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당구계의 '빌리퀸' 김진아

정완주 기자 2022. 8. 1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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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딜러를 꿈꿨던 '또순이' 
"LPBA 정상에 오를래요"

포켓볼 종목에서 활약을 하다 3쿠션 종목으로 전환해 성공한 대표적인 당구 선수를 꼽으면 항상 두 명의 이름이 따라다닌다. 김가영(하나카드) 선수와 지금은 정계로 진출한 차유람 선수다. 김진아(30·하나카드) 선수도 그 계보를 이어받아 포켓볼에서 성공적으로 3쿠션으로 전환한 경우이다. 김진아는 포켓볼은 물론 3쿠션 선수로서 국내 정상의 톱랭커로 이름을 날렸다. 대한당구연맹이 주최한 6개 대회에서 4차례나 우승을 차지해 국내 여자선수 랭킹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여자당구 프로리그인 LPBA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두 차례 연속 1회전 탈락이라는 충격적 결과에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와신상담'을 노리면서 새로운 신화를 꿈꾸고 있다. '퀸'이 아닌 진정한 '여제'로 등극하기 위해서다.

프로당구 선수 김진아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왕따' 따돌림을 당구로 극복

선수 출신 아버지 권유로 시작

김진아가 당구 선수가 된 계기는 학창 시절 따돌림에 시달려서다. 부산에서 자란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사업차 제주도로 이주하면서 전학을 했다. 하지만 민감한 사춘기 시절에 외지에서 온 김진아는 '왕따'로 괴롭힘을 당하면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학교에 가는 것조차 두렵고 싫었다.

"제가 왕따로 시달려 마음고생을 하는 모습을 지켜 본 아버지께서 당구를 권유하셨어요. 대한당구연맹 선수 출신이셨거든요. 당구 선수를 한다고 학교에 말하면 점심 이후 당구 연습장에 갈 수 있어서 교내에 머무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죠. 그래서 큰 고민을 하지 않고 도피처로 당구를 선택한 셈이죠." 

김진아는 포켓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당시 포켓볼 선수로 유명했던 김가영·차유람 선수와 한국계 미국 선수인 자넷 리가 방송에 나와 활약하는 모습에 반한 것이다. 특히 특유의 카리스마가 강렬했던 김가영을 우상으로 삼았다. 경기에 집중하는 투지를 발휘할 때 이마를 찡그리는 모습조차 멋있어 보일 정도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우상인 김가영의 연습실 근처로 이사를 해 함께 땀을 흘린 인연도 있다.

김진아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진학한 2008년 정식 포켓볼 선수가 됐다. 주니어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가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선수등록 이후 전국체전에서 최연소 금메달을 따는 등 그의 활약상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포켓볼 선수로서 살아가기가 한계에 달하기 시작했다. 국내 대회 상금 규모는 말하기 민망할 정도였고 그나마 대회 자체도 자주 열리지 않았다.

"울산을 대표해 전국체전에 나가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하는 등 성적이 괜찮았어요. 세계대회에도 자주 참가했는데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8강까지 오르기도 했죠. 성적을 냈지만 시도체육회 소속으로 협상을 할 때마다 턱없이 낮은 연봉 때문에 심란할 수밖에 없었어요. 첫해 연봉 600만원으로 시작해 마지막 받을 때 2500만원 수준이었거든요. 그 연봉으로는 세계대회에 참가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기본적인 생활비도 부족할 수밖에 없어서 집에서 용돈을 따로 타야 할 정도였어요." 

프로당구 선수 김진아가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턱없이 낮은 연봉으로 생활고

카지노 전문 딜러로 전직 도모

김진아의 고민은 점점 깊어졌다. 포켓볼 선수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성인으로서 자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다.

그래서 그는 큰 결심을 한다. 아예 직업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어린 시절 유독 독립심이 강하고 '똑' 소리가 날 정도로 야무졌던 터라 직업 전환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고민 끝에 선택한 진로는 전문 카지노 딜러였다.

"제 성격이 원래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평소에도 카드나 보드 게임을 즐길 정도로 좋아했고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카지노 딜러였습니다. 수입도 괜찮고 적성이 맞을 것 같았거든요. 실제로 전문 학원도 등록했고 지인의 소개로 딜러를 소개받아 개인 교습을 받기도 했어요. 포켓볼은 그동안 최선을 다했다고 위안을 삼으면서 미련 없이 접기로 한 거죠."

