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반으로 줄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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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출판사에서 곧 출간할 책에 추천사를 써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내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어찌 남의 글에 감히 추천사씩이나 쓰겠는가 하는 마음과, 어쭙잖은 추천사는 오히려 출판사나 작가에게 폐나 끼칠 뿐이라는 마음으로 고사했지만, 만사에 결정도 못하고 거절도 못하는 평소 기질을 버리지 못해 결국은 쓰게 되었다.
글이 기대했던 이상으로 너무 좋아서 진심으로 추천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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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는 일찌감치 읽었다. 글이 기대했던 이상으로 너무 좋아서 진심으로 추천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생각만 했을 뿐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정작 책상 앞에 앉은 것은 마감을 겨우 이틀 앞둔 날이었다. 청탁서에는 추천사 분량이 원고지 4매 정도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쓰는 와중에 추천사치고 분량이 꽤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썼던 다른 추천사를 찾아보니 분량이 원고지 2매, 그러니까 딱 절반이었다. 혹 편집자가 착각한 것이 아닌가 싶어 문의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마침 주말이었고 편집자에게는 메일함을 열어볼 의무가 없었다. 그가 내 메일을 확인할 월요일은 원고 마감일이었다. 마감을 엄수해달라던 편집자의 청을 떠올리며 결국 원고지 4매를 채웠다.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편집자에게 전화가 왔다. 자신이 분량을 착각했다고, 2매가 맞다고 그는 거듭 죄송하다고 했다. 원고를 2매로 줄여주면 감사하겠지만 그리 못하겠다면 어디까지나 자신의 실수이니 4매 그대로 다 게재하겠다고도 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지만 내 입장에서 안 해도 될 일을 해야 하는 억울함과 번거로움을 피하자고 남의 귀한 책을 망칠 수는 없었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글이란 본디 늘리는 것보다 줄이는 것이 어려운 법이라, 4매를 채울 때보다 더한 공을 들여 2매를 버려야 했다.
과정으로 보면 억울해야 마땅한데 결과적으로는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분량을 줄인 후의 추천사가 줄이기 전의 것보다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는 안도와, 일찍이 앙드레 지드가 예술의 첫째 조건은 불필요한 부분이 없는 것이라고 했듯 한 문장으로 쓸 수 있는 것을 두 문장으로 쓰지 않는 것이야말로 작가가 필히 갖추어야 할 덕목인데 내가 그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뒤늦은 걱정이 교차했다.
그리고 이어 새로운 걱정이 생겼는데,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칼럼 역시 어쩌면 반으로 줄여도 문제없지 않을까,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졌다는 것이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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