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 전기차 딜레마 불 붙는 배터리 "걷잡을 수 없다"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안전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국내에서 전기차가 충돌사고 후 화재에 휩싸이며 전기차의 화재 안전성에 관심이 쏠렸다. 전문가들은 현재로서는 전기차 화재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경고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 차의 누적등록대수는 116만 대다. 전년 대비 41.3% 늘었다. 특히 전기차는 지난해 한해 동안 무려 10만 대가 늘었다.
전기차가 늘어나면서 화재사고도 늘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국내에서 총 69건의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다. 특히 6월 4일 부산 남해고속도로에서 전기차가 요금소 충격흡수대에 충돌하며 불이 났다. 이로 인해 운전자와 동승자가 사망했다. 전기차 화재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전기차 배터리 속 화재 위험요소
전기차의 화재 위험성을 높이는 주 요인으로는 배터리가 꼽힌다. 전해질로 사용되는 카보네이트계 유기용매의 경우 열 안정성이 낮고, 불이 붙는 성질인 가연성이 높은 편에 속한다.
전극반응을 유도하는 리튬의 불안정성도 문제다. 리튬은 물(H2O)과 만나면 산소와 폭발적으로 반응하며 수소 기체를 내놓는다. 2020년 금정소방서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건전지 형태의 리튬이온배터리가 손상돼 내부에 수분이 들어갈 경우 온도가 오르고 수소 기체가 발생했다. 연구팀은 “배터리 내부의 리튬은 이온 상태지만, 수분과 만나 실제 화학반응을 일으킬 위험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리튬이온배터리를 충전하는 과정에서도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홍승태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배터리를 충전할 때는 양극의 리튬이온이 음극에서 환원되며 저장된다”며 “만약 과도한 양의 리튬 이온이 음극에서 환원될 경우 내부에서 차곡차곡 쌓이지 못하고, 외부에서 결정화돼 분리막을 손상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분리막은 양극재와 음극재를 분리해 쇼트(합선)를 막는 구조물이다. 분리막이 손상되면 양극재와 음극재가 접촉하며 쇼트가 일어나 전류가 급격히 흐르고 열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화재나 폭발 위험이 높아진다.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 열폭주
배터리에서 화재가 일어났을 때 제압하는 방법도 마땅치 않다. 열폭주 현상 때문이다. 열폭주는 제어되지 않은 상태에서 온도가 급격히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특히 배터리는 충격을 받으면 수초~수분 내에 1000도 이상 온도가 오를 정도로 심한 열폭주 현상이 나타난다.
배터리에서 열폭주가 일어나는 과정은 크게 두 단계를 거친다. 먼저 차량이 사고를 당하는 등 배터리에 기계적, 화학적, 열적인 충격이 가해지면 배터리의 온도가 오른다. 이때 배터리의 구성물 중 분리막이 가장 먼저 분해되며 쇼트가 발생한다.
이후에는 열에 의해 양극재와 음극재가 분해되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리튬이온배터리의 음극재로는 흑연이, 양극재로는 금속산화물이 사용된다. 대표적인 양극재 소재로는 리튬코발트산화물(LCO), 리튬-니켈-코발트-망간계 복합산화물(NCM) 등이 있다. 이들 모두 내부에 산소를 포함하고 있다. 양극재가 분해되면서 산소가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화재는 더 커지게 된다. 홍 교수는 “배터리에 문제가 생기면 연쇄적인 화학반응이 일어나며 열폭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열폭주를 진압하기 어려운 이유는 건물 화재에 버금가는 발열량이 꼽힌다. 김동은 대전보건대 재난소방·건설안전과 교수는 “열폭주가 일어날 때의 온도는 웬만한 건물에서의 실내 화재 수준을 뛰어넘는다”며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차량 화재 진압에 쓰이는 소화수의 100배 이상을 투입해도 완전히 진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어려움은 실제 국내에서 발생한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박성민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 화재 진압에 평균 33.4명의 소방인력과 2만 L 이상의 소화수가 투입됐다. 특히 2020년 용산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고에서는 소방인력 84명이 투입돼 4만 4700L의 소화수가 사용됐다. 건물 한 채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는 데 필요한 수준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제 전기차 화재 사고가 났을 때 대응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고 현장에서는 차량에 질식소화포를 덮어 외부의 산소 유입을 차단하거나 수조에 물을 채워 사고 차량을 담그는 방법을 사용한다. 김 교수는 “다만 이 방법도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뿐, 이미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액체질소를 이용해 배터리의 온도를 급격히 낮추는 방법이 효과는 가장 좋지만, 실제 화재 현장에서 적용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많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술로 해결 못할 때, 예방과 제도 절실해
전기차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인력이 겪는 어려움도 있다. 화재를 효과적으로 진압하려면 발화점에 정확히 소화약제를 투입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배터리를 보호하는 하우징과 제조사에 따라 다른 플랫폼(자동차의 기본 구조) 때문이다.
하우징은 외부 충격에 약한 배터리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하는 구조물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고장과 화재를 막는 역할을 하지만, 이미 화재가 발생한 상황에서는 소화약제의 투입을 막는 장애물이 된다. 이 때문에 전기차 화재 진압을 위해서는 소방인력들이 배터리를 분리하거나 하우징을 파괴해야 하지만 현재까지 마땅한 방법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보통 엔진은 앞에, 연료통은 뒤에 있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플랫폼에 따라 배터리의 위치가 제각각이다. 가령 테슬라 차량은 차량 하단부 중앙에, 벤츠의 경우에는 트렁크에 배터리를 두는 등 차이가 있다. 김 교수는 “화재 현장에서는 짙은 연기로 차량 자체를 식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펼쳐진다”며 “하우징과 플랫폼의 차이 등이 더해지면 소방인력이 전기차 화재를 진압하는 데 느끼는 어려움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2020년 전기차, 하이브리드차를 분석해 만든 ‘전기자동차 사고 구조활동 지침’을 전국 소방서에 배부했다”며 “각 차량의 배터리 위치와 구조활동 시 현장요원들이 취해야 할 절차를 담아 안전한 구조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로서 전기차 화재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와 규제는 여전히 미흡하다. 특히 전기차 충전시설에 대한 안전제도는 미흡하고, 관리 주체에 따라 다른 상황이다.
김 교수는 “전기차 보급은 급속도로 늘 전망이지만, 화재를 효과적으로 진압할 수 있는 기술과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지금이야말로 사회의 안전을 위한 법과 제도가 기술의 역할을 대신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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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기자 alwaysa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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