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위안의 묘약, 시와 음식을 '창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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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그의 시와 음식은 생존의 근원과 삶의 원형질에서 캐내는 ‘날것’이다. 고향인 전라도 섬 사투리가 퍼드덕거리며 가슴으로 다가오는 시, 재료의 맛을 잘 살릴 양념의 극소치를 찾느라 골몰하며 빚는 음식. 그렇게 피어나는 한 떨기 야생화다. 이 꽃의 향기는 위로와 위안이라고 요리사는 말한다.
시도 음식도 ‘창작’이라는 그는 ‘단 한 번이라도 식어버린 심장을 예열할 수 있고/ 힘겨웠던 하루를/ 따뜻하게 덖어줄 수 있는/ 음식’을 소망한다(2020년 첫 시집 『민어의 노래』 시인의 말). 올 추석 무렵 나올 두 번째 시집에서는 “자극적인 맛에만 휘둘리고 있다”는 고백과 함께 “이루고야 말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나의 시는 생 날것이거나/ MSG 들어가지 않은 슴슴함으로 가겠다”고 레시피를 밝힌다. 여기서 시는 음식과 동의어일 터이다.
막걸리 식초, 64년 맥 이어온 귀물
계절 따라 조금씩 바뀌지만, 이 정도면 그가 자주 차리는 음식을 거의 망라한 셈이다. 절반은 처음 맛보는 낯선 음식이다. 이게 요리 경력 25년 동안 추구해온 그의 창조적 개성이다. 좋은 재료에 집중하고, 그 재료 맛이 살아나도록 양념을 최소화하는 데 조리 초점을 맞춘 결과다. 그 의도는 음식에서 그대로 살아났다. 맛이 순하고 맑다. 먹은 뒤 입과 속은 편하다. 그의 말처럼 ‘위로와 위안의 묘약’ 같다. ‘단짠’이라는 시장의 거센 흐름을 거스른다는 지적을 받기도 할 듯하다.
5~6가지 코스요리는 1인 3만원부터 10만원까지 그날 시장에서 찾아낸 재료에 따라 달라진다. 흔히 ‘오마카세’라고 하는 이 차림은 대개 토마토 절임에서 시작해 농어 건정 간국으로 끝난다. 그 사이에 냉국·회·찜·생선조림 등이 차려진다. 8월 재회 때 코스 음식을 자세히 살피면 다음과 같다.
지금은 연륙교를 놓았지만, 섬이던 고향 지도에 살 때는 우물물에 막걸리 식초와 사카린 타고 늙은 오이와 바로 베어온 솔(가는 부추)을 잘게 썰어 넣고 먹었다. 오이와 낙지는 성질이 차고 부추는 뜨거워서 서로 궁합이 맞는다. 어머니는 ‘무덤낙지’ 기술자였다. 무덤낙지는 펄에서 낙지 숨구멍에 무덤 봉분처럼 진흙을 쌓아 놓고, 낙지가 숨 쉬려고 구멍 밖으로 나오려 할 때 얼른 파서 잡는 어법을 말한다. 한번은 서울에서 온 아는 동생이 물회를 해 달라고 해서 냉국이 아닌 시중 물회처럼 만들어줬다. 그러자 “형 음식 베래부렀구마. 왜 형만 가진 가치를 버릴라 그래?”라고 타박했다. 김 시인은 “맛의 가치라는 게 있는데 그걸 놓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한때 조직 행동책·이종격투기 선수
그의 주방을 잠시 둘러보는데 ‘이거다’ 싶은 게 두 가지 눈에 띄었다. 막걸리 식초와 간장이다. 막걸리 식초는 종초(種醋)의 맥을 64년 이어온 귀물이다. 50년 된 걸 얻어 14년째 막걸리를 보충하며 키우고 있다. 간장은 조선간장과 양조간장을 섞어 95도로 가열한 다음 맛을 내는 여러 가지 재료에 부어 우리고, 식으면 다시 95도로 데워 붓기를 6~7회 거듭해 만든다. 꼬박 이틀이 걸린다. 일종의 만능 맛간장이다.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100도로 끓이지 않는 것이 그의 비법이다. 재료를 물었더니 “보통 상상하는 게 다 들어가는데 한번 구워서 넣는다”면서 “파프리카·파인애플도 넣고, 남들과 다르다면 생 돌게(민꽃게)가 많이 들어간다”고 답했다.
청년기는 파란만장했다. 어려서 별명이 ‘아기코끼리’였다. 체격이 크고 힘은 장사였다. 섬에서 중학교 졸업하고 목포의 고등학교로 진학해 1학년 때 조직에 스카우트돼 행동대장 노릇을 했다. 1995년에는 도쿄 ‘K-1 그랑프리 월드’에 닉네임 코리안 타이거(Korean Tiger)로 출전해 국내 1호 이종격투기 선수로 기록됐다. 결과는 KO패로 1회전 탈락. 꺾기만 하다가 난생처음 꺾였다. 거기서 인생이 바뀌었다. 2년 뒤 어머니가 광주에서 하던 선술집 ‘아코식당’에서 칼을 잡고 도마 앞에 섰다. ‘아코’는 아기코끼리의 줄임말이다. 그 사연을 ‘숙명’이라는 시에 담았다. 시인에게 요리는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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