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불안의 시대를 건너는 법

한겨레 2022. 8. 1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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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의 허상을 까발리고 그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한 빼어난 책으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과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 를 꼽을 수 있다.

마치 박권일이 다원적인 정의 원칙으로 대안을 제시했듯, 러스킨이 말한 "친절, 호기심, 감수성, 겸손, 경건, 지성"도 가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문화혁명'이 일어날 때 비로소 능력주의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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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우의 인문산책]이권우의 인문산책

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2011)

능력주의의 허상을 까발리고 그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한 빼어난 책으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과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를 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앞의 책에서는 우연을, 뒤의 책에서는 불안이라는 낱말을 인상 깊게 보았다. 샌델은 한 개인의 성공이 그의 재능과 노력 덕이기보다는 다양한 층위에서 발생한 운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박권일은 이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능력주의 사회의 성공은 진입장벽을 높인 사회적 봉쇄와 기회비축의 결과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내가 박권일의 책에서 주목했던 구절은 “한국인은 사회의 전반적 수준에 비해 여전히 물질적 가치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늘 불안에 떤다”는 대목이다. 여기서 지적한 불안은 능력주의자가 사로잡힌 ‘지위 불안’을 가리킨다. 아쉬웠던 부분은 박권일이 이 부분을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능력주의가, 박권일의 빼어난 비유대로, 시효를 다한 ‘정신적 화석연료’라면, (하부)구조 개선책을 제시하는 데만 머물지 않고 이른바 상부구조를 흔들 대안도 마련해야 하지 않았나 싶었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은 그런 점에서 읽어볼 만하다. 지은이는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지위 불안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지은이는 이 불안의 원인으로 사랑 결핍, 속물근성, 기대, 불확실성을 꼽는데, 최종적인 원인으로 능력주의를 내세운다. 왜 아니겠는가. 불안은 “야망의 하녀”다. 변덕스러운 세상에서 능력으로 지위와 부를 얻으려다 실패하면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달라붙는 세상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지은이는 능력주의 시대의 지위 불안에서 벗어나는 ‘인문적’ 해법을 제시한다.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라는 열쇳말로 능력주의라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 보이는데, 비극을 설명한 대목이 그 ‘눈’이다. 불안은 “패배자라는 말은 졌다는 의미와 더불어 졌기 때문에 공감을 얻을 권리도 상실했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는”지라 발생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런데 위대한 실패를 이야기하면서도 조롱하거나 심판하지 않고 외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장르가 있는데, 그게 바로 비극이다. 주인공은 대체로 판단을 잘못하거나 일시적인 맹목, 그리고 감정적 과실 탓에 큰 실수를 저지르고 그 결과로 운의 역전이 일어나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이야기를 보며 관객은 언젠가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을 맞이하면 “자신의 삶도 쉽게 박살나”고 말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통받는 불행한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수치스럽고 비참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실패한 삶에 대한 공감과 자신의 실패 가능성에 대한 동의는 능력주의가 일으킨 불안을 잠재우는 묘약이다.

지은이의 지적대로 “지위에 대한 불안은 결국 우리가 따르는 가치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니, 대안적 삶의 가치를 함께 논의하는 것도 능력주의에 맞서는 중요한 삶의 태도다. 마치 박권일이 다원적인 정의 원칙으로 대안을 제시했듯, 러스킨이 말한 “친절, 호기심, 감수성, 겸손, 경건, 지성”도 가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문화혁명’이 일어날 때 비로소 능력주의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다.

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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