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인사이트] 경량화부터 생산 효율화까지, 자동차를 찍어내는 3D 프린팅 기술
모빌리티(mobility). 최근 몇 년간 많이 들려오는 단어입니다. 한국어로 해석해보자면, ‘이동성’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동차도 모빌리티, 킥보드도 모빌리티, 심지어 드론도 모빌리티라고 말합니다. 대체 기준이 뭘까요? 무슨 뜻인지조차 헷갈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몇 년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스타 벤처 중 상당수는 모빌리티 기업이었습니다.
‘마치 유행어처럼 여기저기에서 쓰이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모빌리티라고 부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통해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다양한 모빌리티 기업과 서비스를 소개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차량호출 서비스부터 아직은 낯선 ‘마이크로 모빌리티’, ‘MaaS’, 모빌리티 산업의 꽃이라는 ‘자율 주행’ 등 모빌리티 인사이트가 국내외 사례 취합 분석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씩 알려 드립니다.
본격적으로 진입한 전기차 시대, 핵심은 경량화
국내외 전기차 판매량은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신규 등록 자동차 중 전기차는 6만 8,850대를 차지했는데요.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무려 75.3%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시장점유율도 4.3%에서 8.4%로 약 2배 상승했죠. 새로 판매되는 자동차 10대 중 1대는 전기차일 날이 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 신호는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기차를 타기에 편한 시대라는 뜻은 아닙니다. 공급망 위기로 신차 출고까지 오래 걸릴뿐더러, 내연기관차보다 비싼 가격, 1회 충전 시 주행거리, 충전소 및 충전기 인프라 부족, 배터리 수명 등 아직 해결할 과제는 많죠.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지적은 배터리입니다. 여러 기업이 배터리 수명과 효율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짧은 주행거리를 단점이라고 지적합니다. 자동차 조사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가 전기차 새 차 구입자를 대상으로 전기차의 단점을 조사했는데, 가장 큰 단점으로 겨울철 짧아지는 주행거리를 꼽았고, 세 번째로 추가 충전 없이는 장거리를 주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을 정도입니다.
주행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여러 대안이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경량화입니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무게를 10% 감소하면 주행거리도 10% 가까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즉, 자동차 경량화는 직접적으로 주행거리에 영향을 미치죠.
최근 전기차 시장 활성화로 기존 내연기관차에 비해 부품 수는 줄고 있는데요. 부품 수는 줄었지만, 무거운 배터리 때문에 전기차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무겁게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전기차에 들어가는 각각의 요소를 경량화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죠.
부품의 경량화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소재를 바꿀까요? 맞기도, 아니기도 합니다. 당연히 부품을 만드는 소재를 기존 금속보다 가벼운 소재로 바꾸면 좋죠. 하지만, 이보다 더욱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죠.
3D 프린팅으로 자동차 부품을 만든다고요?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3D 프린팅이라고 하면 플라스틱 필라멘트를 이용해 물건을 찍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그런데 3D 프린팅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분야에서 활발하게 사용하는 기술입니다. 사용할 수 있는 소재도 훨씬 다양해졌죠. 의료 분야에서 바이오 프린팅을 통해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데 활용하고, 식품 업계에서 초콜릿 3D 프린터로 복잡한 모양의 초콜릿이나 젤리, 초밥 등을 만듭니다. 플라스틱 뿐만 아니라 먹거리 세라믹, 티타늄 등도 3D 프린터에 활용하죠. 특히, 3D 프린팅은 설계한 것에 가깝게 만들 수 있어 구조적으로 아주 복잡한 물건도 만들 수 있습니다.
자동차 업계 역시 3D 프린팅 활용 가능성에 주목하고, 일찍부터 산업에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난 2014년, 영국에서 로컬 모터스사가 세계 최초로 3D 프린터로 제작한 자동차 ‘LM3D’를 선보이기도 했죠. LM3D는 탄소섬유와 ABS 혼합 소재를 사용해 만들었는데, 일반 자동차는 2만여 개의 부품을 사용하는 데 비해 단 40개 부품으로 만들어 화제였습니다.
이처럼 3D 프린팅은 예전부터 자동차 산업에서 활용했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디자인 검증과 조립성 검증 등 빠르게 프로토 타입을 생산하고, 이를 테스트하기 위해 사용했다면, 최근에는 컴퓨팅 성능의 발전과 3D 프린팅 기술의 고도화에 힘입어 더욱 다양한 방면으로 쓰임새를 확장하고 있죠.
자동차 업계에서 3D 프린팅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요?
3D 프린팅 기술을 가장 선도적으로 도입한 곳은 포드입니다. 지난 2017년, 포드는 자동차 제조사 중 최초로 3D 프린팅 전문 기업 스트라타시스(Stratasys)와 협력해 3D 프린팅 기술을 응용한 자동차 부품 생산 실험을 진행했는데요. 당시 포드는 부품의 리드 타임 단축, 경량화, 경제적인 시제품 제작 등을 통해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까지 할 수 있다고 예상했죠.
