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혁훈의 아그리젠토] 80세 노인의 전화

정혁훈 2022. 8. 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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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남 광양에 사는 80세 노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신문에 보도된 스마트팜을 직접 가보고 싶으니 연결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매경 50년 독자라는 말씀에 다른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곧바로 두 분을 연결해 주었습니다.

그 분은 농민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시다가 은퇴 후 고향으로 내려가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팜에 왜 관심을 갖고 계신 걸까요. 그 분의 대답에 가슴이 먹먹해 졌습니다. "농촌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면 단위로 가면 신생아가 태어나지 않는 곳이 수두룩합니다. 농촌이 비참해질까 우려됩니다. 젊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와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스마트팜 기사를 보면서 이런 게 농촌을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뒤에 확인해보니 그 분은 사위와 함께 먼 길을 달려 스마트팜을 방문했습니다. 견학을 잘 마친 뒤 대표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광양에서 이런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게 승산이 있겠습니까?" 이에 대한 대표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광양에서 이런 스마트팜을 하는 게 나쁘지는 않지만 수도권과 거리가 멀어 저희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만약 광양에 이런 스마트팜을 지으려면 먼저 수확한 작물을 어디에 판매할 것인지를 확보하는 게 중요합니다."

아주 짧은 대화지만 농업의 핵심을 짚어내는 내용입니다. 판로를 고려하지 않고 생산했다가 낭패를 본 농민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눈치를 챈 분도 있겠지만 이 스마트팜은 동원그룹의 농업회사법인 어석에서 운영하는 곳입니다. 농고를 나온 '참치왕' 김재철 명예회장이 평생 가져온 농업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드림 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김 회장이 이 스마트팜에서 생산한 농산물로 돈을 벌려고 생각했다면 광양의 80세 노인에겐 전혀 관심 대상이 아니었을 겁니다. 오히려 농민단체들로부터 시위의 대상이 됐을지 모릅니다. 2013년에 동양 최대 규모 유리 온실을 완공했다가 토마토 재배 농가들의 반발로 두 달 만에 사업 포기를 결정한 동부그룹 사례를 우리는 잘 기억합니다.

동원의 스마트팜은 처음부터 농가 보급을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이전 대기업의 농업 진출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동원의 2400평 비닐하우스는 국내 실정에 가장 잘 맞는 스마트팜을 만들어 내기 위한 시험농장이자 농업계에 스마트팜을 확산시키기 위한 전진기지입니다. 농민들을 위한 체험농장이기도 합니다.

이 스마트팜이 지금처럼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기까지는 4년간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만약 농민 개인이 그런 과정을 겪었다면 벌써 농장 문을 닫아야 했을 겁니다. 사실은 대기업이기에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기업 내부의 연구개발(R&D) 역량을 빌리기도 했고, 때로는 유통망 지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실패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면서 스마트팜 실력이 높아졌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홀로서기가 가능한 스마트팜이 완성됐고, 그 기술과 노하우가 농민들과 공유되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스마트팜 설계부터 건설과 작물 재배 컨설팅, 판로 확보까지 모든 걸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나라에도 없는 기업과 농민 간 상생 모델의 탄생에 박수를 보냅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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