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t&Earth | 여름의 능소화, 뜨거울수록 하늘로 높이 뻗는 꽃

2022. 8. 1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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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마찬가지로 또 다시 능소화 계절이 돌아왔다. 요즘 능소화의 화단 범위가 더욱 넓어지면서 가는 곳마다 주황색 물결이 바람을 일으키는 통에, 그냥 지나칠 수 없도록 다시 한번 그 아름다운 꽃 매무새를 공개한다.

능소화의 한자어는 ‘능가할 능凌’에 ‘하늘 소霄’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을 능가하는 꽃’이라는 의미를 지녔는데, 이는 덩굴이 나무에 달라붙어 하늘을 향해 높게 자라나는 특성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기품 있는 자태 덕분에 예로부터 양반들이 이 꽃을 특히 좋아해서 양반집 마당에 많이 심어져 있어 ‘양반 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는 능소화를 심어 잘 가꾼 양반집에서는 과거 시험에 급제하는 일이 많다는 소문이 돌아 특별히 정성을 다 해 키우는 문화까지 생겼었다고 하다. 이 능소화의 신통방통한 소문은 곧 전백성들에게 퍼져, 양반은 물론 평민들도 능소화 심기를 원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 보니 그저 풍문을 떠도는 능소화 과거 급제설을 마치 무속 신앙처럼 믿은 일부 사대부가 중심이 되어 능소화 제배에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평민들은 능소화를 심고 키울 수 없으며, 몰래 키우다 발각되면 곤장형에 처한다’는 내용이 중심이었다. 이런 심통 맞은 조치 때문에 능소화는 양반만 키울 수 있는 꽃이 되었다.

지금도 사찰이나 동네 뒷산에 능소화가 많은 이유는 일반인들이 집에서 키울 수 없게 되자 절에서 능소화를 심어 평민들이 사찰에 오는 길에 능소화를 보며 자식의 장원 급제를 기원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 그 연원이다. 뒷산의 능소화 역시 평민들이 심은 것들로, ‘내 집이려니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키우면 그게 우리 복이 되는 것이지’라는 재치가 발동한 것이다. 능소화를 이렇게 열심히 심어 과거에 급제했다는 기록은 물론 없지만, 그런 저런 이유로 능소화는 전국을 덮은 꽃이 되었고, 지금은 과거니 공무원시험 따위와 관계없이 따뜻한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사찰 담장이나 가정집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관상수가 되었다.

능소화가 이름처럼 하늘 높게 뻗어 나갈 수 있는 건 줄기 마디에 생기는 흡착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줄기는 벽이나 다른 물체를 지지하고 타고 오르며 그 길이는 10m에 달한다. 가지 끝에서는 트럼펫처럼 생긴 진한 주황색 꽃이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흥미로운 것이 서양에서는 트럼펫처럼 생긴 능소화의 꽃 모양에 기인해 이름을 Chinese trumpet vine이라고 지은 반면, 동양에서는 꽃이 높게 자라나는 특성에 주목해서 능소화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점이다.

옛 선비들은 능소화 꽃이 질 때 송이째 품위 있게 떨어지는 것을 보고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능소화는 조선시대의 과거시험 장원급제자에게 임금이 관모에 꽂아주는 어사화로 쓰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와 ‘영광’이다. 능소화의 또 다른 꽃말도 있다. ‘그리움’과 ‘기다림’이다. 여기에는 슬픈 이야기가 서려 있다. 옛날 어느 궁궐에 ‘소화’라는 궁녀가 왕의 눈에 들어 하룻밤 사랑을 나누고 처소까지 마련되었다. 하지만 궁녀들의 암투로 다시는 왕이 소화를 찾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오매불망 왕을 기다리던 소화는 죽고 마는데, 왕이 지나다니는 길목 담장 밑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자리에 곧 아름다운 꽃이 피었고, 소화의 친구들은 그 꽃의 이름에 소화의 이름을 붙여 능소화라 했다고 한다.

능소화 관련 팁 하나. 능소화 꽃가루에 독성이 있어 해로우니 너무 가까이는 가지 말라는 설이 있었는데, 국립 수목원에서 연구한 결과 능소화에는 독성이 거의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마음 푹 놓고 활짝 핀 능소화에 가까이 다가가 함께 사진도 찍고 꽃도 감상하며 잠시나마 마음의 위로를 얻길 바란다.

[글 김민정 사진 위키미디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43호 (22.08.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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