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양육보다 주변 시선 더 힘들어..가족 어려움 덜어줄 사회제도 필요[김효원의 마음건강 클리닉]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2. 8. 19.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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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것

“나 손녀는 자폐. 너만 모르는 거 같아 말하는 거라.”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영옥(한지민 분)의 다운증후군 언니 영희(정은혜 분)가 영옥과 함께 일하는 해녀들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해녀인 혜자 삼촌(박지아 분)이 같이 일하는 별이(이소별 분)에게 본인의 손녀가 자폐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하는 말이다.

다운증후군인 영희를 푸릉마을 사람들이 따뜻하게 받아들여주는 장면들도 감동적이었지만, 혜자 삼촌이 “나 손녀는 자폐”라고 할 때 그 말투가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왈칵 났다. 그 따뜻한 말투가 아이가 자폐라도 괜찮다고, 아프고 발달이 늦은 아이가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리고 이런 따뜻한 시선을 받아보지 못하고 차가운 시선과 차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들이 생각나서 그랬다.

특히 자폐인 재혁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함부로 대하는 친할머니 때문에 속상해 하던 재혁이 엄마가 생각났다. 재혁이가 말이 늦고 눈맞춤과 호명 반응이 적어서 각종 치료를 받으러 다니던 무렵에 할머니는 “내 아들이 고생해서 번 돈을 치료비로 다 쓴다”고 화를 내셨고, 재혁이에게 “말도 못하는 병신”이라고 심한 말을 하고, “때리면 말을 한다”며 말을 해보라고 아이를 때리기도 했다. 치료비는 아까워하시면서 비싼 돈을 들여서 굿을 하는 것을 보고 재혁이 엄마는 속상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재혁이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은 할머니만이 아니었다. 영·유아기에는 언어치료, 놀이치료, 응용행동분석(행동치료의 한 종류로, 현재까지 자폐스펙트럼장애에 가장 효과가 좋은 치료 방법으로 생각되고 있음)과 같은 치료를 다니느라 돈이 많이 들었고, 어린 동생을 데리고 재혁이 치료실에 왔다갔다 하는 것도 힘들었다.

특수교사가 있는 어린이집은 들어가기가 너무 힘들었고, 일반 어린이집 선생님은 의사소통이 안 되면서 산만하고 높은 곳에 자주 올라가는 재혁이를 힘들어했다.

아파트 아랫집에서 재혁이 때문에 시끄럽다고 항의를 해서 1층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특수학교를 진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19로 인해 학교를 갈 수 없는 날이 많아졌는데, 생활의 규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스케줄의 변화를 어려워하는 것이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의 특징이다 보니, 특수학교가 쉬는 날에도 가방을 메고 통학버스를 타러 가는 재혁이를 달래며 버스 정류장에서 몇 시간 동안 서 있어야 했다.

올해 들어서는 재혁이가 통학버스 안에서 돌아다니고 운전자를 건드리는 바람에 통학버스도 이용하지 못하고 엄마가 매일 차로 재혁이를 등하교 시켜야 했다. 병원이나 치료실에서 권하는 대로 치료도 열심히 하고, 행동 문제에 대한 약물치료도 했지만, 재혁이의 증상이나 행동 문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재혁이를 돌보고 교육하고 치료하는 과정이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또 신체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재혁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 가장 힘들었다.

올해 초에도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던 엄마가 아이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있었다. 자폐스펙트럼장애와 같은 발달장애 아이를 돌보는 일은 오롯이 가족에게만 맡겨놓을 수는 없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와 같이 가족들의 실제적인 어려움과 마음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보다 책임 있는 사회제도가 필요하다.

또한 푸릉마을 사람들이 영희를 대하는 것처럼, 혜자 삼촌이 자폐 손녀를 대하는 것처럼 장애인을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대하는 사회의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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