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을] 수거되는 기억들 - 김윤배

한겨레 2022. 8. 1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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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다사요’는 기억을 수거해가는 일인 회사다 오래된 책들의 낡은 지식과 시집 원고들의 진부해진 의미, 신지 않는 구두들의 뒤엉킨 길과 입지 않는 옷가지들의 포즈, 쓰지 않는 모자들의 바람기가 수거 대상이다 버려야 할 기억들은 지천이다

건장한 사내가 몇 시간을 실어 내간 기억의 흔적들은 가볍고 저렴했다

기억에 대한 자책은 칼날이다 기억은 조악한 문양처럼 어긋나거나 흐려져 있다 기억은 칼날이 긋고 지나간 칼집이다 어느 칼집을 열어도 기억은 흐린 눈동자를 굴리고 있어 아리고 추했다 칼집은 나를 향한 질책이다 기억은 시간을 건너며 상처를 헤집는다

-시집 <그녀들의 루즈는 소음기가 장착된 피스톨이다>(문학세계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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