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당 아닌 과감한 양보.. 사다트의 '담대한 구상'이 이집트를 살려냈다[전희상의 런던 책갈피]
헨리 키신저 리더십>
헨리 키신저는 <리더십>에서 아데나워(독일), 드골(프랑스), 닉슨(미국), 사다트(이집트), 리콴유(싱가포르), 대처(영국)의 세계전략을 다룬다.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탁월한 정치가(statesman)들이다.
키신저는 어떻게 정치가를 정의하는가. 정치가는 주어진 상황과 외부환경의 제약하에 있지만 여기에 매몰되지 않고 최대한의 변화를 추동한다. 역사의 흐름에 민감해 사소한 일상에 깃들어 있는 전략적 기회를 직관으로 포착해낸다. 장기적인 비전을 바탕으로 국가를 미답의 길로 이끌 수 있는 역량과 용기를 갖추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키신저는 안와르 사다트를 자신이 만난 최고의 리더로 꼽는다.
사다트가 대통령직을 승계한 1970년대 초 이집트는 엄청난 국내외의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이스라엘에 연전연패해 시나이반도를 통째로 잃었고 나라가 극도의 분노와 절망에 휩싸였다. 아랍의 대표자로 행세했지만 국가역량은 허세를 뒷받침할 만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소련으로부터 경제, 군사 지원을 받았지만 상황을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었고 오히려 장기판의 말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전쟁도 평화도 아닌 안갯속 정세가 계속되면서 이슬람 극단주의가 급속히 퍼져나갔다.
엄혹한 정치환경을 물려받은 사다트는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항구적 평화라는 비전을 품었다. 그리고 그 비전만큼이나 과감한 전략을 채택했다. 범아랍주의를 포기하고 이집트의 독자적 외교 노선을 채택했다. 소련에 대한 의존관계를 끊어내고 미국을 중재자로 삼았다. 이슬람 근본주의 대신 세속주의와 코즈모폴리터니즘을 추구했다.
1973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4차 중동전쟁이 이러한 전략적 대전환의 수단이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비극이자 아이러니다. 사다트는 아내에게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에 참여해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전쟁이 한 번 더 필요하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잃어버린 영토를 조금이나마 되찾아 정세를 일거에 뒤집어놓고 이집트의 자존심을 회복해야만 평화의 길이 열린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전세 역전 후 전면 후퇴를 건의하는 총사령관을 “전쟁의 목표를 모른다”며 비판했고 이집트에 필요한 것은 단 10㎝만이라도 시나이반도에 진입하는 것이라 일갈했다. 이 전쟁은 “심리”의 전쟁이었다.
전쟁은 그의 의도대로 평화협상으로 이어졌고 협상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카이로와 예루살렘을 오가며 중재자 역할을 한 키신저는 서로 밀고 당기는 주고받기식 협상 대신 과감한 양보를 통한 신뢰 회복에 주력한 사다트의 접근을 높이 샀다. 협상에 종지부를 찍고자 그는 전격적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해 의회 연설을 통해 평화의 필요성을 설파했고 주변 아랍국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78년에는 마침내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사다트는 바로 이 성과 때문에 무슬림 형제단의 손에 암살당했고, 그의 평화의 비전은 미완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혁명가 시절 감옥의 독방에서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우주와 하나 되는 체험을 했다는 사다트는 그의 ‘담대한 구상’의 잠정적 실패를 영원한 실패로 간주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희상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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