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정치를 추방하라'..아테네 민주주의 원동력이 된 '시대정신'[윤비의 칼과 펜]

윤비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2. 8. 19.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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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클레이스테네스와 민주주의로의 큰 걸음
아리스티데스 등 정치인들을 추방하는 데 사용된 도편들. 아테네 시민들은 전제를 꿈꾸는 자의 이름을 도기 조각에 적어 추방했다. 기원전 5세기.
탐욕스럽고 잔혹한 전제군주 아래서 시민들은 ‘행복한 돼지’조차 될 수 없음을 깨달아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죽고도 전제의 기억 끈질기게 남아…숨통 끊을 결정적 일격 필요
아테네의 지도자가 된 클레이스테네스, 일반시민들에게 더 큰 정치 참여 기회를 부여
그가 도입한 ‘도편추방법’, 전제정치를 극도로 혐오한 시민들에게서 열렬한 지지 받아
정적 제거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지만 아테네를 민주주의로 들어서게 만든 ‘큰 걸음’

지난 8회는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전제정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원전 527년 전후로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죽고도 전제는 아테네에서 17년간 계속되다가 그의 아들 히피아스가 스파르타와 손을 잡은 반대파들에 의해 축출되어서야 끝이 났다. 전제는 사라졌다. 그러나 전제의 기억은 끈질겼다. 전제에 피해를 본 사람들이 있듯 전제군주의 옆에 진딧물처럼 붙어 단물을 빤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그 단맛을 잊지 못했다. 심지어 전제를 몰아낸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었다. 전제의 숨통을 끊어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게 할 결정적 일격이 필요했다. 도편추방법이 만들어졌다. 시민들이 모여 전제를 꿈꾸는 자의 이름을 적은 도기 조각을 던진 후 최소 6000표 이상을 얻은 자를 10년간 추방하는 법이었다. 클레이스테네스(기원전 570년~기원전 507년경)가 이끌던 무렵이었다. <아테네 국가>의 저자가 이야기하듯 이로써 아테네는 민주주의로의 큰 걸음을 내디뎠다.

■무엇이 사람들을 민주주의로 이끌었는가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민주주의로 향하게 할까? 이 연재에서도 이미 이야기했지만, 인간의 이성과 본성이 민주주의를 부른다는 답은 듣기에는 좋아도 설득력은 별로 없다. 그런 주장은 계몽주의의 잔재이다. 역사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입증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뜻이다.

민주주의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이유에 대해서 간단하고도 결정적인 답을 주기는 어렵다. 역사 자체도 벌써 꽤 되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나라들도 많은 데다 그 과정도 제각각이라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 되었다”라고 정의를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근대가 시작되기 이전, 민주주의 혹은 민주주의와 비슷한 정치제도를 가졌던 이런저런 사례들을 들여다보면, 최초 사람들을 민주주의로 움직인 것은 대단한 이상주의보다 힘센 자들의 자의에 일방적으로 휘둘리는 것에 대한 공포, 그들의 판단과 호의를 바라며 눈치 보며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앞서 이야기했듯 페이시스트라토스 가문의 지배가 끝났다고 해서 아테네에서 전제정치의 그림자가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었다. 히피아스를 몰아낸 후 아테네는 두 파로 나뉘어 싸움을 계속했다. 한 파는 히피아스를 몰아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알크메오니드 가문이었다. 그 우두머리는 클레이스테네스였다. 다른 한편은 이사고라스가 이끄는 파벌이었다. 이들은 밀려난 페이시스트라토스 가문에 여전히 줄을 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이사고라스 파를 압도하기 위해 데모스, 즉 일반시민들과 손을 잡았다. 그는 이제까지 4개이던 행정구역을 10개로 늘리고 행정구역마다 해안지역과 내륙,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고르게 배속했다. 아마 클레이스테네스는 이렇게 행정구역 안에 혈통과 가계, 지역 기반이 다른 사람들을 섞어 놓음으로써 혈족이나 지역의 이해가 지나치게 정치를 좌우하지 못하도록 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8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솔론 이후까지도 아테네가 혈족과 지역 간의 반목에 시달리고 있었음을 생각하면 이런 조치를 왜 내렸는지 이해할 수 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일반시민에게 더 많은 정치참여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민회의 의제를 정하는 등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협의회 구성원을 기존 400인에서 500인으로 늘린 것도 그런 이유이다. 각 행정구역은 여기에 50명씩을 보내게 되어 있었다.