특히, 초기 단계에서 개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3D 프린터를 활용했습니다. 자동차를 개발하는 각 단계에는 수많은 테스트와 평가, 개선 등을 거쳐야 합니다. 과거에는 테스트 부품을 만들기 위해 양산 제품과 비슷한 금형 제작 방식을 활용했는데, 이 방법은 많은 비용과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반면, 3D 프린터를 활용하면 설계 의도를 정확한 형태로 빠르게 제작할 수 있죠..
최근에는 실제 양산 자동차에 3D 프린터로 제작한 부품을 적용하는 데까지 발전했습니다. 지난 2021년, 폭스바겐은 ‘바인더 제팅’(binder jetting) 3D 프린터 기술을 이용해 자동차 부품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는데요. 바인더 제팅은 접착제를 이용해 자동차 구성 부품을 제조하는 것으로, 레이저 장비로 금속 분말을 녹여 만드는 기존 방식보다 생산성과 제조 단가 측면에서 유리합니다.
포르쉐는 시트에 들어가는 일부 부품과 엔진 피스톤을 3D 프린터로 생산하고, 시험 주행까지 마쳤습니다. 시트 중앙 부분의 가장 밑단을 폴리프로필렌으로 구성하고, 그 위에 3D 프린팅으로 제조한 폴리우레탄 소재의 혼합물을 얹어서 만든 시트인데요. 시트의 단단한 정도를 3개 중 선택할 수 있으며, 시트 무게는 이전보다 8% 가볍게 제작할 수 있습니다. 해당 시트는 박스터와 카이엔, 911 등 포르쉐 주요 모델에 탑재합니다. 또한, 911 GT2 RS 모델에 적용한 엔진 피스톤은 독일의 부품 업체 말레(Mahle)와 함께 만듭니다. 금속 블록을 통째로 깎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 금속 가루에 레이저 빔을 쏴 형태를 만드는 3D 기법을 도입했죠. 엔진 실린더의 폭발력을 견딜 수 있는 복잡한 구조물을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으며, 기존 방식 대비 엔진 부하와 무게를 10%까지 줄여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이외에도 모터와 감속기를 보호하는 외장 부품 하우징의 각종 부품부터 시트 사이 수납 공간 센터 콘솔 등의 악세서리까지 다양한 부품을 3D 프린터로 만들고 있습니다. 3D 프린터와 제조용 로봇, 인공지능(AI)를 활용한 지능형 설계를 결합해 생산 시스템을 유연하게 만들어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도 활용하죠. 이처럼 3D 프린팅 기술은 재료부터 생산과정 효율화, 시뮬레이션 단축 및 정교화, 양산제품 제조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과정에서 폭넓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활발하게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은 어디인가요?
BMW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BMW는 지난 1991년부터 시제품 부품을 적층 제조방식으로 생산했는데요. 2010년에는 플라스틱과 금속 소재로 3D 프린팅을 시도해 경주용 자동차의 워터 펌프 휠을 생산했습니다. 또한, 2012년부터 롤스로이스 팬텀, BMW i8 로드스터, 미니 John Cooper Works GP 등의 모델을 위한 양산용 부품을 제작했는데, 각각 최소 4개 이상의 부품을 3D 프린터로 제작했다고 하네요. 2019년 한 해 동안 3D 프린팅 기술로 약 30만 개의 부품을 생산했습니다.
많은 기업이 3D 프린팅 기술을 공개하지 않지만, BMW는 공공연하게 3D 프린팅 기술력과 장비를 적극적으로 공개합니다. 지난 2020년 6월, 독일 바이에른 뮌헨의 오버슐라이쓰하임(Oberschleissheim)에 1,500만 유로(한화 약 2백억 원)를 들여 대규모 3D 프린팅 시설 ‘적층 제조 캠퍼스(Additive Manufacturing Campus)’를 설립했죠. 해당 캠퍼스는 새로운 3D프린팅 기술을 연구하고, 관련 기술을 전 세계에 전수하기 위한 교육을 제공하며, 프로토 타입을 비롯한 연속 부품 생산까지 전반적인 3D 프린팅 업무를 수행합니다. 약 80여 명이 50여 대의 산업용 3D 프린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15명의 파트너로 구성된 프로젝트 컨소시엄이 모여 자동화된 생산라인을 개발하고 테스트를 수행하죠.
