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하의 대중문화평론] 고사성어에서 시작된 뜻밖의 나비효과

유강하 2022. 8. 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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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말복이 지날 때까지 매해 연중행사처럼 치르던 토론이 눈에 띄지 않았다.

개고기에 대한 주의를 환기한 건 뜻밖에도 한 정치인이 인용한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사자성어 때문이었다.

자신의 처지를 두고 말하면서,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뒤에서는 개고기를 판다는 고사성어를 인용한 것인데, 이것은 누가 개고기냐, 개고기인 줄 알면서 팔았냐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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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류에 대한 인류의 깊은 관심·밀접성 다시 생각해 본 시간
최근 정치권서 소환한 '양두구육' 실시간 검색어까지
'현우수매마육'과 똑같이 표리부동 비판하려 쓰인 말
육류 섭취 오랜 역사, 집약축산 과정 거치며 환경훼손
새삼 듣게 된 고사성어에서 우리 삶의 성찰·고민을

올해는 말복이 지날 때까지 매해 연중행사처럼 치르던 토론이 눈에 띄지 않았다. 여름만 되면 빼놓을 수 없었던 ‘개고기 식용 찬반 토론’이 그것이다. 그런데 개고기는 ‘구육(狗肉)’으로 다시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개고기에 대한 주의를 환기한 건 뜻밖에도 한 정치인이 인용한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사자성어 때문이었다.

자신의 처지를 두고 말하면서,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뒤에서는 개고기를 판다는 고사성어를 인용한 것인데, 이것은 누가 개고기냐, 개고기인 줄 알면서 팔았냐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저 멀리, 중국의 춘추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비로소 어원을 찾을 수 있는 이 고사성어는 급기야 실시간 검색어까지 올랐다. 정치적으로 바르지 않음을 비판하고자 쓰였던 고사성어니, 이 단어를 정치권에서 다시 소환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한 논평은 차고 넘치니, 여기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일 생각은 없다.

다만 삼계탕 먹고 힘내시라는 인사를 주고받았던 세번의 복날을 떠올리며, 춘추시대에도 설득될 법한 예시로 사용되었던 ‘고기’의 비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양두구육’은 “소의 머리를 걸어두고 말고기를 판다(懸牛首賣馬肉)는 ‘안자춘추(晏子春秋)’의 비유가 훗날 변형을 거쳐 사용된 것이다. 소에서 양으로, 말에서 개로 사소한 변화가 있었지만, 똑같이 표리부동하다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쓰인 것이고, 이 비유에는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문화적인 맥락이 담겨 있다. 대체 안자는 무슨 생각으로 고기에 빗대어 말했던 것일까.

궁금증과 생각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니, 궁금증은 춘추시대가 아니라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인간은 생존을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동물에 맞서야 했었고, 생존을 위해 경쟁해야 했으며, 다시 한참을 지나서야 자연계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인간과 동물 사이의 우열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는데, 그 가운데 혁명적인 변화 가운데 하나가 음식문화다.

음식물의 섭취를 통해서 비로소 생존할 수 있는 인간의 취약한 구조는 자연스럽게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구별을 낳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맛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차이를 만들어냈다. 먹어도 되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종교적 금기는 일부 종교의 핵심 교리와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구별과 차이, 금기는 대체로 식물이 아니라 동물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육류에 대한 인류의 깊은 관심 인류와의 밀접성을 보여준다. 고기에 빗댄 안자의 비유, ‘양두구육’ 표현이 우리 사회에서 와글와글한 논쟁이 되었던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인류가 육류를 음식물로 섭취하는 것은 역사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육류의 범위도 넓다. 2500년 전의 중국에서 안자가 언급했던 소, 말 외에도 염소, 원숭이, 거위, 토끼, 노루, 순록, 엘크, 에뮤, 낙타 등은 모두 인류가 ‘고기’로 소비해왔고, 소비하는 동물들이다.(장애라 외 ‘고기의 역사’, 82-83)

오랫동안 인류의 친구였거나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동물들도 예외가 아니다. 먹을 것을 통해 몸은 에너지를 얻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고, 육류를 먹을 것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는 경향이 여전히 지배적이라면, 논의는 좀 더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동물이 육류가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더 큰 문제도 있다. 더 많은 육류를 생산하기 위해 곡물의 사료화, 곡물 생산 증가를 위한 산림의 경작지화, 가축 방목을 위한 초지화, 경작지의 초지화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집약 축산으로 요약되는 이러한 현상은 지구환경을 훼손하고, 인간과 동물의 복지를 악화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고기의 역사’, 116) 여기에서 파생된 문제는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른 미래가 온다고 하더라도 오래전부터 이어진 인간의 유전체는 여전히 큰 변화가 없을 테고, 음식을 섭취하여 에너지를 얻는 인간의 존재 양태도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채식이든 육식이든 상관없지만, 그 다름의 ‘장’(場)에서 비난보다 생산적 논의와 비판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낯선 고사성어에서 시작된 뜻밖의 나비효과. 현재 인간의 삶의 조건에 대한 성찰과 미래 인류를 위한 고민, 그리고 진지한 논의를 위한 트리거가 되면 좋겠다.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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