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우리는 어딘가로 쏘아진 시간의 화살 위에 있다
"시간은 환상" 물리학계 주장 비판
"부분 이론으로 우주 설명 못해..
법칙들이 시간 속에서 진화" 제시
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
실재하는 시간을 찾아 떠나는 물리학의 모험
리 스몰린 지음, 강형구 옮김 l 김영사 l 2만4800원
양자이론에서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현대 물리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이란 것이 실재가 아니라 환상과 같은 것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쌤앤파커스)를 쓴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를 비롯해 “시간은 환상”이라는 물리학자들의 주장은 현대 물리학계에서도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로벨리와 함께 고리양자중력 연구를 이끈 이론물리학자 리 스몰린(65)은 이런 주장들에 맞서 “시간은 실재한다”고 주장하며, 시간을 중심에 놓는 나름의 우주론을 주창해온 학자다. 그가 2013년에 내놓은 <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은 시간을 추방시킨 현대 물리학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한편 “양자이론을 공간, 시간, 중력, 우주론과 궁극적으로 통합하는 데 시간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그는 브라질 출신 법철학자 로베르토 망가베이라 웅거(75)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두 사람은 공동 연구를 통해 <하나뿐인 우주와 시간의 실재성>(2014)이란 책을 함께 펴내기도 했다.
일반 대중들이 느끼는 방식과는 다르게, 물리학계에서는 시간의 존재가 환상이라는 주장을 매우 강력한 이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선 지은이는 물리학에서 시간이 추방당해온 과정을 아홉 가지 단계로 상세하게 톺아본다. “뉴턴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과학 이론들의 성공은 뉴턴이 발명한 특수한 틀을 사용함으로써 가능”했는데, 그 중심에는 사물의 운동과 상호작용이 비시간적인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는 관점이 있다. 뉴턴적 패러다임은 어떤 계(system)를 ‘초기 조건’(가능한 배열들)과 ‘운동 법칙’(힘과 힘의 영향)을 가지고 탐구하는 것인데, 이때 시간이 제거된 추상적인 공간(배위공간)에서 변하지 않을 법칙을 다루는 것은 비록 실제 세계의 ‘근사’(近似)를 다루는 것이지만 이를 실제 세계와 대응한다고 여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시간이 더 참되고 비시간적인 우주를 가리는 일종의 환상이라는 주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논증을 제시한다.” 상대성이론은 ‘동시성’이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는 것을 밝혀 시간의 실재를 더욱 의문에 부쳤고, ‘시공간’으로 시간과 공간을 결합함으로써 우주의 역사를 인과적 관계들로 연결된 사건들의 단일한 체계로 바라보는 ‘블록우주’ 모형을 강화했다.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이론을 결합하려 시도한 ‘양자우주론’에 이르면, 우주가 얼어붙은 순간들의 광대한 집합체이며 비가역적인 시간의 흐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까지 제시된다.
지은이는 이런 논증들이 “실재하는 것은 오직 단일체로서의 세계가 갖는 전체 역사라고 보는 블록우주 모형을 통해 자연을 이야기한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임의의 계에 대해 그 계의 초기 조건 및 그 계에 작동하는 법칙으로부터 그 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뉴턴적 패러다임을 우주 전체 이론을 만드는 것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보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우주는 우주의 부분들과는 그 종류가 다른 무엇으로, 단순히 부분들의 합이 아니다. 우주 속 사물들의 모든 속성은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 혹은 상호작용을 통해 이해할 수 있지만, 하나밖에 없으며 그 외부가 없는 우주의 속성은 그런 이론들로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부분을 설명하는 이론을 우주로 확대하려고 하는 것을 ‘우주론적 오류’라 부르고, 이런 문제를 극복할 새로운 우주론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이 새로운 우주론의 중심에 물리학이 추방해온 시간을 다시 불러온다. 책의 원제가 ‘다시 태어난 시간’(Time Reborn)인 이유다. 지은이는 군집생물학의 방법론에 영향을 받아 우주가 블랙홀 안에 새로운 우주를 창조함으로써 번식한다는 ‘우주론적 자연선택’ 가설을 제시한 바 있다. 마치 생물학에서의 유전자처럼, 이 가설에서 자연법칙들은 우주의 형성기에 선택되어 시간 속에서 발현되고 진화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주론의 진보를 위해 물리학은 법칙들이 비시간적이고 영원하다는 개념을 버리고, 그 대신 법칙들이 실재하는 시간 속에서 진화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여야 한다.” 초기 조건과 법칙을 입력값으로 따지는 방법론은 우주론에 어떤 대답도 가져오지 못하며,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우주론은 시간의 실재성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우주 속에서 서로 구분이 불가능하면서도 분리되어 있는 두 개의 대상이 존재할 수 없다”는 라이프니츠의 ‘식별 불가능자의 동일성’ 원리 등을 끌어와, “우리 우주는 모든 순간과 모든 순간에서의 모든 장소가 다른 것들로부터 유일하게 구분되는 우주”라 말한다. 결코 되돌릴 수 없는, 한 방향으로 쏘아진 시간의 화살은 엄연히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시간의 실재성과 이를 관통하는 진화만이 이토록 새롭고 복잡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조직화해온 우주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다고 지은이는 역설한다.
물론 지은이의 가설이 모든 것을 설명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칙의 진화 과정을 통제하는 ‘메타법칙’ 등에 대한 설명 등 더 나아간 이론도 필요하다. 다만 “진리이기를 원하는 모든 것이 진리일 수 있는 상대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시대에 더 급진적인 길을 내고자 하는 과학자의 열망이 뜨겁다. 지은이는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시간은 환상이고 미래는 고정되어 있다고 가르치는 문명은 정치 조직, 기술, 자연의 작용을 아우르는 공동체를 발명할 수 있는 상상력 넘치는 힘을 소환하기 어려울” 것이라 지적한다. 시간의 실재성이라는 주제로 지은이가 강조하는 것은 ‘관계주의’다. “관계주의에 따르면 미래는 현재에 의해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약되며, 따라서 새로움과 발명이 가능해진다. 이는 비시간적이고 절대적인 완벽함으로의 초월이라는 잘못된 희망을 인간 행위자의 영역이 끊임없이 확장되는 진정으로 희망적인 관점으로 대체할 것이며, 이러한 새로운 관점에서 우주의 미래는 열려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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