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선물을 주고받는 사이..'인류의 재능' 오고간다
페스티벌 참가자가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라곤 커피와 얼음뿐이라고 한다. 모든 건 '선물'로 교환된다. 제한된 조건에서 사람은 어떤 행동을 취할까. 한 잔의 맥주를 위해 춤추고 그림을 그려야 하니 그들의 몸짓은 자연스레 예술이 된다. 예술행위와 예술작품에 깃든 '가치'를 이름 모르는 상대와 주고받으면서 교환과 거래의 문화가 성립된다. 화폐가 없던 시절 인간의 본모습, 그 오랜 역사를 블랙록시티 5만명의 인파가 압축해 재현해낸다.
미국 시인이자 하버드대에서 강의한 저자의 신간 '선물'은 사람들이 주고받는 선물의 의미에 관한 철학서다. 인간은 왜 선물을 주고받았으며 선물에 내재된 함의는 무엇일까. 1924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마르셀 모스의 교환론 명저 '증여론'을 정신의 저본으로 삼으면서 선물을 둘러싼 철학을 전개한다.
선물에 관한 첫 번째 사유. 선물은 공동체를 창조하고 보호한다.
이탈리아의 한 인류학자는 2011년 로마의 버려진 살라미 공장에서 사는 실직자와 노숙인을 발견했다. 예술가 300명에게 시간과 작업을 기부받아 공장을 벽화와 설치물로 채우자 이곳은 마을이 됐다. 선물이 두 번째 삶을 허락한 것이다. 선물 순환의 힘에 기대 삶은 영위된다.
둘째, 선물은 선물을 소멸시킴으로써 가치를 증명한다. 선물과 상품은 다르다. 따라서 선물 교환도 상품 교환과 다르다. 선물은 다 쓰고 소비하며 먹어버려야 한다. 인디언들은 한 사람이 준 선물이 다른 사람의 자본이 돼서는 안 된다고 봤다. 선물은 반드시 소멸하는 재산이어야 하며, 보상의 확약 없이 한 사람의 손에서 다른 사람의 손으로 이동한 뒤 소멸돼야 한다.
셋째, 선물은 유대를 확립시킨다. 이는 선물과 상품의 본질적 차이다. 철물점에서 쇠톱을 사고 나온다고 해서 점원과 깊은 유대가 생기는 건 아니다. 그러나 선물은 연결성을 만든다.
철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책에 남긴 프랑스 남부 싸구려 식당의 사소한 식사 의례가 적절한 예시가 된다. 이곳 식당에선 자신의 와인을 옆사람 잔에 따르고, 와인을 받은 사람은 답례로 상대의 빈 잔을 채워준다고 한다. 와인의 양은 같지만 주고받은 와인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다음 이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대화. 선물이 사회적 유대를 일으킨 것이다.
이쯤에서 저자는 선물의 의미를 예술로 확대해 심연을 보여준다. 일단 책의 전제 조건은 이렇다. '예술은 상품이 아니라 선물이다.' 선물은 예술인의 의지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선사되는 것이다. 예술가가 작업을 할 때 창작의 어떤 부분은 성취가 아니라 선물로 받은 무엇이다.
예술가들이 만든 예술을 향유하는 이들이 받는 경험도 선물이 된다. 우리가 보고 듣고 읽는 건 상품이 아니다. 예술가의 창작이라는 대행(代行)을 통해 그는 자신의 존재라는 천부적 자산을 알아보게 된다. 창조적 정신의 거래는 이처럼 물질적인 교환 이상의 것이 된다. 영단어 'gift'가 선물 외에도 재능이란 뜻이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예술가의 재능은 자신과 타인을 향한 동시적 선물이 된다. 저자는 결론에 이르러 예술가들이 예술적 체험으로 세계를 향해 봉사하는 노동으로 나아갈 것을 주문한다.
책은 마거릿 애트우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얀 마텔의 극찬을 받았다. '따뜻하고도 지혜로운 책은 우리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타임스), '인간의 노력 뒤편에 숨겨진 모든 영감에 관한 책'(해럴드)이란 평도 뒤따랐다.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이 책의 문장이야말로 아직 뜯지 않은 선물상자와 같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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