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반값치킨 논쟁이 남긴 것

유윤정 생활경제부장 2022. 8.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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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6990원.

국민간식 ‘치킨’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한 대형마트가 출시한 반값치킨의 뜨거운 인기 때문이다.

‘당당치킨(당일제조 당일판매라는 뜻)’이라 이름 붙은 이 치킨은 한 달 반 만에 40만 마리가량 팔렸다. ‘1분에 5마리’ 꼴이다. 한 시간을 온전히 줄 서야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다.

당당치킨의 인기는 치킨 프랜차이즈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동안 원가 상승을 도저히 버틸 수 없다며 치킨값을 올려 온 이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어서다. 배달비를 포함하면 치킨 한 마리 가격은 2만~3만원이다.

치킨 가맹점주들은 당당치킨이 미끼 상품이라고 비난한다. 도저히 저 가격에 판매할 수 없기에 마트의 교묘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온라인 상에선 대형 프랜차이즈 치킨과 비교해 원가, 본사 영업이익률, 미끼 상품 여부 등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해당 마트 측은 이익이 남는다며 이를 반격하고 나섰다. 누구의 말이 옳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양측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다. 치킨값 구조를 뜯어보면 알 수 있다.

한국육계협회에 따르면 전날 생계(1kg)는 2290원(中사이즈)에 거래됐다. 생계를 도축한 도계의 시세는 3600원 수준이다.

이렇게 도축된 닭은 프랜차이즈 업체에 1000원 정도의 마진이 붙어 4600원대에 납품된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여기에 또 1000~1500원 정도의 마진을 붙여 6000원 정도의 가격으로 가맹점에 공급한다.

닭을 치킨집 사장이 납품받는 중간단계에서 이미 2500~3000원 가량이 본사로 흘러가는 구조다.

이렇게 공급된 닭은 튀김반죽에 묻혀 기름에 튀겨지는데, 여기에 또 4000원의 제반비용이 든다. 튀겨진 닭을 포장하는 박스·치킨무·물티슈·서비스 음료 등에도 1000원 정도가 들어간다.

이미 가맹점의 치킨 원가는 1만원을 훌쩍 넘는다. 여기에 배달앱과 라이더 운임 등이 추가된다. 치킨 1마리를 배달받는데, 소비자들은 2000~3000원의 비용을 부담한다.

배달비는 고객이 내는 것으로 알지만, 사실 고객이 부담하는 배달비는 전체 운임의 절반 정도다. 라이더 비용은 약 5000원 안팎으로 절반은 자영업자가 부담하고 있다.

여기에 매장 임대료와 직원 인건비, 공과금, 카드결제수수료 등 10%가 추가된다.

결국 2만원짜리 치킨을 팔면 가맹점주가 10%인 2000원, 본사가 4000원 정도를 가져간다. 가맹점보다 본사가 더 많은 이득을 보는 구조다.

bhc 본사의 지난해 이익률이 32%가 넘는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반도체 회사인 삼성전자(17%)의 약 두 배다.

반면 당당치킨은 이런 중간 단계가 없다. 배달·임대료도 안 든다. 마트 본사가 점포로 보내는 닭 가격(약 3000~4000원)에 튀김유·양념·포장비(1500원)를 더한 게 전부다.

기존 델리코너 직원이 튀기기 때문에 별도의 인건비가 없고, 곁들여 먹는 치킨무·소스·음료 등을 제공하지 않는다. 부가세를 제외하고 1500~2500원의 마진을 남기는 셈이다.

가맹점주 입장에선 당당치킨 가격이 말이 안되는 게 사실이고, 마트가 주장하는 “마진이 남는다”는 말 역시 맞는 이야기인 셈이다.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다. 당당치킨 개발자인 한상인 이사는 “프랜차이즈 배달치킨과 마트 치킨은 소비자 니즈(수요)가 분명히 다르다”며 “당당치킨은 배달치킨과 경쟁하려고 개발한 제품이 아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180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12년 전을 떠올려 보자. 마트가 ‘5000원짜리 통큰치킨’을 출시했다가 “동네 치킨집이 문 닫을 지경”이라는 비판에 일주일 만에 판매를 중단했다.

당시 논란은 골목상권 침해라는 프레임으로 정치권까지 옮겨붙었다. 영국 더 타임스는 “5000원짜리 치킨이 한국 사회를 강타한 가장 정치적 사안이 됐다”고 보도했다.

지금은 어떤가.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물가 상승률이 5%를 넘을 전망이다.

내가 가진 돈은 올해나 내년이나 변함없이 2만원인데, 올해는 이 돈이 치킨 한 마리의 가치가 되지만 내년에는 치킨 한 마리의 가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내 돈의 실제 가치가 1년 사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솟는 치킨 값을 향한 소비자 불만이 급격히 고조되고, 당당치킨 등장에 대한 환호로 이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마치 손에 쥐고 있으면 조금씩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우리가 갖고 있는 돈도 가만히 쥐고 있으면 조금씩 녹아내린다. 올해는 돈을 녹이는 열기가 매우 뜨거워 효용가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유통 시장의 중심인 소비자는 점점 똑똑해지고 있다. 이젠 소비자가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같은 골목상권 자영업자 보호를 위해 비싼 치킨 가격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왜곡된 치킨 사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가맹점 본사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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