클레이스테네스가 개혁을 실행에 옮기는 동안 이사고라스는 반전 기회를 노렸다. 그는 스파르타군을 끌어들였다. 스파르타 왕 클레오메네스가 이끄는 군대가 아테네로 진격했고 이들의 힘을 빌려 이사고라스는 500인 협의회를 해산시키려 하였으며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했다. 그러나 일은 이들이 바라던 대로 풀리지 않았다. 협의회는 해산을 거부했다. 시민들은 아크로폴리스로 몰려가 이사고라스와 클레오메네스의 군대를 포위했다. 이사고라스 일파와 스파르타군은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클레이스테네스 치하에서 취해진 민주주의를 향한 결정적 조치는 앞서 말한 도편추방법의 제정이었다. 도편추방법이 제정되었다고는 해도 실제 법이 실행에 옮겨진 것은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가 승리를 거두고 2년이 흐른 뒤였다. 대제국을 상대로 거둔 승리는 시민들의 자부심을 한껏 고양시켰다. 동시에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떠받드는 지도자 중 누군가는 예전 페이시스트라토스처럼 명성과 힘을 이용하여 권력을 움켜쥐려 할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했다. 의심의 눈길은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친척인 히파르코스에게 향했다. 히파르코스는 도편추방법에 의해 아테네에서 쫓겨난 첫 인물이 되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도편추방법을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손쉬운 수단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나중에 도편추방법은 그런 식으로 힘있는 정치인이 다른 힘있는 정치인을 제거하는 법적 린치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이 법을 밀어붙인 시민들의 생각이다. <아테네 국가>의 저자는 이 법이 처음부터 인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돌려 말한다면 시민들이 이 법을 환영했다는 뜻이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전제정치의 재등장을 막아야 한다는 아테네 시민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왜 시민들은 전제정치를 그토록 두려워하고 혐오하게 되었을까?

미국 오하이오주 의회에 비치된 클레이스테네스 흉상.

■전제정치의 악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전한다. 알크메오니드 가문을 도와 페이시스트라토스 일가를 몰아낸 후 스파르타는 이내 후회를 한다. 세력이 커지게 된 아테네가 자신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걱정이 든 것이다. 차라리 전제군주 밑에 그대로 놔두었더라면 눈치나 보며 고분고분할 자들이 이제 와서 은혜를 모르고 자유민이랍시고 고개를 빳빳이 든다는 생각에 스파르타인들은 분노했다. 그래서 그들은 아테네인을 도와 권좌에서 끌어내린 히피아스를 다시 아테네로 복귀시킬 계획을 한다. 스파르타는 동맹국의 대표들을 불러들여 아테네로 출병할 계획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순간 코린토스의 대표가 일어서 전제군주의 편을 들어 아테네와 다른 그리스 도시들의 평등 질서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반대한다. 그는 예전 코린토스를 지배했던 전제군주 킵셀로스와 그의 아들 페리안드로스의 악행을 들려줌으로써 스파르타와 동맹국들의 마음을 돌리려 한다.

코린토스 대표가 이야기하는 전제군주의 첫 번째 악은 탐욕과 잔혹함이다. 킵셀로스의 행동이 그 증거이다.

“킵셀로스는 참주가 되어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되었소. 그는 수많은 코린토스인들을 추방하고 수많은 코린토스인들의 재물을 빼앗았으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코린토스인들의 목숨을 빼앗았소.”(김봉철 역, <역사>)

코린토스 대표가 이야기하는 전제군주의 두 번째 악은 주변이나 나라 전체에서 잘난 자가 돌아다니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킵셀로스로부터 전제군주의 자리를 물려받은 페리안드로스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권력을 잘 지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끝에 밀레토스의 전제군주 트라시불로스에게 사절을 보내 자문을 구한다. 사절을 접견한 트라시불로스는 아무 말 없이 도시 밖으로 데리고 나가 곡물을 심어 놓은 경작지로 들어간다. 거기서 그는 이곳 저곳을 다니며 사절에게 코린토스에서 온 용건에 대해 묻고 또 묻는다. 동시에 이삭 가운데서 다른 이삭보다 더 솟아오른 것을 보면 가차없이 잘라서 버리기를 반복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가장 튼실한 것들을 모두 제거한 후 아무 말 없이 사절을 코린토스로 돌려보낸다. 사절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전하며 자기 밭을 자기 손으로 망가뜨리는 트라시불로스를 비웃는다. 그러나 사절의 이야기에서 페리안드로스는 트라시불로스의 조언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찾아낸다. 코린토스 대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페리안드로스는 트라시불로스의 행동을 이해했고, 트라시불로스가 자신에게 시민들 가운데 탁월한 자들을 죽이라고 조언했음을 명심하여 그때부터 시민들에게 온갖 악행을 저질렀소.”

