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266) 글 쓰는 일
스티븐 킹과 시드니 셸던의 팬이었던 어린 시절, 큰 의문이 있었다. 어떻게 한 인간이 이 길고 복잡한 소설을 그토록 줄기차게 써낼 수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작가가 됐지만 여전히 나는 동료 작가들에게 작법이나 창작의 비밀 같은 것을 묻는다. 소설이 써지지 않을 때는 “첫 문장을 썼으니 반은 쓴 거나 매한가지!”라는 작가들의 자조 섞인 농담을 위안 삼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내가 소설 쓰는 일에 대해 잘 말하지 않게 된 건 글 쓰는 일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뮤즈’나 ‘영감’과 무관한 일이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나 작법이 중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작품을 꾸준히 쓰려면 태도가 더 중요하다.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것과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일은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 좋아서 쓰는 것이라기보다,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니 쓴다. 언제 써질지 모르니 불안해서 쓰고, 앞으로는 쓸 수 없을 거란 예감에 시달리니 쓰지 않을 수 없다. 간절함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증폭시키는 힘이 있다. 배우 윤여정도 “가장 연기가 잘될 때는 돈이 없을 때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책상 앞에 앉으면 막막함에 불안이 차오르지만, 일단 5매만 쓰자, 오늘은 썼으니 내일도 쓸 수 있을 거다, 라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쓴다. 하루하루 그런 시간들이 모여 책이 된다.
가슴 설레는 일을 하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은 우리를 꿈꾸게 하지만 현실에선 잘 적용되지 않는다. 글이 쓰고 싶어서 아침마다 눈이 번쩍 떠진다는 작가를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영감을 기다리는 건 아마추어고, 우리는 그냥 일을 하러 간다”는 소설가 필립 로스의 말을 성경처럼 새기고 ‘영감’이 아닌 ‘마감’의 힘으로 버티는 게 이 업계의 일이다.
삶의 많은 부분이 실은 이런 힘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니 할 수 있고, 갈 수 있고, 쓸 수 있을 때 힘 내보자는 생각이 든다. 생전 박완서 선생님이 나이가 드니 책 못 읽는 게 가장 힘들다고 하셨던 말이 생각난다. 나도 노안이 오면 곧 못 읽을 때가 오니, 책도 촌음을 아껴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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