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가문비나무가 우리에게 알려준 생의 비밀

허연 2022. 8. 2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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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슐레스케 (1965~)
"크고 작은 시련을 통해 우리는 고유한 음을 가진다"
獨 바이올린 장인이 써내려간 성찰과 구도의 에세이
마틴 슐레스케는 바이올린 제조 장인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난 그는 세계 최고 바이올린 제작 학교인 미텐발트 국립학교를 졸업했다. 음향기술회사를 다니다 뮌헨응용학문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마이스터 시험을 거쳐 개인 아틀리에를 차렸다.

바이올린 제조공인 슐레스케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건 그가 쓴 책 한 권 때문이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다. 책에는 바이올린을 만들면서 깨달은 삶과 영혼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었다. 그는 바이올린을 만들면서 자기 자신, 자연과 인간, 더 나아가 신과 대화를 할 줄 아는 한 명의 구도자였다. '가문비나무의 노래'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스테디셀러가 됐다.

최근 '가문비나무의 노래'의 원전 격인 책 '울림'(니케북스)이 출간됐다. '가문비나무의 노래'보다 먼저 출간된 이 책은 슐레스케의 삶과 정신적 면모가 총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고지대에서 200~30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천천히 자란 가문비나무는 저지대에서 급속하게 성장한 가문비나무와 비교할 수 없다. 수목한계선 바로 아래 척박한 땅과 기후는 가문비나무의 생존에는 고난이지만 울림에는 축복이 된다. 메마른 땅이라는 '위기'를 통해 나무들이 아주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목재에게 '울림'이라는 소명이 주어진다."

슐레스케는 바이올린이 만들어지는 여러 단계를 삶이라는 과정에 비유한다. 악기가 될 자질이 있는 '노래하는 나무'를 찾아내는 일에서부터 나무를 결에 맞게 깎아내고 조각하고, 광택을 내고, 마침내 무대에 서는 순간까지 모든 단계는 삶 그 자체다. 그 과정에는 방황과 시련이 있고, 인내와 희열이 있고, 용서와 영성이 있다.

"나무가 장기간 바람에 노출되었거나, 눈더미 같은 것에 눌려 한쪽에 무거운 하중을 받았을 경우, 나무줄기 속에는 이상재가 형성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좋은 영향에만 노출되어 있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가 어긋났고, 오랜 기간 부담에 눌려 있었거나, 폭풍우에 노출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특이한 나뭇결을 갖게 되었고, 영혼이 편협해지고 상처가 났다. 목재에 고유음(固有音)이 있는 것처럼 우리 역시 고유음을 가지게 되었다. 일상의 크고 작은 실험을 통해 우리는 고유음을 가진다."

모든 나무에는 고유음이 있다. 따라서 모든 바이올린의 소리는 다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모두 다른 상처와 환희 속에서 살았기에 각기 다른 고유음을 가지고 있다. 그 고유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훌륭한 연주이다.

우리는 나와 타인의 고유음을 얼마나 인정하며 살고 있을까. 자문해 본다. 획일적인 정해진 음을 강요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존중받아야 할 하나의 리듬이고 노래이다.

※ 문화선임기자이자 문학박사 시인인 허연기자가 매주 인기컬럼 <허연의 책과 지성> <시가 있는 월요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허연기자의 감동적이면서 유익한 글을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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