본격적으로 딜러 준비를 한 지 한 달 정도 지나자 김진아의 인생에 우연치 않은 기회가 다가왔다. 평소 그를 눈여겨본 후원자가 나서 다시 당구 선수로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당구대 천을 수입하는 고리나코리아의 임정철 대표가 후원자로 나섰다.

"선수 출신인 임 대표께서 포켓볼 동호인으로 지내는 동안 저를 눈여겨보신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연습장에 나와도 큐를 잡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는 저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 하셨는지 제안을 주셨어요. 포켓볼이 아니라 3쿠션으로 종목을 전환하는 전제로 후원을 해줄 생각인데 의향이 있는지 묻더라고요."

곰곰이 생각하던 김진아는 임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3쿠션 선수들이 포켓볼 선수보다 미디어 노출이 잦아지는 등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이 평소 부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다양하게 후원을 받는 선수도 많아 포켓볼보다는 기회가 커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스폰서십 회사로부터 3연승 축하 기념으로 후원받은 커피차,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를 마친 후 관광 모습.

포켓볼과 함께 3쿠션 선수를 겸직한 김진아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연습에 매진했다. 공휴일도 쉬지 않고 연습장으로 향해 코피가 터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마음만은 편했다. 후원을 받으면서 그나마 생활에 여유가 생긴 탓이다.

"고리나 후원을 받아서 생활비에 보탰어요. 체육회에서 나오는 연봉과 합치니 적어도 집에 손을 벌리지 않게 된 거죠. 그래서 홀가분하게 연습에만 몰두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또 임 대표께서 직접 여러 가지 레슨을 해주는 바람에 실력이 늘어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어요."

김진아의 당구 스승은 3명을 꼽을 수 있다. 첫 번째 스승은 임 대표, 두 번째 스승은 유튜버 '용사부'로 유명한 허해룡 선수, 세 번째 스승은 차명종(인천광역시체육회) 선수다. 포켓볼 선수 출신인 허해룡과는 고등학교 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특히 3쿠션을 배울 때 유튜브를 찍으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 차명종과는 현재 유튜브 '빌리퀸'을 같이 진행하고 있다.

"임 대표님이나 허해룡 선수한테는 너무 많은 레슨을 받아서 일일이 기억을 못할 정도예요. 그 분들 덕에 생각보다 빨리 3쿠션 종목에 적응할 수 있어서 지금도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차명종 선수로부터는 유튜브 방송을 같이 진행하면서 제가 지금 가장 필요한 부분의 레슨을 받을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시스템보다는 공에 대한 원리, 힘의 배합, 속도 등을 알려 주시는데 저에게는 정말 꿀팁들이거든요. 유튜브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대본도 없이 불쑥 던져주는 과제들이 신기하게도 저한테 정말 필요한 것들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죠."

자신감 넘친 LPBA 도전

연속 1회전 탈락으로 '눈물'

김진아는 3쿠션에 전념한 뒤 일취월장으로 실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LPBA로 넘어오기 전에는 최전성기를 누렸다. 2021년에는 경남고성군수배, 태백산배에 이어 대한체육회장배 전국 당구대회에서 연달아 우승해 국내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3연속 전국대회 우승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국내 랭킹 1위 자리도 오랫동안 지켜냈다.

김진아의 눈은 자연스럽게 프로리그로 향했다. 결국 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지난 6월 2022~23 시즌 '경주 블루원리조트 PBA-LPBA 챔피언십'에서 프로 데뷔전을 가졌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1회전 탈락의 고배를 마시면서 충격을 받았다.

"아마추어 대회에서 계속 성적이 좋아 나름대로 자신감을 갖고 개막식 경기에 임했는데 솔직히 1회전 탈락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 경기가 끝나고 나서 집에서 혼자 펑펑 울었죠. 그리고 2차 대회에서도 1회전을 넘기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주위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던 것 같아요. 확실히 달라진 경기장 환경이나 서바이벌 경기 방식 등에 적응하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웠던 점이 있었고요."

프로당구 선수 김진아가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두 번째 1회전 탈락을 한 뒤에는 아예 마음을 내려놓았다. 예선 탈락 상황이 더 이어질 수도 있다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했다. 결국 연습만이 해결책이라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데뷔 이후 아마추어 랭킹 1위 선수에 대한 미디어의 집중 조명과 팬들의 기대감에 스스로 위축되지 않도록 마음을 비우고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마음가짐을 다졌다.

마침 하나카드의 선택으로 팀리그에 들어간 것이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우상으로 삼았던 김가영의 존재는 든든한 안식처가 됐다.

