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시각] 인생을 채우는 틀과 '헤어질 결심'

2022. 8. 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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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요구하는 형식과 틀
갑옷처럼 입고 살아가지만
자유속 유영을 꿈꾸는 나
어쩌면 사람은 '품위'와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면, 품위 있는 나, 직업적 소명의식에 자부심을 가진 나, 다정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나와 같은 그 모든 단단함이 붕괴되길 기다리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이 부서지지 않는다면, 어쩐지 잠을 이룰 수 없다. 어째서인지, 삶을 온전히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불면증에 시달린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인간에게 부여된 온갖 형식과의 작별을 다룬다. 경감 해준(박해일)이 오랫동안 이어온 결혼이라는 형식,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위라는 형식, 수사관과 피의자라는 형식,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하는 직업인이라는 형식 같은 것들이 어떻게 '사랑'에 의해 붕괴되는지 그려낸다.

최연소 경감인 해준은 피의자 신분이었던 서래(탕웨이)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면서 해준은 서래에게 당신에 의해 내가 붕괴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원래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 사회 정의를 위해 투철하게 애쓰고 능력 있는 경찰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16년 이상 함께해 온 부인에 대한 충성과 다정함에서도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건, 눈앞의 한 여자에 의해 붕괴된다.

그 사랑, 그 붕괴는 지금껏 그를 옭아매왔던 모든 형식으로부터 자유를 이끌어낸다. 그는 아내에 의해 금연을 요구받아 이를 지키고 있었지만, 서래가 자기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그저 내버려둔다. 그와 그녀는 수사관과 피의자 관계였지만, 사적으로 만나며 그 모든 형식으로부터 벗어난 자유의 시공간을 만들어나간다.

달리 말하면, 사랑은 그의 모든 것을 붕괴시켰지만, 동시에 그에게 숨 쉴 수 있는 여유의 공간 같은 것을 만들어주었다. 그는 어째서인지 쉴 수 없었고, 잠들 수 없었다. 지금껏 끊임없이 무언가에 쫓기고 시달리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녀를 만난 순간, 그 끝없을 것 같은 질주가 멈추었다. 그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그녀가 그를 '심해의 해파리'에 비유하면서 잠들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녀는 그를 재워준다. 기존의 현실적 틀로부터 잠들게 해준다.

우리는 세상의 끝없는 요구들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때론 가까운 사람들의 요구이기도 하며, 자기 내면의 강박이기도 하다. 또 때론 명예나 이익의 유혹이기도 하며, 편견이나 선입관의 강요이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켜켜이 쌓이며 우리 존재의 틀이 형성된다. 우리는 그 틀을 갑옷처럼 입고 지키며 살아간다. 해준이 말하는 '품위'라는 것도 결국 그 '틀'과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는 그런 '틀'을 지나치게 많이 요구한다. 엄마나 아빠로서 자식에게 해주어야 하는 사교육 등 양육의 의무, 며느리나 사위로서 부모에게 다해야 하는 부양의 의무, 결혼할 때 치러야 하는 허례허식, 직장 등 온갖 집단의 엄격한 서열의식 속에서 지녀야 하는 엄숙한 태도, 행복한 인생이라고 확인받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속 전시까지, 그야말로 전 사회적인 강박으로 가득 차 잠 못 이루는 게 우리네 삶이다.

사랑은 그런 틀을 녹여 없앤다. 우리의 온갖 강박을 쫓아내고, 보다 솔직하게 자기 내면을 만날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건 사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는 그 수많은 평가, 편견, 틀, 강박을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부드러운 시간을 만날 필요가 있다.

영화는 비록 비극적으로 끝나지만, 실제 우리 삶에는 희극적인 사랑을 불러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사랑의 순간들은 그리 대단치 않다. 그저 함께 절을 산책하고, 같이 요리를 해먹고, 잠들 때 서로의 곁을 지켜주고, 사소한 일상을 지켜보는 정도의 선에 '사랑의 순간들'이 머물러 있다. 그런 순간들에, 우리는 잠시 현실의 강박 어린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삶을 유영한다. 마치 심해 속에서 그저 떠다니는 해파리처럼, 사랑 속에서 자유를 얻는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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