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1km 개미굴같은 동굴서 암흑물질 검출, 우주 비밀 푼다
[최준호의 첨단의 끝을 찾아서] 정선 IBS 지하실험연구단 예미랩
예미랩은 자철광(磁鐵鑛·magnetite)을 캐는 SM한덕철광산업의 광산용 수직갱(坑)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시작했다. 안전모와 마스크로 중무장하고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섰다. 현장 건설 책임자이면서 입자물리학 박사인 박강순 책임기술원이 가슴에 무전기를 달고 수동 이중문을 열었다. “탑승 완료했습니다.” 박 박사의 무전 송신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3분 가까이 600m 수직갱을 내려갔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지하세계의 문이 열렸다. 해발고도 마이너스 35m. 해수면보다 낮은 땅 속에 높이와 폭이 5m를 넘은 깊고 거대한 공간이 펼쳐졌다. 여기까지가 한덕철광의 영역이다.
암흑물질, 21세기 10대 과학 미스터리
그곳엔 차가 다녔다. 미리 준비된 국산 4륜구동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를 타고 다시 길이 800m에 달하는 지하세계 속 내리막 터널을 달렸다. IBS 예미랩으로 가는 전용 지하터널이다. 터널 천장으로 공기를 강제순환하는 덕트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잠시 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곳보다 150m 더 아래에 위치한 곳에 거대한 개미굴 같은 터널들이 나타났다.
진입터널과 연결도로를 제외한 실험실 면적만 2600㎡(약 787평)에 달한다. 처음 만난 시설은 높이 28m, 폭 20m의 거대한 원형공간. 태양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를 검출하는 장치인 대형 액체섬광물질 검출기(LSC·Large-scale liquid Scintillator Counter)가 들어올 장소다. 지하터널을 조금 더 걸어가니 중성미자의 성질을 규명한다는 ‘AMoRE’(아모레·Advanced Mo-based Rare process Experiment) 실험실이 나타났다. 지난달 이미 높이 16m, 폭 21m 공간에 장비가 들어와서 실험을 준비 중에 있다. 이곳은 지하 1㎞라는 엄혹한 시설도 모자라 절대온도 0도에 가까운 영하 273.14도의 희석식 냉동고와 25㎝ 두께의 납차폐장치, 다시 70㎝ 두께의 중성자 차단 플라스틱 차폐체로 3중 차단시설이 돼 있었다.
그들은 왜 우주의 비밀을 풀기 위해 산꼭대기가 아닌 지하 1000m의 세계로 내려갔을까. 예미랩의 주목적인 암흑물질과 중성미자 검출은 지하 깊숙한 곳에서만 가능하다. 대기권을 뚫고 지구로 내려꽂히는 다양한 우주방사선을 차단해야만 이들 물질을 검출할 수 있는데, 흙과 암석에 가려진 지하 깊은 곳이 최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럼 암흑물질과 중성미자는 어떻게 깊은 산을 뚫고 지하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물질의 최소단위라는 원자는 핵과 그 주위의 전자로 구성돼 있다. 문제는 핵과 전자 사이의 거리다. 원자핵이 종합운동장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축구공이라면, 전자는 운동장 밖을 돌고 있는 탁구공쯤 된다. 그 사이의 공간은 텅 비어있다. 물질은 분명 눈에 보이지만, 원자의 세계까지 들어가 보면 대부분이 허공인 셈이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色卽是空)이 딱 어울릴 만한 말이다. 암흑물질과 중성미자는 원자핵과 전자 사이의 허공을 지나칠 만큼 작은 소립자이면서, 중성자 등 다른 입자들과 다르게 원자핵과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다. 덕분에 지구 대기권을 뚫고 흙과 암석, 심지어는 맨틀과 지구 핵마저도 통과한다. IBS 예미랩의 지하 연구시설은 다른 우주방사선을 피해 그런 소립자를 검출하기 위한 연구목적이 있다.
암흑물질은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물질을 말한다. 우주 전체를 100이라고 봤을 때, 수소, 헬륨 등 원소로 이뤄진 인류가 알고 있는 우주는 전체 우주의 4%에 불과하다. 나머지 96%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암흑에너지(73%)와 암흑물질(23%)로 이뤄져 있다고 과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암흑물질은 물질과의 상호작용이 매우 약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관측이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은하계에 널리 분포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돼, 지구에 설치된 검출기에서 암흑물질 입자가 드물게나마 역학적으로 충돌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예측하고 있다. 박 박사는 “‘암흑’이라고 이름 지은 이유 자체가 아직 무엇인지 잘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며 “인류가 풀어야 할 21세기 10대 과학 미스터리 중 하나가 암흑물질”이라고 말했다.
IBS는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 이휘소(1935~1977) 박사가 생전에 이론을 통해 주장했던 암흑물질 후보인 ‘윔프’(WIMP (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라는 물질을 찾으려고 한다. 윔프는 질량은 상대적으로 무겁지만, 상호작용을 아주 약하게 하는 암흑물질이라는 게 이 박사의 가설이다. 박 박사는 “암흑물질과 중성미자는 우주의 생성과 구성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요소”라며 “IBS 연구단은 예미랩에서 아직까지 인류가 규명하지 못한 암흑물질의 발견과 유령입자로 불리는 중성미자의 질량 측정, 성질 규명 등에 도전한다”고 말했다.
당연하지만, 암흑물질은 한국만 찾고 있는 게 아니다. 미국·일본·이탈리아·캐나다 등 세계 주요 선진국 과학자들은 예미랩과 같은 지하 거대 실험 연구시설을 갖추고 암흑물질을 찾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예미랩은 규모로 볼 때 세계에서 6번째 정도다. IBS 지하실험 연구단은 예미랩에서 암흑물질 후보 윔프를 찾기 위한 ‘코사인’(COSINE) 실험과 중성미자의 성질을 관측하기 위한 AMoRE‘(아모레)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하실험 연구단은 앞서 2014년부터 강원도 양양양수발전소 내부 터널 옆에 지하실험실을 두고 암흑물질과 중성미자 연구해 왔다. 2018년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연구결과를 싣는 성과도 올렸다. 하지만 규모가 작아 만족할 만한 연구결과를 얻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IBS가 정선 예미랩을 새로 건설한 이유다.
세계 6번째 규모 거대 실험 연구시설
두 시간여 지하세계 속 실험단 취재를 끝내고 지상으로 올라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취재진이 지하로 내려온 직후 케이블 교체공사가 시작돼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차량에 올라 ’갈 지(之)‘ 자가 수없이 겹쳐진 것 같은 지하 비탈 터널길을 올라오는 것이었다. 광산 채굴용이라, 터널이라고 하기엔 민망했다. 바닥도 벽면도 울퉁불퉁한 동굴이 개미굴처럼 지상까지 이어졌다. 4륜구동 SUV가 아니면 올라올 수 없는 길을 공포스럽게 30분가량 올라가니 눈앞에 밝은 빛이 보였다. 아주 잠깐의 지하여행이었지만 바깥 세상의 빛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새삼 지하 암흑의 공간에서 우주 암흑물질을 연구하는 IBS 지하실험연구단 연구자들의 모습이 달라보였다.
◆암흑물질(暗黑物質·dark matter)=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물질을 말한다. 우주 전체를 100이라고 봤을 때, 수소·헬륨 등 원소로 이뤄진 인류가 알고 있는 우주는 전체 우주의 4%에 불과하다. 나머지 96%는 암흑에너지(73%)와 암흑물질(23%)로 이뤄져 있다고 과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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