 세금을 마지막으로 부담하느냐’(조세귀착) 문제도 신경써야 한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얼마만큼 부담시켜야 하는지는 개인적 판단의 문제로, 경제적 문제라기보다는 철학의 문제”이며, “경제학자들은 그에 따른 좀 더 광범위한 사회적 비용을 파악하고 그것을 가능하면 계량화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책은 더 나은 미래의 세금제도를 위해서 유연한 사고를 요구한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세계의 세금제도가 해야 할 일이 많을 거라는 사실”이다. 공공부채 증가, 개발 요구, 인구 고령화, 불평등 증가, 세계화, 기후변화 등을 해결하려면 세금제도가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는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자본이 국경을 넘어 쉽게 이동하고, 조세 회피 기술이 발달하고 있기 때문에 “더 부유한 사람들이 더 많은 부담을 지게 하고, 좀 더 공격적으로 탄소 가격(탄소세)을 부과하는 등의 일들을 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저자들은 “우리가 광범위한 선을 위해 세금 제도를 만들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일일지 모른다”면서도 희망어린 변화를 강조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적 피해를 막으려고 제때 효과적인 탄소 세금제를 도입한 우리의 단호한 조치와 국제 세금 문제를 효과적으로 협력하려고 제도를 발전시킨 것에 대해 (미래 세대가) 우리를 존경스럽게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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