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인문정원] 달리기의 경이로움

2022. 8. 19.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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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더 달리기 위해 진화 거듭
존재까지 바꾸는 마법 같은 운동

내 어린 시절의 꿈은 마라톤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마라톤 경주를 볼 때 내 심장은 뛰었다. “커서 무엇이 될래?”라고 물으면 나는 “마라톤 선수요”라고 대답했다. 중학교 시절엔 운동장이 어두워질 때까지 달렸다. 달리다 보면 심장 박동 수가 올라가고 심장이 파열할 듯한 통증이 덮친다. 그동안 몸과 내〔자아〕가 합일하는 느낌, 몰입, 고통을 초극하려고 분투하는 것이 좋았다. 마라톤은 아름다운 운동이다. 그 아름다움을 향한 내 욕망은 가당치 않았다. 러너로서의 내 능력치는 그저 교내 운동회에서나 뛸 만한 수준이었다.

본업은 생물학자이지만, 울트라 마라톤에 참여할 만큼 달리기에 빠진 베른트 하인리히의 ‘뛰는 사람’을 읽었다. 그는 어쩌다가 이 무모하고 고통을 자초하는 운동에 자발적으로 뛰어들었을까? 이 책은 내가 모르는 다른 세상을 열어주고 동시에 뇌에 새뜻한 자극을 준다. 박각시나무, 뒤영벌, 나비, 꽃등에, 춤파리, 쇠똥구리, 까마귀, 큰까마귀, 딱따구리, 붓꽃, 미국밤나무, 청설모 등에 관한 실험 논문을 쓴 생물학자가 펼치는 달리기에 대한 깊은 이해는 나를 흥분시킨다. 생명과 생명체, 환경과 생리, 내분비계와 삶의 속도의 연관성, 수명과 노화의 비밀 등에 대한 깨우침은 일상의 나른함을 넘어서는 경이와 함께 새로운 자극의 더미를 안겨준다.
장석주 시인
인류는 야생의 도살자이자 포식자인 영장류의 후손이다. 인간은 사자나 표범 같은 동물과 달아나는 영양이나 가젤을 사냥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그때부터 달리기란 생존을 위한 활동이고, 인간 무리의 강렬한 본성으로 굳어졌을 테다. 달리기란 몸을 써서 하는 운동이고, 식량이란 원재료로 쌓아올린 ‘과도하게 복잡한 구조물’인 몸을 태우는 일이다. 마라톤 경주자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체열이다. 몸의 생리를 거스르며 뛰는 동안 내부의 열과 외부에서 유입된 열로 몸은 뜨거워진다. 이때 뇌의 체온조절 시스템이 작동해 말초 혈류를 통해 체열을 낮춘다. 체열이 계속 상승하면 몸에 과부하를 일으키고 결국 심각한 사태에 빠질 것이다.

인간은 왜 달리는가? 오늘날 뛰는 사람은 달리기에 매혹당한 사람들이다. 몸의 생체역학적인 구조는 인간이 먼 거리를 달리기 위해 진화해 왔음을 말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달린다. 마라톤은 격렬한 활동의 지속이고, 몸 안의 체력이 고갈되고 에너지가 방전될 때까지 달리는 운동이다. 극한에 도달할 때까지 달리는 동안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관조할 기회를 부여한다. 마라톤은 항상 달리는 것 그 이상이다. 그것은 육체 근력을 단련하는 수련이자 동시에 정신적이고 영적인 존재를 위한 수행이다.

내게 달리기는 무력감을 떨치고 자존감을 키우는 계기를 주었다. 누군가에겐 인생을 바꾸는 계기였을지도 모르는데, 조지 쉬언은 ‘달리기와 존재하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면의 풍경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나는 내 안의 아래 위, 안과 밖, 내 불안한 존재와 변화 과정을 받아들였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달리기의 효과를 건강 증진이나 수명 연장에 두는 것은 그 가능성을 좁히는 것이다. 최선을 다한 달리기가 즐거움을 주고, 우리 존재를 바꾸는 마법을 품은 운동이지만, 이것이 수명을 연장한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자연에서 이동성과 속도는 생존 능력과 연관된다. 자연에서 인간의 달리기 능력은 보통이지만 인간은 자동차와 비행기 같은 동력 도구를 이용해 이동성과 속도를 경이로울 만큼 높였다. 피로 골절과 부상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몸을 쓰는 달리기 운동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왜 그토록 달리기를 좋아했을까? 처음엔 단순함과 순수함이 좋았지만, 그다음엔 달릴 때 살아 있음을 실감하면서 더 빠져들었다. 어쩌면 달리기는 내 안에 각인된 타고난 욕망, 미처 알지 못한 정체성이었을지도 모른다. 달리기에서 많은 것들을 얻고 배웠다. 한계를 초극하는 용기, 인생이란 여정을 견디기 위한 집중력과 지구력, 평균적 인간보다 더 나은 윤리 감각 등이 달리기가 내게 준 선물이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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