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꽃이 흔들리지 않도록

김형민 2022. 8. 2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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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 PD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스페인 혁명가 돌로레스 이바루리는 '열정의 꽃'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생을 걸고 프랑코, 히틀러, 소련공산당을 비판했다. 그의 열정적 목소리는 민중을 격동시켰다.
돌로레스 이바루리 고메스가 청중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Wikimedia

1988년 4월25일은 아빠의 기억에 매우 선명한 날이다. 아빠가 생애 처음 대놓고 불법(?)을 저지른, 즉 도로에 뛰어들어 시위에 가담한 날이거든. 가슴을 콩닥이며 거리에 서 있는데 건너편에서 노래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한 떼의 학생들이 대오를 지어 노래를 부르며 행진해오는 거야.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흑인 영가에서 비롯됐다는 이 ‘흔들리지 않게’는 세계적으로 저항가요의 성가(聖歌)처럼 불린 노래다. 영어 제목은 ‘We shall not be moved’, 스페인어 제목은 ‘No nos Moveran’. 이 노래를 세상에 퍼뜨린 사람은 저 유명한 가수 존 바에즈야.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마틴 루서 킹의 명연설이 세계를 울린 1963년 워싱턴 대행진 행사장부터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의 하노이, 내전이 불을 뿜던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 군부독재 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아르헨티나, 가까이로는 2011년 전개된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의 미국 뉴욕 거리까지. 바에즈는 저항의 목소리가 절실한 곳이면 어디든 나타나 청아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스페인을 철권통치해온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하고 2년 뒤인 1977년, 존 바에즈는 스페인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공연 중 바에즈가 목청을 가다듬었지. “노래 한 곡을 아주 용감한 여성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저 역시 정의를 위해 싸우는 병사입니다. 저는 총 없이 비폭력으로 싸웁니다. 그러나 많은 존경심을 가지고, 이 노래를 ‘라 파시오나리아’를 위해 부릅니다(〈삐딱한 책읽기〉 안건모 지음).” 그리고 바에즈는 대학 신입생이던 아빠의 가슴을 뒤흔든 노래 ‘흔들리지 않게’의 원곡인 ‘노 노스 모베란(No nos Moveran)’을 열창한다. 이 벅찬 노래를 헌정받은 ‘라 파시오나리아’는 과연 누구일까.

우선 ‘라 파시오나리아’의 뜻은 ‘열정의 꽃’이다. 사람들은 스페인 내전(1936~1939) 때 활약한 스페인의 공산주의자 돌로레스 이바루리 고메스(1895~1989)에게 ‘열정의 꽃’이라는 별명을 붙였지. 이 지면에서 스페인 내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스페인 내전〉(앤터니 비버 지음)의 부제를 빌려 이 참혹한 전쟁의 양상을 표현해보자면 그야말로 ‘20세기 모든 이념의 격전장’이었어. 가톨릭과 지주세력, 파시스트와 국가주의자들이 보수세력을 형성했고 공산주의자부터 무정부주의자, 사민주의자 등 여러 진보세력이 엉성하게 손잡은 공화파 연합 ‘인민전선’과 대결했단다. 1936년 총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좌파는 소선거구제 선거법 아래에서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게 됐지. 이를 수용할 수 없던 보수파는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지휘하에 반란을 일으켰고, 공화파 국민은 이에 격렬하게 맞섰어. 파시즘의 발호를 저어하던 외국인들도 스페인으로 달려와 ‘국제여단’의 깃발 아래 프랑코군과 싸웠지. 미국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그랬고, 영국 작가 조지 오웰도 국제여단의 일원이었다.

“파시스트는 이곳을 통과하지 못한다!”

‘라 파시오나리아’가 그 열정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내전이 터진 직후였어. 스페인의 여성 국회의원 돌로레스 이바루리 고메스는 열정적인 라디오 연설로 공화파를 지지하는 스페인 국민의 피를 끓게 만든다. “전 국토가 에스파냐(스페인)를 공포의 심연과 죽음으로 처박아버리려는 잔혹한 야만인들에게 분노하여 치를 떨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통과하지 못할 것입니다. (…) 인민전선이여 영원하라! 안티파시스트 연합이여 영원하라! 민중의 공화국이여 영원하라! 파시스트들은 통과하지 못한다!(No pasaran!)”

