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전쟁과 트랙터

2022. 8. 19.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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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

그런데 외신을 통해 현지에서 날아오는 영상 중에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러시아군이 버리고 간 전차들을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트랙터로 끌고 가는 모습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각국은 트랙터라는 운송 수단에 포탑을 얹어 전차를 만들어냈다.

트랙터 역시 순수하게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기계였지만, 전쟁의 화신 같은 전차의 토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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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 이에 따른 세계적인 변화가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 가운데 하나는 우리나라가 생산하고 있는 K-2 흑표 전차 수백대가 폴란드에 판매된다는 것이다. 이는 폴란드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전차를 우크라이나에 공여했기 때문이다. 비단 폴란드뿐 아니라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한 여러 나라는 육상전투에서 한물갔다고 평가됐던 전차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로 확인되면서 긴급하게 물량을 찾고 있다.

그런데 외신을 통해 현지에서 날아오는 영상 중에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러시아군이 버리고 간 전차들을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트랙터로 끌고 가는 모습이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전차에 대한 농민들의 소유권을 인정해주고 세금까지 면제해주고 있다. 농민들은 이 전차에서 무기나 첨단장비는 떼어내 정부에 매각하고 몸체는 분리해 고철로 판매하고 있다. 여하튼 트랙터로 전차를 끌고 가는 장면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왜냐하면 트랙터와 전차는 형제지간 같은 기계였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전선에서 나치 독일의 기갑부대에 맞섰던 소련의 T-34가 유명하다. 제식 명칭 가운데 34는 1934년에 설계됐다는 의미고, T는 탱크가 아니라 트랙터 머리글자다. 전차 자체가 트랙터의 파생물이란 뜻이다.

트랙터는 산업혁명과 농업 생산성 향상이라는 기대가 결합한 혁신적인 기계였다. 소와 말 없이 엄청난 일을 수행하는 트랙터는 그 능력을 일찍 검증받았으나, 기계 제작의 한계로 19세기말까지 보급은 미미했다. 그러던 1904년 미국인 벤저민 홀트가 캐터필러라 불리는 무한궤도를 장착한 트랙터를 발명하면서 지형에 구애받지 않는 전천후 트랙터를 선보인다. 이어 트랙터 생산에 포드 같은 자동차회사까지 뛰어들어 폭발적인 생산과 보급을 하자 농업혁명이 시작됐다. 특히 소련을 탄생시킨 레닌은 비옥하지만 소농으로 제한적인 생산을 유지하던 광대한 볼가강 유역을 트랙터로 개간하려 했다. 소련은 미국 포드사에서 트랙터 수만대를 도입했고, 곧 자체적으로 트랙터를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캐터필러를 장착한 트랙터는 곧 군사용 무기로 전용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각국은 트랙터라는 운송 수단에 포탑을 얹어 전차를 만들어냈다. 나치 독일은 당시로서는 첨단의 3호·4호 전차를 앞세워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오늘날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쳐들어갔다. 히틀러는 들판으로 몰려나오는 수만대의 T라는 이름의 소련 전차에 경악했다. 슬라브인들을 인간 이하로 치부하던 히틀러는 소련이 그 많은 전차를 만들 것이라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 소련제 전차들은 모두 트랙터 공장에서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생명을 살리는 농업과 생명을 죽이는 전쟁은 가끔 역사적으로 겹친다. 비료는 화약으로 전용되고, 독가스 기술은 농약이 됐다. 트랙터 역시 순수하게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기계였지만, 전쟁의 화신 같은 전차의 토대가 됐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흑토에서 농산물이 제때 자라지 못하고 그나마 거둬들인 것도 제때 수출을 못해 전세계적인 농산물가격 폭등을 일으키고 있다. 전차란 것은 원래 인간이 탈 것이 못 된다. 인간은 생명을 살리고 키우는 트랙터에 타야 한다.

이상엽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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