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저 빈 괄호로 두어도 괜찮아[책과 삶]

선명수 기자 입력 2022. 8. 19.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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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꿈 꾸세요
김멜라 지음
문학동네 | 344쪽 | 1만4500원

“실례지만, 천사?” 김멜라의 단편 ‘제 꿈 꾸세요’에서 화자인 ‘나’는 허공에 뜬 채 정신을 차린다. 아래로는 죽어 있는 자신의 육신이 보인다. ‘나’는 아몬드크런치크랜베리 초코바를 먹다가 목이 막혀 죽었다. “튜브에 든 물감을 짜는 것처럼” 자신의 몸에서 쓰윽 빠져나온 ‘나’는 이 상황이 어이가 없다. 몇 번 극단적인 시도를 했지만 그때마다 실패했던 죽음인데, “그 누구도 나의 안녕을 궁금해하지 않는 세상, 이 악물고 살아주마, 그렇게 결심하고 급히 먹은 원 플러스 원 초코바에 목이 막혀 죽는 이 블랙코미디”가 일어난 것이다. 내가 선택한 죽음이 아닌데, 누군가 뒤늦게 죽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면 영락없이 오해받게 생겼다.

급기야 천사인지 그 비슷한 무엇인지, 눈앞에 나타난 ‘가이드’는 내 시신을 발견해줄 사람을 찾아 그의 꿈속에 들어가라고 한다. “내 시신을 발견하고도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고통받지 않을” 사람을 골라 자신의 부고를 알리고, 수습을 부탁해야 한다. ‘나’는 엄마, 친구, 헤어진 연인을 차례로 떠올리며 그들의 꿈에 어떻게 등장할지를 고민하지만, 결국 망설이며 계획을 하나씩 철회한다.

‘가이드’와 함께 눈밭을 걸으며, 화자는 깨닫는다. 자신의 존재를 그저 ‘빈 괄호’로 두어도 괜찮다고. “내 죽음의 경위와 삶의 이력들을 오해 없이 완결”하기보다, 자신과 연결된 이들의 꿈으로 찾아가 그들을 즐겁게 해주기로 한다. “당신은 기쁘게 내 꿈을 꿔주길.”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인 <제 꿈 꾸세요>에는 표제작인 이 단편을 비롯해 독특한 상상력이 빛나는 소설 8편이 수록됐다. 자신의 속도로 걷는 ‘체’라는 강렬한 인물을 등장시킨 ‘나뭇잎 마르고’, 2022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저녁놀’ 등 평단의 호평을 받은 단편들도 담겼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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