‘너희는 통과할 수 없다’, 즉 ‘노 파사란’의 구호는 공화파 군대와 시민들은 물론, 향후 세계사의 고빗길에서 압도적인 적을 막아서는 이들의 이를 악문 주문으로 통하게 된다. “에스파냐. 이는 단순히 한 국가의 이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에스파냐는 케케묵은 인습에 사로잡힌 에스파냐가 아니라 민주적인 에스파냐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에스파냐는 농부에게 땅을 주고 노동자들이 산업을 지배하는 사회이며, 사회보험을 도입해 노동자들이 늙어서 노숙자로 전락하지 않게 하는 곳입니다.” 이렇게 열변을 토하는 열정의 여인은 스페인 공화파는 물론 스페인을 도우러 달려온 국제여단 성원들에게도, 들라크루아의 걸작에 등장하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같은 존재였다.

헤밍웨이의 걸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등장하는 한 사람은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 “그녀가 전하는 소식을 그 대단한 목소리로 들었을 때, 그 순간은 이 전쟁의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였네. 선과 진실이 마치 백성의 참된 사도에서 뿜어져 나오듯 그녀도 그랬어.”

그러나 공화파는 끝내 패배하고 말았어. 스페인은 근 40년간 암흑 같은 프랑코 독재 치하에 들어갔고 수많은 사람이 프랑코 정권의 무자비한 복수와 탄압에 희생됐다. 라 파시오나리아는 소련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스페인 공산당 서기장으로서 소련 정부의 보호를 받았지만 그 인생이 안온한 것만은 아니었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전사한 아들 루벤을 비롯해 여러 자식을 앞서 보내야 했지. 소련 정부에 몸을 의탁한 망명객임에도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짓밟은 소련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때는 정면으로 소련공산당을 비판했단다. 프랑코와 히틀러 그리고 소련공산당 지도부에 이르기까지 그는 인생에 등장한 무수한 거인을 향해 ‘노 파사란’을 외쳤다.

독재자 프랑코가 죽고 민주주의가 서서히 회복되는 가운데 라 파시오나리아는 또 한번 강렬한 열정을 드러낸다. “스페인으로 돌아가기를 매일같이 꿈꾸며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소련인들은 내게 잘해주었지만 소련에서의 시간은 고통과 슬픔으로 점철돼 있었습니다.” 스페인 정부가 공산당을 합법화한 지 34일 뒤인 1977년 5월13일 ‘라 파시오나리아’ 돌로레스 이바루리는 무려 38년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해, 41년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다시 한번 스페인 국회의원 명패를 획득한다. 내전 시작 전의 스페인을 41년 살았고 독재 치하 스페인을 38년 떠나 있었던, 늙었으나 싱그러운 ‘열정의 꽃’ 라 파시오나리아는 그렇게 다시금 붉은 카네이션(스페인의 국화)으로 피어난 거야. 이후 스페인의 민주주의가 안착되는 것까지 지켜본 후 1989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최후의 순간 돌로레스 이바루리는 프랑코군 공세로 결정적 위기를 맞은 마드리드 공방전의 어느 날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구나. 1936년 11월 마드리드는 프랑코군에 거의 함락될 지경이었다. 그때 이바루리는 “여성들이여, 끓는 물과 칼이라도 들고 저항하자”라고 절규했고 그 호소에 호응한 수많은 여성과 공화파는 목숨을 내던지며 마드리드를 사수했다. 프랑코는 마드리드 입성을 3년이나 미뤄야 했지. 가난한 광부의 딸로 태어나 혼자 마르크스의 저작을 읽으며 각성한 열혈 여성, 오로지 목소리와 열정만으로 수많은 사람을 격동시킨 이바루리는 그렇게 스페인 여성들의 해방자이기도 했어. “파시스트의 반란은 스페인에 성의 평등, 여성의 해방을 가져왔다고 스페인 여성들은 말했다(〈한겨레〉 1989년 12월12일).” 이바루리의 장례식에 몰려나온 스페인 여성들은 그가 1939년 스페인을 떠나는 국제여단 대원들에게 했던 송별 연설을 읊조리며 작별을 고했을 것 같구나. “여러분! 어깨를 펴고 돌아가십시오, 여러분은 역사입니다. 여러분은 전설입니다. (…) 우리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김형민(SBS Biz PD)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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