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으로 간 해녀..그 설움의 물질을 기록하다

송영규 선임기자 2022. 8.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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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해녀' 동화책 출간 앞둔 작가 김여나 씨
최고령 출향해녀 김복례 할머니
"내 얘기 전해달라" 부탁에 출간
글쓰기 위해 직접 물질 뛰어들어
"해녀야말로 바다 지키는 파수꾼"
생존한 최고령 출향해녀 김복례 할머니가 김여나 작가의 손을 꼭 쥐고 있다. 할머니가 덮은 이불 위에는 20일 출간 예정인 동화책 ‘나는 해녀입니다’의 초고가 올려져 있다.
[서울경제]

“모두 다 해줘서 고맙다. 진짜 고맙다.”

힘없이 누워 있던 96세 김복례 할머니의 입에서 연신 ‘고맙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옆에는 예쁜 해녀 그림들이 놓여 있었다. 20일 출간 예정인 동화책 ‘나는 해녀입니다’의 초고다. 13세 때 차디찬 바다에서 오들오들 떨며 처음 물질을 배우던 일, 병든 세 살 아들을 살리기 위해 정든 고향 제주를 등지고 육지로 나왔을 때의 막막함, 타향살이의 외로움 등 1세대 최고령 ‘출향해녀’의 한과 설움·기쁨이 이 동화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 ‘내 얘기를 꼭 후대에 전하고 싶다’는 김 할머니의 평생 염원이 현실로 이뤄지기 직전이다. 출향해녀란 제주를 떠나 내륙에서 살고 있는 해녀를 말한다.

출향해녀의 곁에는 소원을 이뤄준 동화 작가 김여나(50) 씨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김 작가는 2018년 부산아동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이름을 올린 4년 차 작가다. 해녀와는 떨어질 수 없는 인연으로 묶여 있다. 부산 기장에서만 30년째 살았고 시어머니도 해녀다. 출향해녀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18개 갯마을에서 물질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김 할머니와의 만남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동화 작가 김여나 씨. 사진 제공=김여나 작가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난 김 작가는 김 할머니와의 인연이 3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기장군에서 1세대 귀향 해녀에 대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해녀 6명을 취재하고 있을 때였다. “20일의 일정을 마친 마지막 날 신암마을에 살고 계시던 김 할머니가 저를 붙잡고 말씀하시더군요. ‘글만 쓸 줄 알면 내가 책을 만들어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큰소리로 대답했죠. 제가 만들어 드리겠다고. 곧 바로 군보 편집장이자 사진 작가인 황현일 씨와 김정자 신암마을 해녀 회장과 협의를 했고 한 달도 안 돼 독립 출판 형태로 자서전을 펴냈습니다.” 최고령 출향해녀의 이야기를 담은 ‘김복례 자서전’은 이렇게 등장했다. 18개월 후에는 6명 출향해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나는 해녀다’도 나왔다.

김여나 작가가 해녀복을 입고 물질을 한 후 태왁을 잡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김여나 작가

기장에서 김 작가는 ‘해녀의 딸’로 통한다. 시어머니가 해녀라는 점도 있었지만 해녀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노력도 그만큼 많이 한 결과다. 실제로 그는 해녀를 찾아다니는 동안 한 달에 꼬박 20일을 머무르며 그들과 함께했고 원고료가 나오는 날이면 케이크를 사 들고 일일이 찾아가기도 했다. 그는 “마을에 종일 있다 보니 어머님들이 저를 공무원인 줄 알더라”며 “이후에 작가가 아닌 딸로 품어주는 분들이 많아졌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가 출향해녀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해녀 하면 대부분 물질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 바라보는 시각도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존재’ 정도에 머물러 있다. 엄마로서, 여성으로서 그들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김 작가는 “1세대 귀향 해녀들이 평생 물속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지만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허전함도 있다”며 “이들에게 ‘당신은 평생 동안 잘 살아 왔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자가면역질환을 앓으면서도, 생각지도 못한 이혼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해녀들에게 매달린 이유다.

김여나(왼쪽) 작가가 부산광역시 기장군 해녀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해녀를 바다에서 소라나 해삼·멍게만 잡는 존재로만 여기는 것도 싫었다. 해산물이 존재하려면 해초도 잘 살아야 한다. 물질이 끝나면 각자가 맡은 바닷속 구역에서 돌을 다져주거나 바위를 청소하는 일을 하는 이유다. 김 작가는 “해녀만큼 바다 깊숙이 자리한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없다”며 “이들이야말로 바다를 지키는 파수꾼이자 일등 애국자”라고 강조했다.

김 작가는 이번 동화책에 대해 자부심이 크다. 해녀와 관련한 그림책은 많지만 출향해녀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출향해녀들은 고향을 떠나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곳에서 편견·외로움과 싸우며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육지 해녀들의 스승이 돼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며 살았습니다. 지금 생존해 계신 해녀 어머니들께 선한 울림이 이어지기 바랍니다.”

송영규 선임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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