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대한극장

김태훈 논설위원 2022. 8. 19.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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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서울 충무로에 등장한 대한극장엔 창문이 없었다. 영화 볼 때 빛의 방해를 받지 않도록 설계한 대한민국 1호 ‘무창(無窓) 영화관’이었다. 성능 좋은 공기 정화 시설을 갖춘 덕분이었다. 70㎜ 필름 영화를 소화할 수 있는 대형 와이드 스크린도 이 극장밖에 없었다. 알프스의 드넓은 초원에서 ‘도레미송’을 부르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벤허’의 전차 경주 장면에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대한극장은 오늘날로 치면 3D 화면과 좌석 진동 장치까지 갖춘 첨단 멀티플렉스였다.

▶이후 대한극장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닥터 지바고’ 등 대작 상영관으로 명성을 날렸다. 3개월 장기 흥행작이 속출했고 ‘벤허’는 6개월이나 스크린을 차지했다. 1970년대 극장 애니메이션 붐도 이끌었다. ‘로보트태권V’와 ‘철인007′을 보려고 어린이 관객 수십만명이 이 극장을 찾았다. 많은 이가 그 시절 대한극장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기억한다. 매표소에서 시작해 극장을 한 바퀴 돌아 한국의집까지 수백m 이어지곤 했다.

▶대한극장은 ‘로보캅’ ‘백 투 더 퓨처’ 등이 흥행하며 1985년부터 8년 연속 관객 동원 1위를 기록했다. 혼자만 영화를 누린 것도 아니다. 단성사·서울·명보·중앙·스카라·국도·피카디리·아세아·허리우드도 ‘10대 극장’으로 꼽히며 잘나갔다. 방학 때면 학생들도 가세해 조조할인 표마저 구하기 힘들었다. 극장 앞엔 암표상이 들끓었다. 신작 영화를 개봉관 한두 곳이 차지하는 단관 극장 전성시대의 풍경이었다.

▶대한극장이 조조할인 시간대를 오후 1시로 옮겼다고 한다.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CGV 등 대기업 멀티플렉스와의 오전 할인 경쟁에서 밀리자 취한 선택이다. 영화 한 편을 1000곳 넘는 스크린에서 동시 상영하는 시대가 되면서 자본이 부족한 옛날식 극장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일부는 멀티플렉스로 변신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온라인 동영상(OTT) 서비스와 거실을 차지한 80인치 대형 TV는 각 가정을 영화관으로 만들었다. 대한극장의 ‘오후 조조’는 그런 변화에 맞춰 살아남기 위한 분투일 것이다.

▶추억은 대개 공간에 대한 기억으로 남는다. 극장 하나 사라질 때마다 극장에 얽힌 추억도 묻힌다. 가수 이문세는 ‘조조할인’에서 그 시절 청춘 남녀가 아침 일찍 영화관에서 만나는 모습을 노래했다. ‘아직도 생각나요 그 아침 햇살 속에/ 수줍게 웃고 있는 그 모습이/(중략)/ 가끔씩 나는 그리워져요’. 10대 극장 중에 서울과 명보가 지난해 문을 닫았다. 이제 대한극장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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