"팀에 처음 합류한 뒤 가영 언니가 '드디어 프로로 왔구나. 넌 잘할 것 같으니 열심히 해라'라고 격려를 해줬습니다. 평소에도 가영 언니와는 자주 만나는 편인데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줘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팀원들 도움도 많이 받고 있어요. 다들 저보다 실력이 우수한 선수들이라 같이 연습하거나 경기 중에도 배우는 점이 많아요. 그 덕분에 팀 리그전에서 승리를 거둔 점이 자신감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 것 같아요."

같은 팀의 외국인 선수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져 활력소가 됐다. 카시도 코스타스(그리스) 선수의 경우 듣기와는 달리 까탈하지 않고 친절한데다 배려심도 깊었다. 김진아처럼 올해 시즌에 새로 PBA로 합류한 베트남의 강호 응우옌 꾸억 응우옌도 평소 활발하고 유쾌한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해 활력소가 되고 있다. 특히 베트남 출신이기는 하지만 응우옌의 경우 영어로 소통하는 대학원을 나와 통역 역할을 해주는 김가영을 통해 팀원들과 소통이 원활하다. 그래서 팀 전체 분위기가 좋은 편이고 팀리그 성적도 1위를 기록해 김진아는 예선탈락의 아픔을 쉽게 치유할 수가 있었다.

"프로 전환을 앞두고는 뱅크샷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어서 원뱅크 훈련을 많이 했어요. 특히 차명종 선수한테 노하우를 많이 전수받아서 원뱅크 외에 다른 뱅크샷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죠. 최근에는 파워를 늘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제가 체구가 작은 편이라 웬만한 난구가 나오면 뱅크샷으로 풀어야 할 때가 많거든요. 특히 파워샷의 경우에는 대회전 세 바퀴를 돌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여자 선수 절반 정도는 아직 대회전 세 바퀴를 돌리지 못해요. 그래서 평소 좀 길었던 브리지와 공과의 간격을 줄여 큐 끝이 길게 팔로우가 될 수 있도록 변화를 주고 있기도 해요."

김진아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평소 루틴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려고 한다. 직장인처럼 출퇴근 시간을 엄격하게 적용해 집중력을 높이고 쉴 수 있는 여가 시간도 충분히 가지려고 한다. 멘탈이 강하기 위해서는 맑은 정신 건강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전 10시까지는 연습장에 반드시 나가 개인 연습에 집중한다. 오후에는 동호인들과 경기를 하면서 실전 감각을 쌓는다. 퇴근 시간은 정확히 6시를 지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TV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여가를 즐긴다. 철봉대를 설치해 턱걸이를 하는 등의 체력 훈련도 병행한다. 가끔은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물론 시합을 앞두면 연습 시간을 더 늘려 훈련에 매진한다.

프로당구 선수 김진아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슈퍼 스타' 등극이 큰 목표

"여자골프 뛰어넘는 저변 확대 역할 기대"

올해 서른 살이 된 김진아는 평범한 일상도 꿈꾼다. 34살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아 소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당구 선수로서의 꿈은 원대하게 잡았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구 스포츠가 지금보다 더 인기가 높아져 많은 후진들이 따라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싶어서다.

"당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저를 알아볼 만큼 스포츠 스타가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당구를 부흥시켜 저를 우상으로 여기는 어린 선수들이 늘어나 당구의 저변이 확대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은 거죠. 지금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여자프로골프처럼 시장 자체를 키울 수 있는 조력자가 되고 싶어요."

물론 그 혼자 이룰 수 있는 목표는 아니다. 같이 활동하는 선수들도 동시에 스타가 되고 흥미진진한 라이벌 구도가 갖춰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김진아는 LPBA 선수들의 실력이 올라오고 있는 것을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있어서 동기 부여가 된다고 한다.

"여자 선수들의 기량이 전체적으로 크게 향상됐다는 점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했죠. 역시 아마추어와 프로는 동기 부여가 다른 것 같아요.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죽기 살기로' 투지를 불태우더라고요. 결국 평소 실력을 쌓은 실력자들은 약간의 운만 따라준다면 누가 우승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예요. 그래서 저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시합 때 공타를 치다가도 한 번의 기회가 오면 절대 놓치지 않는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차이가 결국 승자와 패자를 나누게 되는 셈이죠."

결국 승리의 길로 가기 위한 독기가 필요하다. 김진아의 부모님은 지금까지 딸의 시합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김진아 개인적으로 부모님이 시합장에 오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을 잘 아는 부모님도 딸의 원칙을 깨트리려 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딸을 믿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평소 '똑순이' 소리를 듣는 성격처럼 김진아의 다부진 LPBA 점령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

 

스포츠한국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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