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소년 나팔수 김영한

임양수 화가·시인 2022. 8.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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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전공원 광장에는 '역사는 애국심의 원천'이라는 그의 명언과 함께 대전의 인물,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선생의 동상이 공원을 향해 지켜보고 서 있다.

1974년 충남 서예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회장을 역임했고 대전미협 활동에서 한국화 장르인 사군자 및 칠게를 그려 출품하는 등 구순 노구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한국미술협회 서재흥(17대) 이영우(18대) 대전 지회장은 그를 상석에 모시며 예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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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양수 화가·시인

서대전공원 광장에는 '역사는 애국심의 원천'이라는 그의 명언과 함께 대전의 인물,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선생의 동상이 공원을 향해 지켜보고 서 있다.

'노인 하나가 죽는 것은 박물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라는 말은 대전의 사학자인 춘강(春岡) 김영한(金英漢,1920-2018) 선생을 두고 한 말인듯 싶다. 지난 2017년에 대전의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향토사학계의 거목인 '김영한 특별전'이 있었다. 구 도청사, 대전 근현대전시장 입구에는 허름한 제복에 '소년 나팔수 김영한'의 모형 사진이 관객을 맞이한다.

'사람의 역사, 역사 속에 사람'을 재조명하는 전시회를 보며 격동기의 한 세기를 풍미해 온 그의 인생 여정의 흔적을 재조명해 본다. 그는 1920년 충남 논산군 광석면 태생으로 일제 치하의 잘 조련된 순진무구의 소년 나팔수 김영한을 떠올린다.

그 후 21세 청년 김영한은 충남 도청의 서기 생활로 시작해 지방사무관까지 올라 문화재 발굴 및 향토 사학의 길을 걷는다. 성실한 성품으로 생활의 흔적들을 보존하고 열정적으로 수집해오던 그는 정년 후에는 대전시 문화재 향토사연구회를 창립했다.

그가 사용하던 일제 치하의 주민증, 각종 증명서, 서류, 책, 사진 등을 모두 시 문화재 관리청에 기증했다. 대전시의 유형문화재와 2만여 점의 동산 문화재 상당수가 선생이 수집, 발굴한 것이며 고문헌과 도서 2만여 점을 후학들을 위해 충남대와 한밭교육박물관에 기증했다. 그 자료들이 오늘에 이르러 대전의 근현대사의 소중한 문화재로 되살아 난 것이다.

이러한 공적들이 힘이 되어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고 2011년 대전MBC의 '한빛 대상'을 수상했다. 1974년 충남 서예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회장을 역임했고 대전미협 활동에서 한국화 장르인 사군자 및 칠게를 그려 출품하는 등 구순 노구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한국미술협회 서재흥(17대) 이영우(18대) 대전 지회장은 그를 상석에 모시며 예우했다. '웃음은, 고통을 꽃으로 승화시키는 절대적 매개체'라고 하던가! 그는 묵언으로 빙그레 웃음 한 가닥으로 그 예에 답했다.

대전시립박물관에 가면 김영한 선생의 기증 정신을 느낄 수 있다. 학벌 좋고 말 잘하며 이목구비 반듯함이 다는 아니듯, 심신으로 잘 다듬어진 그의 건강한 향토 사랑이 잘 남으로 여겨진다. 사후 4년여, 그를 다시 떠올리자니 소소함과 평범함을 떠나서 그의 열정과 행적이 크고 훌륭하시다. 그를 생각하면 대전 미술의 아카이빙(Archiving) 정신이 솟아난다. 필자도 오랜 세월 몸담아왔던 대전 미술의 자료들을 재정리해 기증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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