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엄마는 죽었지만 잘 지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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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영어강사 레다는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서 두 딸을 키우다가 딸들을 캐나다에 사는 남편에게 보내고 해변으로 여름휴가를 떠난다.
한적했던 바닷가에 요란하기 짝이 없는 나폴리의 대가족이 몰려오면서 레다의 휴식을 방해하기 시작하는데, 그중 유독 레다의 시선과 마음을 잡아끄는 존재는 아름다운 젊은 엄마 니나와 니나의 딸 엘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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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사랑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l 한길사(2019)
대학교 영어강사 레다는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서 두 딸을 키우다가 딸들을 캐나다에 사는 남편에게 보내고 해변으로 여름휴가를 떠난다. 한적했던 바닷가에 요란하기 짝이 없는 나폴리의 대가족이 몰려오면서 레다의 휴식을 방해하기 시작하는데, 그중 유독 레다의 시선과 마음을 잡아끄는 존재는 아름다운 젊은 엄마 니나와 니나의 딸 엘레나다. 레다는 인형 놀이에 흠뻑 빠진 두 모녀를 홀린 듯이 바라보다가 그리 아름답지 않은 자신과 두 딸의 관계를 떠올리며 끈끈한 모녀 관계를 이룬 것처럼 보이는 니나에게 질투 섞인 부러움을 느낀다.
레다는 모래밭에서 어린 엘레나가 가지고 놀던 인형을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인형을 훔쳐 숙소로 돌아간다. 다음날 인형을 잃어버린 엘레나가 발작적으로 울음을 터뜨리며 니나를 힘들게 하고 나폴리의 대가족이 동원되어 절박하게 엘레나의 인형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고서도 레다는 훔친 인형을 돌려주지 않는다. 인형은 레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켜켜이 쌓여 있던 온갖 복잡한 감정들을 휘저어놓고 어두운 기억의 그림자는 유령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와 레다의 발목을 붙든다. 어린 레다에게 인형은 흔히들 생각하는 모성의 연습 대상이 아니라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았던 어머니의 대체물이었다. 젊은 엄마였던 레다는 자신의 소중한 인형을 함부로 대하는 어린 딸에게 분노하며 아이 손에서 인형을 빼앗아 집 밖 아스팔트 도로로 던져버린다. 젊은 레다와 어린 딸은 발코니 너머로 인형의 폭력적인 죽음을 목격하고 만다. 이렇듯 소설 곳곳에서 인형은 상호적이 되지 못하고 자꾸만 어긋나는 모녀 관계의 다양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레다가 인형을 훔쳐 갔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니나는 지적이고 세련된 레다에게 호감을 느끼고 어느새 둘은 유사 모녀 관계처럼 가까워진다. 레다는 니나에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만 같아 3년 간 어린 딸들 곁을 떠났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들이 없으니 기분이 어땠냐고 묻는 니나에게 레다는 ‘온몸이 산산조각 나서 충만함에 가득 차 자유롭게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가는 것처럼’ 좋았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3년 후 딸들에게 돌아간 이유도 딸들을 떠났던 이유와 똑같이 ‘나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잃어버린 사랑>은 이탈리아 나폴리 출생의 세계적인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나쁜 사랑 3부작’의 세 번째 소설이다. 페란테는 ‘비뚤어진 어머니’ 레다를 통해 모성에 대한 세상의 흔한 오해와 선입견을 통렬히 부숴버린다. 페란테가 그린 레다는 대단히 비틀리고 자기중심적인 어머니고 어린 엘레나는 아름다운 엄마를 망가뜨리는 섬뜩한 꼬마 악마다. 뜻밖의 폭력이 강타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겨우 연락이 닿은 딸들이 왜 전화를 하지 않았냐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정도는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농담 섞인 안부를 건넬 때 레다는 복받치는 감정을 느끼며 대답한다. “엄마는 죽었지만 잘 지낸단다.” 이 오싹한 대답은 세상의 어머니들은 스스로 엄마 됨을 죽여야만 겨우 잘 지낼 수 있지 않겠냐는 서늘한 반문으로도 읽힌다.
이주혜/소설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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