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유상증자의 두 얼굴.. M&A 호재부터 소액주주 소송까지

최정석 기자 2022. 8. 19.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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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달 제약·바이오 유상증자 13건
4건은 외부 투자, 9건은 내부자금 수혈
"과한 유상증자, 되레 투자심리에 악영향"
지난해 1월 14일 대전 서구에서 직장인이 주가지수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최근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에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에이프로젠, 지놈앤컴퍼니, HLB 등 10개 넘는 기업이 최근 한 달 사이 유상증자를 결정했거나 추진 의사를 밝혔다. 인수합병, 투자금 유치 형태를 띤 ‘호재’도 있는 한편, 투자 난항으로 모회사나 최대주주로부터 자금을 수혈받는 ‘악재’도 있었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7월 중순부터 이날까지 한 달간 유상증자를 공시한 제약·바이오 기업은 13곳이다. ▲지놈앤컴퍼니 ▲쎌마테라퓨틱스 ▲HLB ▲코오롱티슈진 ▲크리스탈지노믹스 등이다. 지난 6월 한 달 동안 유상증자를 공시한 기업은 6곳인데, 한 달 사이 2배 이상 늘어났다.

통상적으로 유상증자는 주주들에게 ‘악재’라고 여겨진다. 회사 가치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중에 더 많은 주식을 풀면 주가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요는 똑같은데 공급만 늘리면 상품 가격이 낮아지는 원리다.

그러나 유상증자가 ‘호재’가 될 때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유상증자를 통해 늘어난 주식을 다른 회사가 모두 사들여 최대주주가 되는 식의 인수합병이다. 이런 식의 유상증자는 회사가 미래 성장 가능성을 증명했다는 뜻으로 해석돼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유상증자가 ‘두 얼굴’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국내 3위 바이오복제약(바이오시밀러) 제조사인 에이프로젠이 이런 사례다. 지난 16일 에이프로젠이 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경영권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회사 주가는 장중 한때 약 17%(1770원) 급등했다. 다만 회사가 이후 조회공시를 통해 “결정된 바 없다”고 해명하며 현재 주가는 1500원 선으로 떨어진 상태다.

지놈앤컴퍼니 또한 유상증자 결정 후 주가 상승 효과를 보고 있다. 회사는 전날 인터베스트, NH투자증권 등 10개 기관의 투자를 받아 총 343억원 규모의 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어제까지 2만원 선에 있던 회사 주식은 현재 2만1000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외부 투자를 유치했다는 사실이 회사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로 이어져 주가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러스트=손민균

그러나 모든 유상증자가 호재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에이치엘비(HLB)는 최근 3256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주주배정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들에게 새로 발행한 주식을 현재 시세보다 싼 값에 넘겨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이다. 새로운 투자자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주로 쓰는 방법이라는 점 때문에 대부분 악재로 작용한다.

결국 주가 하락을 예상한 공매도 세력이 대거 들어왔다. HLB는 지난 16일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발표했는데, 같은 날 거래된 HLB 공매도 주식은 총 13만973주에 달한다. 주가도 하루 만에 3% 넘게 빠졌다.

투자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모회사나 최대주주가 직접 나서기도 한다. 코오롱티슈진은 이달 초 388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는데, 이 중 38억원은 모회사인 코오롱의 이웅열 회장 개인 재산이다. 나머지 350억은 코오롱 회삿돈이다. 쎌마테라퓨틱스도 최대주주인 에이치트레포트로부터 받은 50억원으로 유상증자를 진행한다.

최근 한 달간 유상증자를 공시한 13개 기업 중 9곳이 이런 식으로 최대주주나 회사 임원, 모회사 등으로부터 끌어온 자금으로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신규 투자를 유치한 회사는 4곳뿐이었다.

크리스탈지노믹스의 경우 지난달 29일 회사 2대 주주인 금호에이치티로부터 58억원의 자금을 받아 유상증자를 하려 했으나 법원이 이를 무산시켰다. 소액주주들이 신주 발행을 무효로 해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공시했던 22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건에 대해서도 현재 소송 진행 중이다.

업계에선 유상증자를 남발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부 업체들이 유상증자 카드를 너무 가볍게 써버리는 탓에 업계 이미지가 안 좋아지면 산업 자체에 대한 투자심리까지 얼어붙을 수 있다”며 “기술력으로 잠재적 투자자들을 설득할 생각 없이 기존 주주와 모회사 돈에만 의존하는 건 다른 회사들 발목을 붙잡는 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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