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8월에 내리는 비는 울 엄마

김주영 기자 2022. 8. 1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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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피아니스트, 음악칼럼니스트

코로나 뒤 처음 맞은 2년 전 여름

오랜 병으로 위독해졌던 어머니

지긋지긋한 비처럼 마음도 우울

돌아가시던 날 모처럼 파란 하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불효자

그곳서 모두 다 잊고 행복하시길

올해 8월은 유독 비가 많이 온다. 날씨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의외로 짧아서 ‘역대급’ ‘기상 관측 사상 최초’라는 표현 등을 아무리 여러 번 해도, 며칠만 해가 쨍하고 뜨면 자기 주변에 큰 피해를 보지 않은 이상은 그냥 잊어버리곤 한다. 가령 2년 전인 2020년 여름을 관통했던 지긋지긋한 비에 대해서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이가 많을 것이다. 당시도 올해만큼이나 놀라운 기록이 있었는데, 두 달 가까이 맑은 하늘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무려 50일 가까이 이어진 비는 큰 피해와 함께 사람들의 기분을 흐린 날씨처럼 우울하게 만들었다.

내 마음도 두껍게 낀 비구름만큼이나 어두웠는데, 오랜 병으로 위독해지셨던 엄마를 병원에서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 맞는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KBS 클래식 FM의 실황중계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었는데, 원래 봄으로 예정돼 있다가 코로나19로 여름으로 미뤄진 ‘교향악 축제’ 방송 때문에 8월 초 거의 매일 예술의전당과 집, 그리고 병원을 오갔다. 중계를 마치고 병원으로 가던 밤길, 여기저기 비로 통제돼 있는 한강 다리들과 건물 사이를 운전해 지나가며 매일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의 OST를 들었다. 2017년에 나온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전편 같은 영화다.

SF 소설가로 히트작을 여럿 남긴 필립 K 딕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블레이드 러너’는 이른바 디스토피아라는 개념을 떠올릴 때 맨 먼저 언급되는 명작이다. 영화 속 미래는 현실에서 이미 지나 버린 2019년인데, 온갖 공해에 찌든 지구에는 종일 해가 비치지 않은 채 그치지 않고 비가 내린다. 올해 5월 타계한 그리스 작곡가 반젤리스가 만든 영화음악을 들으며,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비로 녹아 없어지는 상상을 했다. 어쩌면 그렇게 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약해진 폐로 힘들어했고, 마지막에는 언어장애와 치매 증상까지 겹쳐 많이 고생했던 엄마는 끝내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돌아가시던 날 거짓말같이 파란 하늘이 오랜만에 얼굴을 내밀었고, 그 덕분에 힘든 방역을 뚫고 엄마를 만나러 온 손님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맞을 수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바로 옆자리에 엄마를 쉬게 해드렸던 그날의 하늘도 참 맑고 깨끗했다. 돌아오는 길, 누구나 그렇듯 나도 엄마의 아들로, 집안의 맏이로서의 위치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에 대한 반성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효자 쪽이다. 별다른 이유 없이 싱글로 살면서 손주도 안겨드리지 못했고, 집안에 없는 돌연변이 같은 음악가가 돼 다른 엄마들은 경험하지 않아도 될 특이한 일을 많이 겪게 해드렸다. 투병 기간이 길었기에 부모 자식 간의 진정한 효도라 할 수 있는 살가운 대화를 나눠본 것도 오래전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남은 기억은 엄마의 모교에 가서 함께 무대에 섰던 일이다. 졸업한 동문들이 모여 기수 대항으로 합창대회를 열었는데, 자녀들까지 참가하는 대형 행사였다. 내가 엄마의 기수 합창단 반주를 맡았고, 전체 동문 가운데서 우리 합창단이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그때 참으로 행복해하시던 엄마의 얼굴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듯하다.

세상 엄마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겠지만, 울 엄마의 사랑도 참 특별했다. 어떤 일이든 미리미리 꼼꼼하게 챙기고 완벽하게 준비하는 아버지 때문에 자식 교육에 있어 엄마의 위치는 리더가 아닌, ‘걱정해 주는’ 역할이었다. 생각해 보니 엄마는 늘 그런 식이었다. 과잉보호도, 간섭도 아닌 그냥 걱정. 엄마의 걱정은 자식이 한참 어른이 된 후에도 이어졌는데, 내용은 조금씩 달라 보여도 늘 한 가지였다.

“사람들하고 얘기할 때 되바라져 보이지 않게 조심해라.”

“글을 쓸 때 너무 건방져 보이지 않도록 조심해라.”

“학생들 가르칠 때 아무리 답답해도 너무 심하게 화내지 않도록 조심해라.”

얘기를 듣던 당시에는 나름대로 엄마 말 잘 듣는 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떠올려 보니 엄마가 원하는 만큼 조심성 있게 살았는지 의문이 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효자는 아니었다.

엄마를 보내드리고 난 며칠 후, 영화 한 편이 생각나서 찾아봤다. 임권택 감독의 1996년 작 ‘축제’는 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87세로 세상을 떠난 노모의 장례를 계기로 온 가족이 모여 일어나는 일들이 기둥 줄거리다. 온갖 풍파를 겪고 난 뒤 세상을 하직한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에 ‘축제’라는 이름을 붙여 해석한 내용과 시골 마을의 전통적 장례 모습 등이 인상 깊었다.

그중 영화 속에 들어 있는 작은 에피소드에 눈길이 갔다. 아빠가 어린 딸에게 할머니가 나이가 들고 돌아가시는 과정을 설명해 주는데, 늙어가는 할머니가 점점 몸이 작아지고 어린아이처럼 변해서 결국 마지막에는 순수한 아기의 모습으로 하늘나라로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동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낸 부분은 참으로 특별했다. 영화를 보며 우리 엄마도 저런 모습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지 말라고 해도 나와 동생 걱정 많이 하시겠지만, 여기는 여기대로 ‘조심하며’ 잘 살 테니 그곳에서는 모두 다 잊고 행복하게만 계셨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다음 주면 엄마의 두 번째 기일이 돌아온다. 올해는 날씨가 어떨지 궁금하다. 내게 8월에 내리는 비는 엄마다.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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