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동지들, 앞장서서 집을 삽시다"..그 뒤의 이야기

정영태 기자 입력 2022. 8. 1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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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경기 살리기에 동원된 중국 공무원들

최근 중국에서는 한 지방 정부의 당 간부가 전국적인 화제의 인물이 됐습니다. 후난성 창더시 스먼현이라는 곳의 당 위원회 서기인 덩비보입니다. 8월 16일 열린 부동산 박람회 단상에 올라서더니, 공개적으로 '간부들이 앞장서서 집을 사자'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한 채를 샀으면 두 채를 사고, 두 채를 샀으면 세 채를 사고, 세 채를 샀으면 네 채를 사자"는 그의 발언은 일견 농담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덩비보가 이 발언을 할 때 뒤에 서 있던 한 참가자가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덩비보의 표정은 진지했습니다.

덩비보가 당 서기를 맡고 있는 스먼현은 인구 65만 명으로, 지난해 기준 주거용 건물 완공 면적이 173% 증가했지만 주택 판매는 오히려 20% 감소했습니다. 화제의 발언이 나온 부동산 박람회에서, 당 위원회 서기인 덩비보 본인이 개막선언을 했습니다. 스먼현의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 되는 책임이 덩비보에게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의 발언이 너무나 화제가 되자, 중국 매체들이 스먼현에 전화까지 걸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관심이 부담이 됐는지 "간부들에게 집을 사라고 직접적으로 요구한 게 아니라, 부동산 박람회 현장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발언이었다"는 설명만 내놨습니다. 

그런데 그의 발언이 화제가 된 이후, 다른 지역 공무원들도 부동산 시장 살리기에 동원되고 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중국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안후이성 사현에서는 "많은 공직자들이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해, 실제 주택 구입에 참여하도록 한다"는 공문이 공개됐습니다.


칭다오의 한 지역 회의에서는 '주민들의 주택 마련 촉진'을 간부 직원 평가에 반영한다는 회의 내용이 공개됐습니다. "시 전체의 간부 직원은 규정된 시간 내에 분양 주택 구입 임무를 완수해야 하며 이를 발탁과 임용에 연계한다"는 겁니다.


아예 공무원들이 직접 집을 사게 하는 정책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후베이성 우한에서는 "공공기관의 적격 직원에게 1회에 한해 15만 위안의 주택 구입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정책이 나왔습니다. 15만 위안은 한국 돈으로 3천만 원 정도로, 그냥 주는 것은 아니고 앞으로 5년 동안의 소득에서 공제하는 방식입니다. 공무원을 위한 5년 무이자 대출인 셈입니다.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와 각 지역에서 나오는 독특한 시장 활성화 방법들이 화제가 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지난 6월에는 부동산 개발 회사들의 물물교환식 주택 판매 마케팅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농민들에게 도시에 있는 아파트를 사라고 광고하면서, 수박이나 마늘, 복숭아 같은 농산물과 교환해주겠다고 한 겁니다. 수박 500그램에 10위안, 마늘 500그램에 5위안 식으로 값을 쳐 줄 테니 부동산 구입 대금에 쓰라는 광고입니다.


현지 부동산 관련 매체들은, 이런 현상 이면에 있는 함의를 3가지 정도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중국 경제 성장에는 여전히 부동산 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겁니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 연구소는 중국 GDP에서 아파트·주택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현재 약 11% 정도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부동산 의존 경제성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는 합니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심상치 않자 결국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을 잇따라 내놓을 수밖에 없는 모습입니다.

두 번째, 지방 도시 부동산 시장 침체가 심각하다는 겁니다. 이른바 1,2선 도시로 부르는 대도시와 비교할 때 3,4선 도시들은 산업기반이 충분치 않아 부동산 경제 의존도가 높습니다. 이들 도시들은 원래 부동산 관련 규제가 엄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규제 완화책도 많지 않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방 정부 공무원들이 나서서 집을 사주는 데 앞장서야 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블룸버그는 현재 중국 내에서 중단된 주택 건설 공사 규모를 4조 7천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932조 원으로 추산했습니다.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가 코로나19 봉쇄보다 중국 경제에 더 큰 위협이라는 겁니다.

셋째 과거 20-30년 동안, 부동산 개발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지방정부의 재정을 채우는 단순한 모델이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는 겁니다. 지방정부는 토지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재정 수입을 올릴 수 있었고 경제성장 효과는 바로바로 나타났습니다. 부동산 기업은 똑같은 개발 방식을 복제하듯이 곳곳에 적용해 빠르게 집을 지어 팔아 수익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게 됐다는 겁니다.

한 중국인 친구는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没有屋就不成个家" - "집 없는 집은 집이 아니다"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텐데 앞의 '집'은 주택을, 뒤의 '집'은 가정을 뜻합니다. 중국인들의 부동산 사랑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지금의 경기 침체와는 별개로 과거 20년간 천정부지로 올라온 집값에 고통받는 서민들의 설움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현지 SNS에는 정부가 부동산 시장 살리기에만 매달리느라, 서민들과 청년들이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깨끗하고 안전한 주택 공급은 잊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진=바이두, 웨이보)

정영태 기자jyta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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