지난 2018년, BMW는 자동차 업계에서 최초로 금속 3D 프린팅 부품을 양산해 양산 모델에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BMW i8 로드스터 모델인데요. i8 로드스터는 BMW가 처음으로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동력원으로 사용한 스포츠카인데, 배터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경량화 기술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3D 프린팅 기술이죠. i8 로드스터의 루프 브라켓과 보닛 개폐에 쓰이는 힌지, 윈도우 레일 등은 3D 프린터로 만들어집니다.
i8 로드스터의 접이식 루프는 복잡한 구조에 무거운 부품을 사용하고, 공간을 많이 차지합니다. 특히, 루프 무게를 버티면서 밀고 당기며, 접고 펴기 위해 복잡한 조각 구조를 적용했는데, 이런 구조는 주조로 만들기 어려웠죠. 이에 BMW는 협력사 AMC와 함께 위상 최적화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폴딩하기 위해 필요한 하중의 무게와 공간을 계산하고, 3D 프린팅으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루프 브래킷을 설계했습니다. 새로운 브라켓은 기존 디자인보다 10배 이상 인장강도를 지니면서 무게는 44%나 절감했습니다.
지난 2019년에는 자동차 창문 가이드레일을 출력해 i8 로드스터에 적용했습니다. 특히, 창문 가이드 레일은 제품 개발에서 인쇄 후 자동차에 적용하기까지 5일 밖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요. 기존 플라스틱 재질의 창문 가이드레일보다 가벼우면서 하루 최대 100개까지 출력할 수 있어 제품 개발 시간 단축, 양산 측면에서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얼마나 3D 프린팅을 활용하나요?
아직 해외 선도기업 수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몇몇 기업에서 기술 국산화에 성공하고, 부품을 생산하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 7월에 열린 부산국제모터쇼에서 한국재료연구원이 금속 3D 프린팅 기술로 만든 차체 구조물을 선보였습니다. 알루미늄 합금을 이용한 차체 모듈을 제작했는데, 용접이나 나사 없이 일체형으로 3D 프린팅했기 때문에 기존 80여 개이던 부품을 22개로 간소화했죠. 기존 소재 대비 무게는 30% 이상 줄인 부품으로 관심을 얻었습니다.
메탈쓰리디도 3D 프린팅을 자동차 부품 산업에 적극 접목하는 업체입니다. 타이어 표면에 가로 방향으로 홈을 새기는 ‘사이프’를 생산할 수 있는 3D 프린터를 만들었죠. 또한, 15인치 휠을 금속 3D 프린팅으로 제조했는데, 이 제품을 현대자동차가 아반떼에 장착해 운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라오닉스나 쓰리디솔루션 등이 3D 프린팅 생산 설비 국산화를 위해 연구개발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중에서는 현대모비스가 지난 2002년부터 3D 프린터를 도입해 설계 검증을 위해 사용하고 있고, 한일이화는 자동차 내장재 생산에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국내는 아직 플라스틱 기반 생산으로 초기 시장 수준입니다. 양산보다는 시제품 제작 등 제조 보조 수단 중심으로 활용하고 있어 아쉬운 부분이죠.
3D 프린팅 기술을 자동차 산업에 적용하기 위해 어떤 점을 고민해야 할까요?
전기차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하면서 부품 수는 줄고 있습니다. 더불어 자동차 경량화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하죠. 이에 자동차 부품 업체의 시장 구조도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합니다. 3D 프린팅은 시제품 제작을 위한 다품종 소량생산에서 양산차 적용을 위한 다품종 대량생산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높죠. 때문에 국내 기업도 해외 수준으로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존 부품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수준의 강도를 유지하면서 가볍게 만들기 위한 설계, 시뮬레이션 등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금속 소재 등 소재 다변화를 위한 연구와 공정 방법 연구도 병행해야죠. 디자인 검증과 시제품 생산이 아닌, 양산 단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비용 절감도 이뤄야 합니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는 3D 프린터와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해외에서 생산한 제품을 수입한 것들입니다. 소재인 금속 분말 역시 고가이기 때문에 대량생산에 부담이죠. 소재 관련 기술 국산화를 위한 투자도 필요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우주 로켓부터 인간의 혈관까지 출력하는 3D 프린팅 시대입니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3D 프린팅 기술 도입은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입니다. 특히, 전기차로의 전환은 계속 빨라지는 시점이죠. 부품 제조부터 생산 과정까지 가볍고 효율적으로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3D 프린팅 기술에 주목해야 합니다.
글 / 한국인사이트연구소 김아람 책임연구원
한국인사이트연구소는 시장 환경과 기술, 정책, 소비자 측면에서 체계적인 방법론과 경험을 통해 다양한 민간기업과 공공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컨설팅 전문 기업이다. 모빌리티 사업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모빌리티 DB 구축 및 고도화, 자동차 서비스 신사업 발굴, 자율주행 자동차 동향 연구 등 모빌리티 산업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모빌리티 인사이트 데이’라는 전문 컨퍼런스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모빌리티 전문 리서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모빌리티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정리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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