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서랍 안 딜도는 왜 분노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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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나를 주인공으로 노래를 만들고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 나는 더 소비되고 싶고 더 관심받고 싶다. 세상 사람들이 내 재능과 인기에 고개 숙였으면 좋겠다. 그래야 더는 무시당하지 않을 테니까."
스스로에게 '모모(무쓸모의 쓸모)'라고 이름 지은 '나'.
이때 주인공이 느끼는 해방감은 여성의 삶을 가두는 유무형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독자가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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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꿈 꾸세요
김멜라 지음 l 문학동네 l 1만4500원
“내 삶에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나를 주인공으로 노래를 만들고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 나는 더 소비되고 싶고 더 관심받고 싶다. 세상 사람들이 내 재능과 인기에 고개 숙였으면 좋겠다. 그래야 더는 무시당하지 않을 테니까.”
스스로에게 ‘모모(무쓸모의 쓸모)’라고 이름 지은 ‘나’. 아이돌 같은 인기를 꿈꾸는 내가 시중에서 통용되는 이름은 ‘딜도’, 즉 남성 성기 모형의 성인용품이다. 자칭 모모는 우울해서 정신과 상담을 필요로 할 지경이다. 재능 발휘는커녕 서랍 속에 처박혀만 있다가 “대파 한 단이 육천칠백원 하던 시절, (대파에 밀려) 세상으로부터 버려질 위기에 처”한 탓이다. 김멜라 작가의 새 책 <제 꿈 꾸세요>에 수록된 단편 ‘저녁놀’ 이야기다. ‘저녁놀’은 작가가 집중해온 여성 퀴어 서사를 유쾌하면서도 현실감 있게 그린 작품으로 딜도가 상징하는 남근 중심주의를 가뿐하게 뒤집는다.
여성에 대한 일상적 위협과 폭력을 통렬한 해학으로 전복하는 작가 특유의 힘은 ‘코끼리코’에서 어김없이 드러난다.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상가에서 굳이 남자화장실을 두고 여자화장실에 마구 드나들며 엉망으로 만드는 남자들을 견디지 못한 ‘202호’는 ‘코끼리코’라고 부르는 “여자도 서서 쌀” 수 있는 휴대용 변기를 구한다. 하지만 영 적응을 못 해 실패를 반복하다가 주눅 든 스스로를 향해 “씨부랄 거, 그냥 좀 싸!” 절규하듯 외치면서 “물꼬가 터”진다. 이때 주인공이 느끼는 해방감은 여성의 삶을 가두는 유무형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독자가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여성과 장애, 퀴어라는 삼중의 소수자성을 담고 있는 ‘나뭇잎이 마르고’는 수록된 8편 중 가장 문제적이다. “오, 여버서여?” “커, 저하 바으 주 모았에.” 작가는 읽다가 잠시 멈춰 무슨 뜻인지 생각해야 하는 ‘체’의 부정확한 발음을 해설하거나 고쳐 쓰지 않는다. 길이가 다른 두 다리와 부정확한 발음, 술을 좋아하고 “여자와 나누는 사랑을 원했고 그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체’의 모습을 투명하게 비춘다. 이런 투명한 전달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소수자성이 표현될 때 자주 끼곤 하는 이물감을 거둬낸다. 체와 ‘앙헬’의 어떤 감정들, 불분명하게 멀어진 관계의 마디마디에는 분명 ‘장애’라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장애와 비장애를 서로 다른 두 세계로 구분하는 사회적 통념과는 다른 질감의 것이다. 앞으로 작가가 그려낼 소수자성이 얼마나 더 다채로워지고 대담해질지 궁금함을 남기는 두번째 소설집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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