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모두 부모 책임? '애착 육아' 강박은 잊어라

곽아람 기자 2022. 8. 2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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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중요하지 않다|로버트 러바인·세라 러바인 지음|안준희 옮김|눌민|352쪽|2만8000원

현재 대한민국 사회엔 모든 종교를 넘어서는 종교가 있다. 이름하여 ‘육아교(育兒敎)’. 기독교와 불교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근원으로 한다면, 육아교는 양육에 대한 부모의 불안을 먹고 자란다. 대중의 신뢰를 얻는 육아 전문가가 ‘교주(敎主)’로 군림하고, TV 육아 프로그램에선 “아이가 문제 행동을 보이는 것은 다 내 탓”이라며 가슴 치는 부모들의 ‘간증’이 이어진다.

비단 한국 사회만의 일일까? 인류학자 로버트 러바인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명예교수와 아내 세라 러바인 박사가 함께 쓴 이 책에 따르면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 부모 자식 간의 유대를 강조하는 ‘애착 육아’는 애초에 존 볼비를 비롯한 영미권 학자들의 이론에서 유래했다. 저출산 원인을 ‘애 키우기가 워낙 힘들어서’라 단언한 이들은 많았지만, 이를 학문적으로 분석한 책은 드물었다. 저자들은 “미국 중산층에게 양육은 이전보다 훨씬 더 노동집약적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방식으로 실천되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영아기부터 대학 진학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양육은 더 많은 부모의 관심과 생각, 에너지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재정의되었고, 젊은 부부들은 양육을 무지막지한 짐으로 끌어안거나, 아니면 양육을 완전히 거부하고 아이 없이 사는 것을 택한다.”

현재의 ‘과도한 양육’ 원인에 대한 진단은 많았다. 아이를 적게 낳아서, 워킹맘의 죄책감 때문에, 점점 경쟁적으로 변해가는 사회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저자들은 진단을 넘어서 “부모가 양육에 대한 짐을 덜어도 아이는 문제 없다”고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결론 내린다. 육아에는 왕도가 없고, 아이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민감하지 않으며, 아이의 회복탄력성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다른 집단과의 비교는 인류학 연구의 오래된 방법론. 저자들은 서아프리카의 가장 큰 종족 집단인 하우사 집단의 예를 든다. 하우사족은 가족과 지나치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도덕적이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친족 회피’ 관습에 따라 어머니가 아이와 눈을 맞추거나 놀이를 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금한다. 아이는 젖을 떼면 멀리 떨어진 곳의 친척에게 보내진다. 생후 1년간 어머니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아이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는 ‘애착 이론’에 따르면 하우사족 아이들은 모두 정서 불안이 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집단에서 떼 쓰며 발버둥치는 ‘미운 세살’은 미국에 비해 드물다. 서아프리카는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라는 격언이 나온 곳. 아이들은 부모가 아니라 공동체의 자녀로 양육되며 안정성을 찾는다.

‘분리 수면’에 대한 연구도 흥미롭다. 요즘 한국의 젊은 부모들 사이에선 서구 부모들처럼 갓난아기를 다른 방에서 재우는 ‘수면 교육’이 유행이다. 아기와 따로 자야 부모가 최소한의 수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렇지만 저자들은 “부모가 아이가 울 때마다 아이 방까지 가야 하므로 분리 수면이 오히려 수면에 방해가 된다”면서 아이와 부모가 함께 잘 것을 권한다. 서구 육아의 ‘분리 수면’은 부모가 잠결에 아이를 눌러 질식시키거나, 부모의 성행위를 목격한 아이가 트라우마를 가지게 될 우려에서 나왔다. 저자들은 “아기와 부모가 함께 자는 일본의 영아 사망률이 1000명당 2.8명으로 6.2명인 미국보다 낮으며, 부모의 성애 장면에 노출된 아이가 정서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는 학술적 증거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20세기 중반 내내 육아에 대한 대중 담론이 부모가 아동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과하게 강조했다고 주장한다. “정신과 의사와 정신 분석가는 소아과 의사를 대신해 조언자의 역할을 했고, 아동의 정신 질환을 부모 책임으로 전가하는 내용의 베스트셀러와 잡지 기사로 대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평범한 일반인들이 아동기의 힘들었던 사건이 정신 기능에 장기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 가정하게 되면서 ‘트라우마’나 ‘학대’와 같은 단어가 일상적인 언어가 되었고, 부모들은 자녀에게 감정적으로 위해를 끼칠까 전전긍긍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 시기에 ‘응석’으로 받아들여져 금지되었던 것이 정신 건강을 위해 필수라 여겨지게 되었고, 필수적이었던 ‘훈련’이 학대로 취급받게 되었다.”

흥미로운 사례를 제시해 쉽게 읽히도록 잘 쓴 학술서. 90세인 러바인 교수의 육아관이 다소 보수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육아에 지친 부모들에게 다른 선택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의 이 문장은 한국 부모들에게도 유효하다. “부모들이 현재 미국의 관습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면 자녀에게 트라우마가 생기거나 학대가 될 수 있으며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타 문화의 사례로부터 배운다면, 부모로서의 짐을 좀 더 합리적인 수준으로 덜 수 있을 것이다.” 원제 Do Parents M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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