킵셀로스와 페리안드로스에 대해 코린토스 대표가 한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심지어 실제 코린토스 대표가 스파르타인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도 분명치 않다. 어쨌든 헤로도토스의 글을 읽는 아테네 시민들은 아마 모두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킵셀로스와 페리안드로스의 패악은 자신들이 페이시스트라토스 체제에서 겪은 것과 꼭 같았기 때문이다.

전제정치를 연 페이시스트라토스는 그래도 꽤 인기가 있었다. 지난 8회에서 이야기했듯 그의 ‘배부른 돼지’ 정책은 어느 정도는 먹혀들었다. 그러나 페이시스트라토스의 뒤를 이은 히피아스는 그와는 또 달랐다. 그의 동생 히파르코스(위에서 말한 히파르코스와는 다른 인물이다)가 암살당한 시점부터 그는 점점 주변을 의심하고 수틀리면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인물로 변해갔다고 기록은 전한다. 전제군주의 폭력성과 변덕, 의심병에 대해 아테네 시민들은 물릴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아테네인들로서 헤로도토스가 전해주는 킵셀로스와 페리안드로스의 이야기를 의심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심지어 여기에 아테네 시민들의 시각이 투영되어 있다고 보아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할리카르나소스 출신이지만 오랫동안 아테네에서 머물면서 아테네의 정치제도가 “모든 면에서 좋은 것이었다”로 이야기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이 전제군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며개인적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그가 사람들 사이에 이리저리 떠돌던 킵셀로스와 페리안드로스의 이야기를 아테네 시민들의 시각을 섞어 재창조했다고 해도 놀랍지 않다.

■전제군주에 대한 혐오

킵셀로스와 페리안드로스의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전제군주에 대한 아테네인들의 평가는 왜 이들이 전제군주에 반기를 들고 아예 싹부터 뽑아버리려 했는지를 보여준다. 아테네인들은 전제군주 아래에서는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전제군주는 주면 주는 대로 받고 만족하는 존재들을 원한다. 아니라고 소리만 질러도 움츠려 벌벌 떠는 자들, 맞다고 하면 그냥 맞는 줄 아는 이들이 전제군주가 원하는 측근이고 전제군주가 다스리고 싶어하는 시민이다. 자기 것을 제대로 찾아 먹을 줄 아는 사람들, 내 몫을 주장하고 따지는 사람들이 전제군주에게는 불편한 존재이다. 전제군주는 시민을 시민답게 취급하지 않는 존재들이다.

처음에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지배에 행복해했던 시민들도 시간이 흐르며 점점 더 반대편으로 옮겨갔다. 단지 자존심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멸감을 견디지 못해서만도 아니다. 전제군주의 푸들 취급을 받으며 호의에만 기대서는 결국 내 몫도 건지지 못하고 가난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동기가 큰 역할을 했다. 전제군주는 심지어 행복한 돼지조차도 만들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시민들이 깨닫게 된 것이다.

도편추방이라는 대단히 급진적인 방법은 이런 전제정치의 경험을 배경으로 그 예방책으로 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민주주의적이지 않은 정치가 아테네를 민주주의의 길로 들어서게 한 동력이 된 것이다. 물론 이 한 걸음만으로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완성되지는 않았다. 민주주의 아테네로의 길을 연 다른 계기와 인물들이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이야기한다.

▶윤비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이론을 역사 및 문화와 관련지어 연구한다. 베를린 훔볼트대 정치학과 및 역사학과,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서양정치사상을 강의하였다. 가르친다는 일을 영광으로 여기며 산다. 2021년 마키아벨리를 주제로 독일에서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2018~2020년 한겨레 신문에 ‘윤비의 이미지에 숨은 정치’를 연재하였고, EBS <지식의 기쁨> <세바시> 등에서 강연하였다.

윤비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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